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하니까 처음엔 인류학이나 고고학과 관련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예전에 본 뉴스 기사 중 유발 하라리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보고 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 참고 : 유발 하라리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90%, 성인 되면 쓸모 없어질 것”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042614580895162
보아하니 책 내용이 단순 인류의 조상이 누구냐 이런 것을 따지는 내용 같지는 않았는데 도서관에서 좀 기다렸다가 기회를 빌어 책을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책이 두꺼워서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던 부분이 많았다고 할까요.
제가 책을 접하기 전 『사피엔스』라는 책의 제목 탓에 오해했던 인류의 조상이나 기원을 찾아가는 내용은 어느 정도 맞기는 했습니다. 책의 서장은 바로 사피엔스의 출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1장은 이 사피엔스 집단이 어떻게 도구와 언어를 익히고 번성에 성공했는지를 다루는데 1장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내용이 바로 '인지 혁명'입니다. 이 '인지 혁명'은 책에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실재하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것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이것이 단순 허구의 이야기(신화)를 꾸며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념,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 그리고 믿음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이 인지 혁명으로 인류는 정보를 전하고 계획을 세우고 종교적인 존재를 내세워 협력을 하는 등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수렵채집을 하는 인류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피엔스의 번성은 다른 종의 멸망을 가져왔는데 책에서 날카롭게 지적하는 부분은 옛날의 인류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았다는 것이 큰 착각이라는 점입니다. 인류가 번성하고 사냥 기술이 늘면서 죽어나가는 동물들의 숫자가 늘어났는데 이게 단순 잡아먹는 동물에만 그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전에 모 인터넷 카페 같은 데서 재미있는 자료로 인류의 조상에 대한 가설 중 네안데르탈인과 인류의 혼혈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 설은 최근에 확인된 것으로 책에서도 우리 인류의 유전자 중 1~4%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으며 소수의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 무리 사이에 혼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혼인은 다양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례이며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는 사피엔스 집단이 어느 정도 관여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네안데르탈인을 학살한 것이든 그들의 사냥터를 점령하여 식량을 빼앗은 것이든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는 사피엔스의 책임이 없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책에 의하면 우리 인류의 행동 패턴은 수렵채집인 시절의 그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농업혁명이 인류사에 큰 전환점을 가지고 온 것은 사실이나 그 이전 시대에 비한다면 비교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농업혁명은 분명 인류의 문명에 크게 이바지하고 인구 수를 늘리는데 기여한 것은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과연 인간에게 더 이로운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농업 혁명 이후 인류의 건강은 수렵 채집 시절보다 나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요 개인의 삶의 질이 더 높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란 결론이 나오게 되거든요. 오히려 농업 혁명 이후 인간의 삶은 상당히 집단적으로 돌아가고 개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으며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부분을 상쇄하여 집단 내에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종교와 같은 상상의 질서라고 언급되는데 이것은 『총, 균, 쇠』를 쓴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지적하는 부분으로 문명의 발달에 농업 혁명으로 잉여 자원이 큰 영향을 끼쳤고 그에 따른 불평등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종교가 존재한다는 것과 상통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통합을 유도하는 또 다른 부분으로는 돈과 종교 그리고 거대한 제국입니다. 화폐가 물물교환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등장한 것처럼 돈은 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집단과 집단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공고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제국주의란 단어의 불길한 뉘앙스 탓에 제국의 이미지조차 현대인에게 좋게 느껴지지는 않겠지만은 그것이 후대에 의해 옳으냐 그르냐 판단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라고 여겨진 거대한 제국의 지배가 제도를 개선하고 때로는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통일성과 표준화가 인류의 삶에는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할까요. 책에서는 현대 인류가 개인의 삶을 추구하는데도 국가 제도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대에서 국가적인 통제나 외부적인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집단에서 부패나 인권 유린 현상이 더 많아지는 것을 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교는 책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사람들을 협력하게 하는 상상의 질서를 풀이하는 것에 가까운데 다만 이 종교의 변천 과정 신에 대한 믿음에서 인간 숭배 내지 이데올로기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할까요.
하지만 역시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인류의 통합 과정에 돈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것처럼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과학혁명의 기반 역시 결국 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거든요. 그리고 이 과학의 발달, 정확하게는 유럽에서의 과학의 발달이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도 과학이 어떤 식으로 제국과 결합하였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책의 설명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여러 가지 기술과 지식을 제공했고 제국의 지원으로 근대과학이 발전했으며, 또한 또 다른 제도들의 지원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라고 밝힙니다. 즉 과학의 발전에는 분명 인간들의 욕망, 당시 외부 세계로 진출하여 더 많은 부를 얻으려고 하던 유럽인들의 욕망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작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우리 현대 인류의 삶은 이런 과학에 크게 기대고 있으며 동시에 인류사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올 전망이라 보이는데 그것이 어떤 영향을 가지고 올지 참으로 기대되면서 두렵기도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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