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읽게 된 『옛이야기의 발견』은 머리말에 저자가 7년 동안 우리나라의 설화나 전래 동화에 대해 나름 공부해 놓은 것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설명이 처음부터 붙어 있는데요. 그런 설명에 가깝게 책의 내용은 예전에 읽은 동화나 구전 민담 등을 한 편씩 정신 분석학적 관점 하나로 통일하여 분석하거나 혹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실어놓은 책들과는 달리 외국의 요정담(페어리 테일 Fairy Tale)이나 메르헨(Märchen)과 같은 명칭의 번역 문제나 특정 설화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다양한 분석과 더불어 작가 나름의 해석, 설화에 등장하는 요소에 대한 분석 등을 주로 담고 있어 좀 더 학술적인 내용에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읽기 쉽게 동화의 뒤 배경을 분석한 다른 책들에 비하면 좀 더 전문적인 내용들이 많고 또한 설화의 특성상 해석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점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등장하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나 소견이 반드시 옳다거나 (혹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해도) 반드시 틀리다 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다고 여겨진 것은 우리나라 설화인 '아기장수' 이야기, 흔히 우투리라고 알려진 설화에 대한 분석입니다. 아기장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역에 따라 양상이 조금 달라질지 언정 익숙한 내용의 설화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굉장히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인지 어린이들 대상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이 설화를 차용한 작가나 학자들도 동화로 쓰지 않거나 혹은 동화로 쓰더라도 내용을 변형시켜 순화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어머니의 배반으로 인해 죽는 아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작가들의 고충이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 구전 설화에서는 어머니의 어리석음이나 비정함이 두드러지며 또한 이 어머니가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한 해석도 학자마다 달라집니다. 아기장수의 죽음과 그 죽음에 관여한 어머니에 대해서 학자에 따라 당대 여성이 보일 수밖에 없는 나약함을 상징한다고 보는 해석이 있는 반면 나약한 모성이 아닌 당대 시스템과 체제의 문제를 상징한다고 해석이 되기도 한다고요.
자식의 죽음 혹은 영웅의 죽음에 관여한 인물이 친모라는 점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을 독자들을 배려해서인지 이 설화를 차용한 작가들은 이 어머니에게 나름 그럴 만한 사연과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하는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플롯 자체를 바꿀 수 없으므로 결국 어머니에게 어떤 포지션을 부여하든 아기장수는 살해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야 했고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욕심이나 그릇된 판단으로 죽는 것은 바뀌지 않는지라...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이 학교에서 우투리 이야기를 접한 학생들이 우투리 엄마에 대한 반감으로 우투리 엄마 안티카페를 만들었다고 하는 인터넷 발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어찌 보면 어머니 혹은 주변의 잘못된 판단과 어긋난 기대로 인해 망가지거나 시기가 맞지 않아 꽃 피우지 못한 재능과 관련된 이야기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한 소스이기에 저런 반감 자체도 이 아기장수 이야기가 현대인에게 와닿는 구석이 많은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에도 외국 동화 '빨간 모자' 이야기는 여성의 자립과 실패와 관련된 페미니즘적인 분석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어떻게 가부장적인 시선에서 변형되었는지 각 학자에 대한 분석과 여러 이야깃거리를 담아놓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책에서 이 '빨간 모자' 이야기를 우리나라 설화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연결하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요. 그 외에 우리나라 설화 '구렁 덩덩 신선비'나 '콩쥐팥쥐'는 우리나라 토속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기는 하나 외국에서도 비슷한 계열의 설화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일종의 국수주의적인 시선으로 자국 설화의 독자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도리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설화 분석글을 찾다 보면 설화의 독창성보다는 국가나 인종을 넘어 인간의 집단 무의식과 관련짓는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내용의 수위나 묘사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구렁 덩덩 신선비'나 '콩쥐팥쥐'는 오히려 그런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한 설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설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며 책의 마지막 장에는 우리나라 설화 속에 등장하는 버드나무와 관련지어, 흔히 '여성성'을 상징한다고 알려진 버드나무가 특정 성별이 아닌 초월적인 성, 혹은 양성성을 띄는 사례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수목(樹木) 신앙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가장 첫 단원에서는 우리가 전래 동화라고 지칭하는 설화에 대해서 그 종류가 다르고 창작과 구전이 섞여 있는 것들의 명칭을 구분 짓지 않고 안일하게 '동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한 지적이 따라오는데 이는 외국계 설화를 뜻하는 용어들을 번역할 때 적절한 단어가 없었거나 혹은 처음 일본이 외국 설화를 번역할 때 생긴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경우라고 하더군요. 모든 설화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요, 예를 들어 가장 흔하게 알려진 그림동화의 원본을 조사하면 파악할 수 있듯 상당수의 내용이 그러하며 후대에 어린이 용으로 수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명칭에 대한 오류와 제대로 된 정의에 대해서는 앞으로 활발하게 토론이 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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