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와 더불어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을 고른다면 바로 『벌거벗은 한국사』를 고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거벗은 한국사』를 보게 된 경위도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한창 방영될 때 영향으로 영웅 강감찬의 일대기와 '여요전쟁'을 다룬 회차를 보았기 때문인데 드라마는 전형적인 용두사미로 끝나긴 했지만, 고려사에 대한 흥미를 끌어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다음에 본 것이 바로 '노량해전'과 이순신 장군을 다룬 회차였고,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된 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갖고 본방을 사수한 바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번 99화 게스트는 서울대학교 사회과교육과의 임기환 교수님으로 신화의 상징성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졸본 - 현재의 라오닝성 환런 지역에 남아있는 '오녀산성' 유적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보통 고구려 건국신화하면 자세하게 안다기보단 내용이 많이 축약된 동화책으로 어린 시절 접한 적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버전은 유화가 해모수와 만나 그의 아이를 가진 채 고향에서 쫓겨나 부여의 금와왕에게 거두어진 것을 시작으로 주몽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부여군의 추적을 피해 강을 건너는 내용까지로 알고 있었거든요. 어린아이 수준에 맞게 상당히 축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면에 대해선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 커서는 건국신화니까 자신들의 시조에 대해 신성화 작업을 하면서 판타지적인 요소를 더하겠거니 막연히 추측했을 뿐이며 이후 고구려를 세우고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강의에 의하면 고주몽의 건국신화는 길림성에 존재하는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기록을 따르며, 그 바탕은 실존 인물인 고구려의 시조 '추'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신격화 작업이 이루어졌을 거라는 설이 있었습니다.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며 그 이름으로 추측했을 때 해를 상징하는 인물인 것, 알에서 태어난 주몽 탄생이 난생설화의 한 종류이며 건국시조나 영웅적인 인물을 추존할 때 들어가는 묘사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어머니 유화의 존재에 대해서 희미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건 동화책의 생략도 있었지만 영웅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 존재를 약하게 묘사하는 옛 고전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번 『벌거벗은 한국사』에서는 주몽의 어머니 유화에 대한 그동안 알지 못한 상징을 풀어주기도 했는데 보통 동화책에서는 유화는 강의 신 하백의 딸 정도로 언급되고 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의 신 하백의 딸이라는 것은 주몽의 존재가 하늘=해를 상징하는 아버지와 물을 상징하는 어머니의 결합인 동시에, 어머니의 이름 유화(버드나무柳, 꽃花)를 볼 때 땅에 터전을 삼는 지모신을 상징하는 존재라는데선 충격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다고 할까요.
흔한 영웅설화에서 영웅을 낳고 고난을 겪는 존재 정도로 격하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유화 역시 엄연히 신적인 존재이며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해모수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는 해설도 신선했습니다. 정확하게 유화는 압록강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는 설명을 보아 하백의 딸이라는 것도 압록강 근처에서 터를 잡고 살던 세력이 큰 부족의 지배층이 아니었을까 한번 추측도 해보고요.
주몽의 이름이 부여의 속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은 유명한데, 다만 기록에서 주몽의 이름은 일정한 게 아니라 추모나 중해 등 발음이 유사한 다른 이름으로도 등장한다고 하네요. 이후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이후 생긴 왕호가 '동명왕'입니다. 고구려라는 나라의 이름은 본래 존재하던 졸본의 지역명에서 따온 것으로 고구려의 '고'는 높다는 뜻의 '高'지만 뒷말인 '구려'는 '성(城)'을 뜻하는 옛말 '구루'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뜻풀이를 하자면 고구려는 '높은 성'이라는 뜻이 된다고요.
영웅담답게 성장 과정에서뿐만이 아니라 고구려를 건국한 이후 주변국(대표 비류국)을 복속하는 과정에서도 신이담 같은 측면이 많이 두드러집니다.햇살로 인해 어머니가 임신했다거나, 알에서 태어났고 아기 때부터 말을 했다거나 7살에 화살로 파리를 명중시켰다거나 비범한 능력 탓에 금와왕의 첫째 아들 대소의 견제를 받아 마구간지기로 전락한다거나, 준마를 알아내고 일부러 야위게 만들어 자신의 것으로 받아냈고 강을 건널 때 자신이 천제의 손자이자 하백의 외손이라 외쳐 물에 사는 짐승들이 다리를 만들어줬다고 하는 등 이런 이야기들은 현실성보단 건국시조의 신성화를 위한 요소라고 봐야 할 듯.
부여를 떠날 때 주몽과 뜻을 같이 한 세 친구 오이, 마리, 협보 또한 개인이 아니라 주몽을 따르는 큰 무리의 수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덧붙여지긴 했지만 주몽이 비범한 인물이라 부여 지배층에게 견제를 당할 만큼 특출난 인물이었다는 건 확실한 듯합니다. 따지고 보면 금와왕도 부친 해부루가 금빛 개구리 같은 아들을 얻었다는 설화가 존재하는 등 비범한 내용이 전해지긴 합니다만... 이후 졸본 지역을 수도로 삼고 주변국들을 하나 둘 복속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나라가 먼저 터를 잡았던 비류국이었으며 이 비류국을 복속시키는 과정도 신화적인 전개를 띄더라고요.
비류국의 왕인 송양이 항복하지 않자, 주몽은 하얀 사슴을 잡아 고문(?)하면서 비류국에 큰 비를 내리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에 비류국에 홍수가 났다는 내용은 어린 시절에는 접한 적이 없던 내용이었어요. 이 내용은 하얀 사슴은 신성한 존재로, 신적인 존재를 주몽이 다스리면서 그 신격을 더하는 내용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읽은 동화책에선 언급되지 않는 것들이고 신화 초반부에 해모수와 하백이 변신술 내기를 세 번 펼쳤다는 내용 역시 생략되어 있어 이번 『벌거벗은 세계사』로 알게 된 부분이에요. MC들이 결혼 허락받으러 가선 장인을 이기려 드냐고 한 소리 하는 부분이 웃겼습니다.
이번 회차에서 참고 자료로 많이 쓰인 영상 자료는 MBC 드라마 『주몽』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고구려 건국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데서 참신한 시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실사 드라마다 보니 신화적인 요소를 현실적으로 각색한 부분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시청률이 49%나 나왔다는 걸 보면 기억보다 더 대단한 인기 드라마였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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