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부터가 '동서기담』이라 호기심이 생겼는데요. 앞의 동서는 대강 작가 이름이거나 아니면 동양과 서양을 통틀어 부를 때의 '동서'거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의 부제가 '동서양의 미스터리한 이야기 모음집'인 것으로 보아 후자가 맞더군요. 일단 중요한 것은 뒤의 기담이었는데 무서운 이야기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들은 도서관엔 그 수가 많지는 않아서 좀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간혹 이런 책들을 발견하면 즐거운 점이 많아 망설이지 않고 책을 빌려왔습니다. 책의 저자는 시부사와 다쓰히코로 생소한 이름인데 속표지의 저자 설명에 의하면 일본의 소설가이자 프랑스 문학자, 평론가로 사드의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거나 『유럽의 유방』과 『황금시대』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냈고 만년에는 『잠자는 공주』나 『호미기』와 같은 소설을 내어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개척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 동서기담의 내용들은 제목의 그것대로 동양과 서양에서 있었던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일들을 짤막하게 실어놓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테마 별로 총 49개가 실려있으며 일단 일본의 기담들이 많은 편이지만 서양의 이야기도 절반에 가까운 분량으로 실려 있고 종종 중국의 이야기도 더러 실려있습니다. 저자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출처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신빙성은 있지만 다만 출처가 되는 자료들 자체가 일본의 기담집이나 옛날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그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특히 책에 언급되는 다양한 일본의 기담 서적의 명칭들을 본다면 일본에서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참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일본은 문화 특성상 이런 기담이 많은 건지 아니면 원래 나라마다 희한한 이야기는 많은데 유독 일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기록한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보면 일본 못지 않게 중국도 이런 기록이 상당히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중에는 제가 '음양사' 같은 소설에서 본 이야기도 실려있어서 반가웠어요. 혹시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담은 없을까 했는데 그 수가 많지 않고 다만 17번째 이야기의 '옛 물건의 둔갑'에 대해 다루는 부분에서 도깨비의 언급과 도깨비의 원류가 조선이라는 설명이 한번 등장합니다. 일본에서는 도깨비와 비슷한 존재로 '쓰쿠모가미'라는 존재가 있다는 비교 설명과 더불어요. 그리고 반드시 무시무시한 이야기만 실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도 실려있는데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는 사람 이야기나 꿈과 관련된 신비로운 이야기 등도 나와 분위기를 전환하기도 합니다. 특히 꿈이나 유체 이탈 현상과 비슷한 소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지는 이야기라 그런지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 실린 기담들 모음을 본다면 꼭 예전에 인터넷에서 유행하여 읽었던 로어 시리즈를 활자로 인쇄한 것을 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로어 시리즈의 모태가 되는 것이 이런 종류의 서적이 아닐까 싶었는데 로어 시리즈는 유행이 좀 지나간 것도 있고 그 이야기들을 완독 한 것도 좀 시간이 되었지만 일단 이 책에 실린 기담이나 괴담들과 비교해 볼 때 제가 기억하는 로어 시리즈와 겹치는 이야기는 마땅히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비슷한 구성은 있을 수 있으나 완벽하게 겹치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아서 좀 놀랐다고 할까요. 하지만 미스터리함을 최대한 남겨서 읽는 독자에게 오싹함을 안겨주던 로어 시리즈와는 다르게 저자는 책에서 설명하는 사건들이 일종의 환시라거나 자기 암시, 자연 현상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본 것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오해했다거나 하는 등 좀 더 현실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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