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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예능 및 기타

『벌거벗은 한국사』 리뷰 :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은 어떻게 이순신의 바다가 되었나 (2024. 2. 7. 작성)

by 0I사금 202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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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차 감상한 『벌거벗은 한국사』의 방송 주제는 전개가 중반 부분 이후 개판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고려사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으로 관심이 많이 생긴 '여요전쟁'이었던지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회차 예고편으로 이순신 장군과 노량해전을 다룬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번에 『벌거벗은 한국사』를 본방 사수하게 된 이유에는 영화관에서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를 인상 깊게 보고 온 적도 있었고, 하필 참고 영상이 영화 영상이길래 영화관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막상 94화를 보니 오로지 『노량 : 죽음의 바다』만 나온 게 아니라 『명량』과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영상들도 등장하여 반가움이 솟더라고요.


참고로 이번 94화 게스트는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의 노영구 교수님입니다. 중간중간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을 설명하시는데,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이 많았던 것 같네요.
 

이순신 장군 관련 작품으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본 것이 영화이기 때문에 3부작으로 완결된 이 시리즈가 먼저 생각나더라고요. 이번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설명하던 노량해전의 전개를 보면 영화가 중간중간 각색이 들어가긴 했어도 큰 틀은 역사적인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의 사망이 전해지자 순천왜성에 자리 잡은 고니시의 일본군은 봉쇄를 풀기 위해 명나라 도독인 진린에게 뇌물을 바친 뒤, 그의 묵인 아래 순천왜성 바깥에 있는 다른 일본군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이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대패시킨 시마즈가 총사령관으로 5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순천왜성으로 몰려들자 조명연합군이 노량에서 섬멸전을 펼쳤다."
 
대강 노량해전의 전개는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었는데 영화 속에는 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벌거벗은 한국사』에선 인물보다는 당시 전략 위주로 설명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또 처음에 명량해전의 승전 직후 조선 수군이 섬으로 근거지를 옮겨 군을 재정비하는 내용부터 설명이 나오는데, 명량해전의 기적 같은 승전에 대해서는 이번에 자세히 다룰 내용이 아니라 간단하게 넘어가더군요.

노량의 좁은 길목과 주변 지형을 이용한 작전, 밤 시간을 이용해 적의 시선을 피하고 화공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가하는 등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첨부되는데 이 전쟁의 열쇠 또한 근방의 지리, 바람의 방향과 무기 정비, 군사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이동했다는 점 등으로 이순신 장군의 지휘관으로써의 유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당시 화공에 쓰인 화살은 화약통이 달려있는 것으로, 사정거리와 명중률이 낮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량이라는 좁은 지형을 이용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좁은 지형으로 배가 몰려들면 사정거리가 짧더라도 화살을 맞히는데 무리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요.

초반 사로병진작전이라고 조명연합군이 네 방향에서 일본군이 점령한 왜성을 공격하는 작전은 명나라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실패했다는 설명이 나오던데 당시 명나라 육군 측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하는 게 자기네 나라 전쟁이 아니니 피해를 안 보려고 하는 그 심보를 아예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냥 좀 한숨.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서 몸 사리는 경향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입체적이며 매력까지 느껴졌던 진린은 기록만 보면 안하무인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진린의 부하들이 역참 관리(명칭이 찰방?)의 목에 밧줄을 매어 끌고 다니는 짓을 했다는 등 현대 기준은 물론 당시 기준으로서도 비상식적이고 갑질이라고 할 만한 짓거리를 저질렀더라고요.

이순신 장군의 친구인 유성룡이 이번 전투는 패전할 것이라고 암울하게 바라봤다는 게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실제 조명연합군이 이루어진 뒤에도 명나라 군이 백성들 상대로 약탈을 시도했다는 기록까지 있다고 하니... 그런데 이 진린을 감화시킨 게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는데 전공 뺏겼다고 난리 치는 진린에게 왜군 수급을 양보하는 등 비위를 맞춰주면서도 명나라군의 약탈로 백성들이 곤궁에 빠지자 자신도 여기서 지낼 수 없다며 거처하던 집을 헐고 배로 옮겨버리며 강경하게 나가는 등 밀당(?)을 해가면서 진린을 감아버린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영화에선 진린이 이순신 장군을 신경 쓰는 장면이 많아 이미 감긴 상태로 등장하긴 하던데 어떤 의미에서 이번 『벌거벗은 한국사』는 이순신 장군이 진린을 어떻게 자기 편으로 만드는지 그 인간적인 매력이 어땠는지를 조명한 것도 같았습니다. 초반 안하무인이었던 진린마저도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서 통곡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반면 당시 군주였던 선조는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전해 듣고도 매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고 나와 대비가 되더라고요. 선조의 흠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뤄지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전해진 전쟁 당시 그의 행적만 해도 고운 소리가 나올 일은 없었을 듯.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한 건 정조로, 정조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 문집을 만들었는데 군주가 신하를 위해 이렇게 한 것이 최초라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대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200년 뒤에는 결국 임금을 감아버렸다거나...?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선 이순신 장군이 북을 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이 직접 북을 쳤는지는 기록이 좀 갈린다고 하던데 의병장의 기록에선 직접 북을 쳤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순신 장군의 조카가 남긴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다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저 장면으로 연출한 것은 확실히 명장면이었다는 생각. 
 
그리고 매체에서 많이 묘사되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자의적이었는지는 좀 의문인데, 영화는 복합적으로 심정을 묘사하곤 있지만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묘사된 전투 양상을 본다면 이기기 위해서 치열했고 확실한 승리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확실했습니다. 또 영화에서 노량해전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구현했기 때문에 내용의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이 전투 묘사에서는 이견이 없겠다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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