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완독했고 이어 쓰는 포스트입니다. 『호모 데우스』의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는 앞서 책에서 언급한 '인간이 상상한 것을 현실에 실현하는 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열거하는데 2부의 내용을 읽다 보면 인간 문명이 가장 먼저 실현한 상상력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닌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의 실존 여부와는 상관없이 종교와 같은 허구의 토대는 사회를 유지하고 돌아가게 하는 기반이 되었는데 책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그 생산물을 신 혹은 신의 대리자에게 제물로 바치며, 신이 정한 (것이라 믿는) 규율을 따르며 생활함과 동시에 신의 보호를 받는 것 (혹은 받는다고 여기는 것), 신이 거둔 생산물을 나눠 받는 것과 현대인들이 회사에 취직하고 거기에 노동력을 제공하여 봉급을 받고 생활하는 것, 법으로 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은 큰 차이가 없으며, 인간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작동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흔히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종교를 따르는 것이나 유명인의 팬이 되거나 특정 분야 덕질을 하는 것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는 말들을 하는데 실제로 허구의 존재(실존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나와 마주치거나 엮일 일이 없다면 그런 부류로 분류해도 무관할 듯)에게 애정이나 존경을 품고 나름의 이유를 다는 것은 마찬가지니... 실제로 책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나오기도 했고요. 종교의 힘이 약화된 후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 인본주의이며 책에선 이 변천 과정에 대한 설명이 길게 나옵니다. 종교에서 인본주의로 흐르는 역사적 과정은 사상의 기반이 공동체를 위한 것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어느 사상이던간에 그 바탕에는 인간이 자기 행동에 어떤 식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는 듯. 종교를 믿던 시대에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신의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믿었던 것처럼 인본주의 시대에는 나에게 일어난 (혹은 일어났던) 일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고 믿는 것처럼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책의 마지막 장인 '제3부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에서는 앞의 인본주의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내놓습니다. 현재의 과학 기술이나 발전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인본주의의 흐름을 탄 것임에도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내놓았다고 요약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실험이나 연구 결과에 따라 인간의 선택은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닌 주변 환경의 영향이나 유전에 의한, 혹은 화학 작용의 결과일 수 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인간이 자유 의지란 것도 앞의 종교처럼 허구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의 자유를 신봉하는 것도 종교를 신봉했던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쓰라린 현실이요. 어찌 보면 현대에 와서 유전자에 대한 믿음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커져가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허구의 존재를 빌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현재 문명을 이루는 데 이바지했다면 이젠 앞으로 그런 의미 부여 자체가 의미 없어질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기 개발서 같은 믿음이 힘을 많이 잃고 '타고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본다면 현실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인간의 특출난 의지로 뭔가 사회적인 기여를 한다고 믿는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런 주제 때문에 책에서 설명하는 인공 지능 개발의 미래 역시 마냥 희망적으로 그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공 지능이 개발된 후의 사라질 직업군과 직업을 잃게 될 대다수의 인간 유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오는지라... 그렇다고 해서 마냥 비관할 수만도 없는 것이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결국 미지수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책에서는 이제 이런 자유 의지를 대신하여 앞으로는 인간의 정보를 모으는 '데이터교'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전망하는데 데이터교란 책의 구절을 인용하면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제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됩니다. 책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여 책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 세가지 과정 끝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터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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