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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리뷰

by 0I사금 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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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더운 여름 으스스한 내용의 책이 없나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제목부터가 기담집인 것을 보니 일본 특유의 기묘한 이야기이겠거니 했는데 작가의 이름을 살펴보니 다름 아닌 오노 후유미, 바로 『십이국기』의 작가더라고요. 십이국기가 완결 아닌 완결이 난 뒤로 오노 후유미가 낸 소설들은  몇 편 읽은 적이 있었는데 대개 그 소설들은 공포 아니면 미스터리에 가까운 내용들로 원래 작가가 판타지 소설가라기보단 공포 소설을 더 썼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오노 후유미의 공포 소설들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래도 십이국기 시리즈의 이야기를 마저 써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책을 폈습니다. 이 소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괴담 전문지에 연재했던 작품들을 모은 것이라고 속표지에 설명이 나옵니다. 


소설은 단편집이라기보단 일종의 연작으로 일본 특유의 신기한 이야기를 해결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보통 이런 경우 음양사라던가 주술사라던가 신사의 인물 같은 인물이 중심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의 해결사는 목수 '오바나'입니다. 각 단편에서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등장인물들이 희한한 일을 겪자 그것이 집안의 구조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하여 목수 오바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오바나가 집의 문제점이나 내력을 판단하여 더 이상 기묘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치를 취해주는데요.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여기서 기묘한 사건을 제공한 존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 어느 정도 추측의 선으로만 판단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내용이 어딘가 환상적이면서 미스터리함이 남아요. 


어떤 단편에서는 유령이 된 존재들이 매우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기도 하며 심지어 인간이라기보단 요괴에 가까운 존재들이란 판단이 드는 것도 있다지만 그것이 의도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려 했다기보단 뭔가 사정이 있었을 법 하다 싶은 것들도 존재하고요. 그리고 각 단편집에서 기이한 일을 겪는 주인공들도 평범하지만 하나같이 나름 가족사적으로 서글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어 약간 쓸쓸함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 특유의 시골 문화나 전통의 파편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뭔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전근대의 풍습이 더 오래 잔존한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할 지요.


어떤 단편들은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작가가 여성이라서 그런지 강인한 여성들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하는 단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작가의 전작 『십이국기』에서 타인의 눈치를 보며 수동적인 여성들이 주체성을 확립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듯 여기서도 나름 능동적이며 주관이 확고한 여성들이 보이는데 과거 농가 출신으로 무사 집안에 시집온 뒤 괄시 받는 시집살이를 보냈지만 그렇다고 피해 의식에 휩싸이지 않았던 어머니-보통은 피해 의식 때문에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화풀이를 하기 마련이라-나 집안에선 애물단지 취급받고 첫사랑의 죽음에 충격을 먹어 질 나쁜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가 딸을 지키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독립을 한 여성이라던가요. 이런 주인공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묘한 존재가 나타나도 그것이 공포를 가져오기보단 기묘하고 뭔가 여운을 남기는 결말로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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