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이라는 제목의 책이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흥미가 생겨 책을 살펴보다가 저자분 이름을 보니 왠지 낯이 익다 생각했는데 다름 아니라 제가 소장한 『도시, 학교, 괴담』의 저자분이더라고요. 보통 한국 신화나 전설 관련으로 찾다 보면 나오는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귀신 그리고 도깨비일 텐데 책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매체에서 흔히 그려지는 도깨비, 심지어 동화책에서조차 묘사되는 뿔이 나고 가죽옷을 걸친 요괴의 모습은 우리나라 전래의 도깨비가 아닌 일본의 오니와 같은 요괴 형상이라는 점을 비판하는데요. 실은 이 오니 형상과 도깨비의 형상을 혼동하는 점에 관해서 예전에 한번 다른 데서도 거론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은 같습니다. 다만 오래 박힌 이미지가 교정이 힘들다고 할까요. 거기다 전승에서 도깨비의 외양 자체가 정확한 것이 없이 두루뭉술하달까요.
심지어 도깨비 관련 대표적인 오류로 책에서 지적하는 것은 기와를 올릴 때 잡귀를 쫓는 의미로 올리는 귀면와는 실제 전승에서의 도깨비와는 큰 연관성이 없음에도 그것을 도깨비 형상이라 오해하고 있다고 나와 놀라웠는데 원래 우리나라 전승 속의 도깨비는 잡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속성은 없다고 지적되더군요.
책을 읽다 보면 도깨비라는 것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한국 특유의 초자연적인 존재를 칭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 제가 도깨비 신앙에 대해 접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도깨비란 존재는 아일랜드 전설 속 요정 신앙과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불가사의한 일에 도깨비를 끌어들이듯 옛 아일랜드인 역시 기이한 일은 요정의 소행으로 돌린 것, 도깨비가 심술을 부리면서도 착한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점이나 아일랜드의 요정이 못된 짓을 하면서 동시에 착한 일을 하기도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느끼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의 도깨비가 인접국가인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의 요괴와 혼동을 하거나 기록의 한계로 다른 존재와 이미지가 섞이거나 혹은 후대의 학자들마저 지나치게 문화 간의 연관성에 집착하여 원래의 의미를 변질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되므로 이런 비교는 단지 사람들 의식구조가 비슷할 수 있다는 정도로만 그쳐야 할 것 같네요.
재미있는 점은 도깨비와 귀(鬼)는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도 과거 기록물에서는 도깨비를 기록할 적당한 글자가 없어 鬼라는 글자로 대신했고 이것 때문에 도깨비의 속성과 귀신 속성이 섞였을 것이라는 책의 지적이 있더라고요. '귀'는 보통 생각하기를 사람이나 원한에 가득 찬 존재가 죽어서 된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도깨비는 인간이 아닌 것, 대개 하위 신(神)에 가깝다는 것이 책의 요지로 그 거처는 산만이 아니라 바다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며 해안 지역에서는 도깨비를 잘 섬기면 물고기를 잘 잡히게 해주는 수호신의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계급 상으로는 바다의 지배자인 용왕의 아래일 것이라는 책의 설명이 첨부되어 있어요.) 또한 불효자를 징벌하고 효자에게 복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나 대단한 사람을 알아보고 도와주거나 명당자리를 짚어주기도 하는 등 도덕적이고 신령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설화도 제법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의 원래 원형은 신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결론.
가장 대표적인 도깨비 설화는 과부와 부부 관계를 맺은 후 그녀들에게 부를 가져다 주거나 인간 남자와 친구가 되어 먹을 것(메밀이나 고기 등)을 얻은 뒤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등 재신의 속성이 강하며, 또한 어리숙한 성격 때문에 이렇게 부를 가져다주면서도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재물을 갖다 바친 뒤 쫓겨나는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 욕망에 솔직하지만 역으로 영악한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은 다른 설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트릭스터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런 전승에서 드러나는 욕망의 모습이나 그것이 실현되는 모습은 옛 민중들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동시에 도깨비는 지역에 따라선 인간에게 병을 옮기거나 화재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두려운 모습을 띄는 경우도 없지 않아서 특정 지역에선 도깨비 굿이나 제의를 통해 달래거나 쫓아내어야 할 존재로 전승되기도 하며 이유는 과거에도 도깨비와 공포스러운 귀의 속성을 혼동하여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만 이런 양면적인 속성이 도깨비라는 독특한 존재의 개성을 더 살려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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