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도서관에서 오츠 이치 말고도 기담 느낌이 나는 소설들을 쓰는 일본 작가의 소설들을 찾아본 적도 있는데 아쉽게도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신간이 들어올 여유는 없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오츠 이치의 단편소설집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도 있고 한 권씩 빌려보게 되었습니다. 실은 도서관에 그렇게 많은 오츠 이치의 소설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츠 이치의 소설들이 인기는 있는 것인지 그나마 있는 소설책들도 상당히 낡은 감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작가라거나? 이런 분위기의 소설들은 긴 장편보다 단편 쪽이 더 적합하단 생각도 들었는데 오츠 이치의 소설들은 단편집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이번에 빌려온 '쓸쓸함의 주파수'도 마찬가지였는데 책에 실려있는 소설은 총 네 편이었습니다.
첫 번째 소설 '미래예보'는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는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합니다. 과거 주인공에겐 같은 마을 가까이서 사는 시미즈라는 소녀 친구와 전학을 온 특이한 소년인 후루데라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허언증인지 아니면 오츠 이치 소설 특유의 기묘한 설정인지 몰라도 이 후루데라라는 소년에겐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단 것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소설 상 묘사를 보면 그냥 감이 빠른 아이가 어쩌다 앞일을 때려 맞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설정을 본다면 이 소설 <미래예보>는 후루데라라는 기이한 소년과 주인공의 독특한 우정으로 전개되려나 싶지마는 오히려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은 시미즈라는 소녀와 주인공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서로 좋아하고 있었으나 결국 드러내지 못하고 한쪽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그 마음을 깨닫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맺는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 둘의 사랑은 저 후루데라라는 녀석이 먼저 미래를 봤다는 둥 초치지만 않았어도 두 사람이 생전에 터놓을 수 있던 마음이 아니었는가 싶던 생각이 나중에 들더라고요. 반면 두 번째 소설 '손을 잡은 도둑'은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기보단 어쩌다 저질러진 실수(?)가 주인공의 상황을 타개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묘한 우연이라는 소재가 초월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초자연적인 것의 개입 같은 것 없는 소설이라 좀 이질적이었는데 그래도 소설 작품들 중에서 가장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내용이라는 게 특이점. 하지만 세 번째 소설 '필름 속 소녀'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사건이 발생하고 살인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며 거기에 슬픈 사정도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내용이라 앞의 소설과는 상당한 대비점을 보여줍니다.
내용은 대학교 영화 연구회의 자작 영화 필름에 우연히 살해당한 소녀의 영혼이 찍혀 있었고 그것을 또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하여 목격하게 된 뒤 그 소녀의 영혼이 뭔가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느낀 나머지 소녀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여기저기 조사를 하고 다닌다는 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죽은 소녀가 자신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까지 드러나면서 주인공은 뭔가 기이한 인연을 느끼게 되지요. 줄거리 자체만으로 보면 오츠 이치의 환상적인 소설이 아니라 인터넷 괴담이나 공포소설 같은 장르에서 무섭게 변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읽어갔을 때도 그런 유의 전개를 생각한 것도 있고 이야기 구성도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알려주는 내용이라 혹시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범인과 마주친 것은 아닐까 막판에 주인공에게도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그렇게 무섭게 전개를 하지 않고 소녀의 영혼을 우연히 보게 된 주인공이 죽은 소녀의 해원만을 진심으로 바란 데다 (심지어 자신을 그 죽은 소녀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도 범인이 아니란 것이 드러납니다. 섬뜩함을 예상했던 소재와는 의외의 전개를 띈 작품이었습니다. 반면 마지막 소설 '잃어버린 이야기'는 앞의 작품들과는 달리 초자연적인 것도 기묘한 해프닝도 없이 교통사고를 당해 몸의 감각을 잃고 손가락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한 가장의 비극적인 이야기인지라 다른 의미로 무서우면서 슬픈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이번 오츠 이치의 소설을 관통하는 애정 이야기가 주가 되긴 했으나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잊혀가는 결말을 선택해 버린 주인공이 상황이 많이 안타까워서 실려있는 소설들 중에서 다시 읽기는 괴로운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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