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과몰입 인생사』 2시즌 5화입니다. 『과몰입 인생사』는 항상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게 된 회차에 한해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지난 재방송을 통해 보게 된 배우 마릴린 먼로의 생애나, 화가 반고흐의 인생, 영국 왕실의 다이아나 이야기 등을 몰입하면서 본 기억이 있었네요. 이번 2시즌 5화는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프로그램에서 비유한 연쇄 살인범과 그 연쇄 살인범을 잡으려고 노력한 수사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번에 게스트로 출연한 건 유명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교수) 예전에 프로파일링이나 범죄수사에 관심이 생겨 관련 책을 찾아본 적이 몇번 있었는데 BTK라는 이름에 대해선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었는데요.
미국이 대륙이다 보니 연쇄살인과 범죄에 대한 역사도 한국과 달라서 살인범의 숫자가 많아 저도 처음 접하는 케이스가 많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몰랐다 할 뿐이지 이 BTK라는 연쇄살인범도 충격적인 범죄를 저질렀으며 여성 피해자들의 목을 조르고 마치 그 시신을 모욕이라도 하듯 묶어놓고 사라지는 범행을 저질렀다고요.
살인마의 명칭인 BTK는 범인이 스스로에게 붙인 닉네임으로, Bind(묶다), Torture(고문하다), Kill(죽이다)라는 뜻이라고...
거기다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아 17년 동안 수사관들이 범인을 잡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려 30년 동안 한 마을을 공포로 몰고 갔다는 것 또한 특징으로 진심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이라면 CCTV나 자동차의 블랙박스 그리고 유전자 검사가 있어 단서가 소량이라도 다양하게 수사를 넓힐 수 있었지만 첫번째 사건이 벌어진 게 1973년이었고 시대적인 한계가 명백했기 때문에 더 답답했던 사건이었어요. 나중에 유전자 검사가 도입되어 용의자가 현장에 남긴 체액을 통해 감식이 이루어지지만, 대조할 정보가 없어서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돼요.
BTK가 수사관을 조롱하는 듯 편지를 보내거나 신문에 광고를 내는 등 관심종자 행위에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님에도 분노가 일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과몰입 인생사』의 패턴이 중간중간 결정적인 선택을 진행자들에게 맡기면서 다음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게 있다보니 진짜 과몰입할 수 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 보다 보면 저 시대엔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다보니 저렇게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들이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BTK의 정체는 공군 출신의 인구조사공무원이자 방범장치를 설치하는 보안업체 직원으로 피해자들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는데요.
심지어 연쇄살인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이 방범장치를 설치를 의뢰했을 때 그걸 맡은 인물이 BTK였다는 것도 충격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당시 BTK를 피하기 위해 일반인들은 집에 들어가기 전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 전화선이 끊긴 걸 미리 확인했다고 하는데 (BTK가 피해자들 집에 숨어들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전화선을 차단한 것 때문) 실제로 이 방법을 이용해 BTK의 마수를 벗어난 피해자가 있다는 것도 사실.
이 BTK를 잡아낸 건 그가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보낸 플로피 디스크를 포렌식하여 얻어낸 정보 덕이었는데, BTK를 쫓던 수사관이 은퇴를 앞둘 무렵 마지막 방법으로 그를 도발하듯 관련 기사를 냈고 이후 BTK가 수사관들을 조롱하고 관심을 얻기 위해 여러 증거물을 주변에 뿌리고 다니면서 설치기 시작합니다. BTK 과자 상자 안에 당시 피해상황을 구현한 인형이나 다른 증거물을 넣는다는 식으로 수사관들을 조롱하기 시작하거든요.
처음엔 큰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수사는 난항에 빠지지만 곧 BTK가 보낸 플로피 디스크를 포렌식하여 디스크의 원래 주인을 알아내고 증거물이 발견된 지역의 CCTV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프차가 찍히는 등 수세에 진전이 생깁니다. 여기다 수사관들은 유력 용의자의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 그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의 딸이 대학 건강센터에 등록한 유전자 정보를 얻어내 용의자를 특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30년 동안 수사망을 피했던 살인범 BTK를 체포하게 됩니다. 참 지긋지긋한 살인범이 붙잡혔을 때는 저도 안도했을 정도.
이미 수사방법이 한참 진화했다는 사실을 몰랐고 교만하게 굴었던 것이 실수.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고 자신의 유전자로 범행을 밝혀냈다는 것을 안 딸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BTK의 첫번째 범행이 일가족을 살해한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당시 수사관들은 첫번째 범행치고는 지나치게 익숙하고 대범한 행동이라 이것이 결코 첫번째 살인은 아닐 것이라 추정되며 그가 젊은 시절 한국이나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살인을 벌였을 거라는 언급이 나오더라고요. 놀랍게도 1968년 동앙일보의 기사에서 미국전용백에 목이 졸린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등장하여 높은 가능성을 확인해주는데요.
좀 열받는 건 이 사건은 미국의 사건이 아니라 더 이상 BTK를 수사한 수사관들이 조사할 영역은 아니고 우리나라는 당시 공소시효가 적용되기 때문에 이 사건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어려워졌다는 후일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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