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공포소설이나 환상소설들을 찾다 보면 뱀파이어와 같은 흡혈귀 관련 소재라거나 혹은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소생하는 공포를 다루는 이야기를 좀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유의 이야기가 서양 공포소설에 많았던 것은 이와 관련된 구전 같은 것이 전해지는 게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하지만 뱀파이어 소설 같은 것도 가끔 공포소설을 찾다가 얻어걸리는 경우가 많은 법이지 이것만 전문적으로 파고든다거나 찾아본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기담이나 환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소설은 좋아하지만 아직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도 분량이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읽지 못한 형편이었고요. 카르밀라 같은 경우는 제목만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왠지 정보를 찾아보니 이 책이 뱀파이어를 다루는 소설로 그 유명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보다 더 먼저 나왔으며 제가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 『카르밀라』의 뒤표지에서도 역시 그런 언급이 있어 흥미를 끌었습니다.
일단 도서관에서 발견한 소설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붉은 표지에 아담한 사이즈, 그리고 제목은 유명하여 다른 매체에서도 한번 언급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작품이라 흥미가 생겨서 이번에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주워들은 정보로 아는 것은 카르밀라라는 여성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또 다른 여성 뱀파이어가 아닌 이가 주인공이라는 정도였어요. 소설 자체는 그리 긴 내용이 아니라 이 소설 말고도 동일 작가의 다른 단편 소설인 '그린 티'가 실려있었는데 내용이 환상적이고 기이한 면모는 이 단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린 티' 같은 경우는 뱀파이어가 아닌 특정 사람들 눈에 보이는 악령에 관해 다룬 소설이지만요. 책에 실린 두 소설의 공통점은 둘 다 액자형 구성을 띄고 있으며 헤세리우스 박사가 남긴 기록을 저자가 발견하여 들려주는 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헤세리우스 박사는 작가를 투영한 캐릭터와 같은 것일까요? 책을 읽다보면 다른 소설에 같은 존재가 두 번 언급되어 뭔가 연결적인 느낌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소설 『카르밀라』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의사인 아버지와 자신을 보살펴 주는 고용인 여성들과 함께 살던 소녀 로라가 어린 시절 기억을 되새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로라는 다섯 살 무렵 아름다운 한 여성이 밤에 방에 갑자기 나타나 그녀에게 피를 빨리는 -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암시적으로 나오는- 사건을 겪고 또 어느 정도 성장한 시점에서 아버지의 친구인 슈필스도로프 장군이 사랑하는 조카딸을 갑자기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등의 사건을 겪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저택 앞에서 마차 사고가 일어나고 로라의 가족은 카르밀라라는 소녀의 어머니로부터 자기 딸을 당분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지요. 충분히 예상 가능하게 이 카르밀라라는 소녀는 바로 어린 시절 로라를 습격한 뱀파이어로 굉장히 아름다운 미모를 지녀 주위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로라도 그녀에게 신비로운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독특하게 로라와 카르밀라와의 관계는 소녀들끼리의 감수성을 묘사한 것인지 몰라도 상당히 퀴어적인 느낌을 많이 뿜습니다.
카르밀라가 오고 난 뒤 로라의 마을 근처에서 젊은 소녀들이 희한한 열병을 앓다 죽고 로라의 저택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며 로라 역시 열병을 앓고 그것이 흡혈귀의 소행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등 불길함이 감도는데요. 카르밀라의 정체는 몰락한 카렌스테인 가문의 여성 밀카르라 부인으로 그녀 역시 과거 뱀파이어의 습격으로 흡혈귀화했다는 사실이 막판에 드러납니다. 결국 카르밀라는 그녀에게 조카를 잃고 복수를 위해 뱀파이어를 추격하던 슈필스도로프 장군과 다른 일행에 의해 처치되지요.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와 뱀파이어라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소재 등 흥미진진했지만 소설의 아쉬운 점으로는 옛 소설이기 때문인지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 중 하나로 뱀파이어를 조사하고 추적하는 인물로 보르덴부르크라는 남작이 막판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등장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거나 카르밀라가 데리고 다녔던 수수께끼의 인물들 그녀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또 다른 뱀파이어들의 존재와 행방에 대해서는 의문으로 남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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