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는 넥플릭스의 3부작 다큐멘터리입니다. 솔직히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까지 볼 거라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선 주로 드라마를 찾아보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종종 홍보인지 알고리즘 때문인지 이 다큐멘터리 영상이 들어갈 때마다 보이길래 '언제 한번'하는 생각으로 찜만 해두었다가 비로소 보게 된 셈. 발견은 좀 일찍 했는데 정작 쉽게 보려고 하지 않은 건 가공의 이야기라는 걸 아는 드라마와는 달리 다큐멘터리는 실제라는 사실 때문에 약간 찜찜함을 느꼈던 탓일까요?
그래서 보고 있는 다른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틈에 잠깐 보자 하는 생각으로 감상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지만, 일단 3부작이라 분량이 많지 않아서 한번에 달릴 뻔한 걸 자제하면서 리뷰를 나눠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것은 한국의 프로파일러들의 역사를 다룬 르포 서적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그리고 서적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었는데, 실제 여기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경찰 관계자들 중에서 책에서 언급된 분들이 제법 비중있게 나오더라고요.
일단 다큐 1부에서는 유영철의 첫번째 살인 -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의 시작과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연쇄 살인 패턴에 당시 경찰들이 어떻게 당혹감을 느꼈는지 잘 설명이 나오더라고요. 남들에게 원한을 가지지 않은 노인들이 살해당한 데다, 심지어 집안에 있는 금품도 손대지 않은 현장, 살인범이 쓴 흉기조차도 보기 드문 형태라는 점에서 혼란을 가져왔고요.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2000년 대 초는 현재와 달리 거리에 CCTV가 많이 설치되지 않아 범인의 윤곽을 잡는데 애를 먹었는데, 유일하게 포착된 범인의 사진마저 뒷모습이 찍힌 것이었다고요.
경찰들이 이 뒷모습이 찍힌 사진으로 수배를 내린 건, 범인에게 경찰이 주시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데,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도 이 상황이 묘사된 바 있어서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나 1부 마지막에는 살인범이 종적을 감춘 뒤 또 다른 끔찍한 사건을 암시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요. 또한 사건을 수사하던 초반에는 관할이 다른 곳에서 비슷한 종류의 살인이 벌어졌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경찰이 수사가 진행되는 현장을 찾아와 자신들이 수사하는 사건과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렸다는 언급도 나오더라고요. 합동 수사가 유영철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졌다는 설명도.
* 참고 : 미제사건 전담 합동수사 발동 기사 https://news.v.daum.net/v/20040902014357083
또한 범죄사적 측면에서 책의 가설과 유사한 가설도 언급되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범죄사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설명합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연쇄 살인, 소위 미국처럼 발달한 외국에서 벌어질 법한 살인 사건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발전하고 복잡해졌다는 걸 의미하지만, 동시에 IMF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사람들의 박탈감, 배제감이 사회에 영향을 끼쳐 사람들의 죄의식을 없애고 이것이 무차별 범죄로도 이어졌다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아마 다큐 초반 나온 범죄자 인터뷰는 지존파 살인사건의 그것이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다큐를 보기 얼마 전 종영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제법 비중을 차지하면서 나온 것이 떠올랐는데, 아무래도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원작이 르포 서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각색된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등장인물의 설정은 드라마답게 각색을 했지만, 다큐멘터리와 책의 설명을 본다면 드라마가 현실의 사건을 최대한 세세하게 반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할까요. 새삼 이 드라마가 수작이라는 생각을 다시 새기게 하는 느낌. 언젠가 기회되면 다시 정주행을 해야 할 듯.
그리고 조금 놀랐던 건 드라마 중반 의도적으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넣은 캐릭터가 자음이 같은 동네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추리를 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었는데, 이게 그냥 나온 내용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이런 가설 또한 경찰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었다는 언급이 나오더라고요. 드라마의 창작이 아니라 놀랐다고 할까; 지금 보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당시 사건이 기존에 보기 힘든 유형에, 살인범이 어디서 출몰할 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저런 가설에도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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