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더니 신간 코너에 이런 책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조선시대의 과학 수사라던가 별순검과 같은 역사적인 소재에 끌려서 관련 책을 찾아본 경험이 있던 고로 흥미가 갔기에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일단 책이 얇고 삽화가 많이 실려 있는 데다 활자도 크고 왠지 개그성 장면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어서 혹시 주 독자층을 학생으로 정한 건가 싶었는데 책의 표지에 조그맣게 '파란 자전거 역사 동화 03'이라고 위에 쓰여 있더군요. 속표지에는 '파란 자전거 역사 동화' 시리즈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는데 책에 따르면 '파란 자전거 역사 동화는 역사적 사건과 유적, 유물, 민초들의 생활상 등 잠들어 있는 역사 문화콘텐츠를 발굴하여 재미와 감동이 있는 동화, 전문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정성껏 담아낸' 시리즈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어린 독자 층을 대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좀 더 스토리를 가미하여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교육용 시리즈라 봐도 무관하겠는데 첫 번째 시리즈는 소금, 두 번째 시리즈는 비차, 세 번째 시리즈가 바로 조선시대의 과학수사입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 대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어른이 못 읽는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어른이 읽어도 흥미진진한 부분들이 많은 내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수사관 이야기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내용은 밝은 톤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등장하는 사건은 돈에 얽힌 탐욕과 당시 조선 후기 있었을 법한 마을의 세도가의 횡포, 심지어 그 세도가 때문에 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마저 손을 못쓴다거나 하는 등 실제 역사에 근접했을 법한 일들인지라 순화되었어도 암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탐정소설 클리셰랄지 중간에 사건에 얽혀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주인공보다 원래 사건을 밝혀야 할 관리, 현재의 탐정 소설이라 하면 경찰에 해당하는 부류들이 매우 무능하게 그려지는 것은 비슷하다고 할까요?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장선비는 수사관이라기보단 암행어사인데 자신이 암행을 나간 곳에 억울한 일을 당한 양반을 만나고 살인 사건과 얽혀 그것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용 초반 암행어사 임무를 맡게 된 장선비와 그의 시종들인 칠복이 만복이 형제가 한탄하는 부분은 당시 암행어사 임무가 매우 힘들고 고된 일이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는데 설화나 민담, 혹은 고전소설 같은 데서는 상당히 멋있게 그려지는 존재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시궁창이었는데 여기서 주인공 장선비는 청지기로 신분을 숨기다가 억울한 사연을 당한 양반 유노인을 만나 그의 사연을 들어주려다가 오히려 그를 죽인 살인범 누명을 쓰는 등 고생을 합니다.
물론 사건을 해결한데다 악한 양반 형제도 응징하고 이름을 드높이게 되지만 막판에 그 유명세 때문인지 암행어사 사칭범도 나오는 등 끝까지 다사다난한 일상을 보내게 되지요. 책에서 등장하는 살인사건은 두 가지로 마을 세도가에게 친척 여동생을 시집보낸 유노인이 자신의 친척 여동생이 가난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시집에서 학대받다가 살해당한 것을 직감하고 중국 전국시대 명장 오기가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인 사연에 빗대어 노래를 만들었다가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한 사건, 그리고 유노인의 여동생이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여기서 살인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장면은 당시 조선 후기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찾거나 시신 조사에 쓰인 무원록이나 흠흠신서의 기록들을 많이 참고한 것이 보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까요. 무원록이나 흠흠신서도 시중에 한글로 많이 나왔기 때문에 참고자료로 많이 읽어두면 좋을 듯 한데 조선시대에 범죄 연구와 수사 일지는 다시 봐도 흥미로운 데가 많습니다. 실제 기록만 찾아봐도 흥미로운 창작물이 쏟아질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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