드라마의 영향인지 여요전쟁(고려거란전쟁) 관련 방송을 두 번이나 해 주었습니다. 타사이긴 하지만 드라마의 인기 덕으로 '고려거란전쟁'에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가 높아졌다는 반증일까요? 지난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도 3차에 걸친 고려거란전쟁을 다뤄준 것처럼, 『벌거벗은 한국사』에서도 상세하게 관련 강의를 풀어줬는데요. 차이가 있다면, 『벌거벗은 세계사』는 거란 제국의 역사와 문화에도 상당히 초점을 맞추어 국가적인 관점으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주었고 이 『벌거벗은 한국사』는 고려의 입장에서 거란군의 침략을 어떻게 막아냈는지 인물 중심으로 더 상세하게 파고들었다고 해도 좋았습니다.
참고로 『벌거벗은 한국사』 이번 93화의 게스트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의 박재우 교수님입니다. 이분 설명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이 강감찬이 본래 강은천이라는 이름에서 개명했다는 부분에서 고려 시대는 개명이 흔했으며, 인생에 큰 전환점이 있을 때마다 고려인들이 개명을 했다는 사실과 전쟁 당시 고려가 약속한 친조는 일종의 동북아 국가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외교적 수사였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영상 자료를 더 다양하게 활용한 측면이 있는 반면, 『벌거벗은 한국사』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참고 자료로 많이 활용했다는 측면이 보였습니다.
『벌거벗은 한국사』 93화는 좀 더 인물 중심으로 고려거란전쟁을 파고든 측면이 강한데 오프닝을 장식하는 건 바로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영웅 강감찬의 기록과 그와 관련된 낙성대 유적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연출이 요란해서 까인 부분이긴 하지만, 실제로 강감찬의 탄생 설화 중에 별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런 이야기는 강감찬이란 인물의 비범함과 이후의 업적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그런데 강감찬은 젊은 시절 기록이 부실한 대신(기록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건 35세 복시 시험에서 장원 급제 했다는 사실) 그 외양에 대해선 '키가 왜소하고 못생겼다'라는 상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건 좀 미스터리.
원래 역사에서 외모 이런 걸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는데 이런 내용이 전해지는 건 진심 이게 도드라진 특징일 수 있었다는 데서 좀 웃겼습니다. 젊은 시절 썼다던 강은천이라는 이름은 예뻤는데 말이죠. 강감찬의 성격이 청렴하고 위엄 있는 데다, 뛰어난 점이 많아 엄마가 실은 여우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는데 저런 외모 기록은 좀 시기심(?) 섞인 부분은 없지 않았나 싶은 심정. 생각해 보니 현재 드라마에서 최수종 배우가 강감찬 역인 건 진심 외모 미화다 싶었습니다.
강감찬만큼 부각된 인물은 당연하게도 거란의 명장인 소배압입니다. 고려에 한해선 패전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소배압은 거란과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했을 정도의 유능한 인물이라는 설명이 나오는데요. 드라마에선 송나라와 거란의 대립까지 다룰 필요는 없기 때문에 생략된 부분이긴 하지만 뛰어난 장수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듯. 솔직히 영상 자료로 활용된 드라마 촬영씬만 보더라도 포스가 넘치는 편이었습니다. 다만 소배압이 3차 전쟁에서 정예병 10만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거란군의 진격 루트를 미리 판단하고 적절하게 군사를 보내어 거란군을 패퇴시킨 강감찬의 지략이 더 대단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가끔 드라마 보면서 강감찬이 예지력 있지 않나 싶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습니다만...
근데 이건 역사 스포일러 아니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 있던 것이고 3차 전쟁 때 침공한 거란군이 과거 흥화진에서의 패전(2차 전쟁) 때문에 그곳을 포기하고 삼교천을 넘을 것을 알고 얼음물 깨뜨리며 물을 모은 뒤 수공을 준비한 것, 또 바로 개경으로 진격할 것을 눈치채어 서경성 전투의 주역이었던 강민첨과 조원을 보내어 거란군을 기습하고 개경에 김종현이 이끄는 중갑기병 군단을 보내어 방어한 것 등 설명만 들어도 신기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벌판에서 싸우는 것이라면 기병 중심인 거란군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설명은 드라마 관련 자료만 찾아도 많이 언급되는 것인데, 실제로 귀주대첩 초반은 고려군이 불리했다는 설명이 나오더라고요.
그럼에도 굳이 넓은 벌판에서 회군하는 거란군과 맞서 싸울 결단을 내린 것은 3차 전쟁에서 거란군을 제대로 섬멸해야만 두 번 다시 그들이 침입하지 못할 거라는 강감찬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
여기서 고려군에게 불리하던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기록이나 개경으로 내려보내 수도를 수호하게 한 김종현의 중갑기병 군단이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 양 사이드에서 거란군을 밀어붙였다는 설명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을 정도. 그리고 드라마 1화에서 짧게 나온 것이긴 하지만 『고려거란전쟁』에서 묘사된 귀주대첩 퀄리티가 워낙 뛰어나 영상 자료로 몰입을 크게 유도한 측면이 있었어요. 이 3차 전쟁의 승리로 고려 - 거란 - 송의 삼국 관계가 서로 견제 가능한 삼각 구도를 이루면서 균형이 생겼고 이것이 약 100여 년의 평화 시기를 이끌었다는 설명은 덤. 또 현종이 기뻐하며 금으로 만든 꽃가지를 강감찬 머리에 꽂아주었다는 후일담도 나오더군요.
인물 중심으로 설명이 들어가기 때문에 고려거란전쟁의 다른 영웅들에 대해서도 밀접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1차 전쟁 당시 외교적으로 큰 업적을 세운 서희와 2차 전쟁 당시 흥화진을 사수하고 곽주를 탈환한 양규의 업적에 대해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따지고 보면 3차 전쟁 승리의 기반은 1차 전쟁과 2차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거든요. 귀주대첩에 비하면 설명이 짧긴 했으나 1차 전쟁 당시 거란이 침략했지만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하여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나, 2차 전쟁 당시 그 끝에 있는 흥화진을 필사적으로 사수한 양규의 활약이 부각됩니다.
암만 봐도 1차 전쟁은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소재라 영상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외교로 전쟁을 막고 영토까지 확장할 기회까지 만든 서희는 진심 독보적이거든요. 또 2차 전쟁 당시 양규를 향해 거란 황제 야율융서가 회유 편지를 보냈으나 양규가 그를 거부한 것, 또 강조가 통주 전투에서 패배하고 붙잡혀간 뒤 거란군이 강조의 편지를 위조하여 항복을 유도했을 때도 양규가 거부하며 자신은 강조의 신하가 아니라 고려의 신하임을 밝히며 싸움에 임했다는 사실 등 잘 모르던 부분이 설명으로 나와서 흥미를 끌었습니다.
'TV > 예능 및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몰입 인생사 시즌 2』 리뷰 : 미국판 살인의 추억! 베테랑 형사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라 (2024. 11. 6. 작성) (0) | 2024.11.26 |
---|---|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세계사를 공포로 물들인 세균 감염병 (2024. 2. 28. 작성) (0) | 2024.11.26 |
『과몰입 인생사 시즌 2』 리뷰 : 빛나거나 미치거나! 밤의 화가, 반 고흐 (2024. 10. 3. 작성) (0) | 2024.11.19 |
『좀비의 역사(Zombies: A Living History)』 리뷰 (2017. 12. 27. 작성) (0) | 2024.11.12 |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대제국의 침공! 드라마로 본 고려거란전쟁 (2024. 1. 24. 작성) (0) | 2024.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