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놉(NOPE)』 리뷰 2

by 0I사금 2024. 12. 25.
반응형

 

시선에 담긴 폭력 : 공포영화 『놉(NOPE)』의 "눈을 마주치지 마"

넷플릭스를 통해서 보게 된 괴물영화 『놉(NOPE)』은 곱씹을수록 신기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클리셰를 벗어나는 괴물영화 같다가도 그 안에 담긴 상징은 많다는 건 영화 까막눈인 나도 알 수 있을 정도. 그래서 여기저기서 영화에 대한 분석글을 찾아보고 있는데 새로운 해석이 나올 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전작인 『어스』보다 더 재미있게 본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 거지만, 작중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는 규칙이 많이 등장합니다. 

 

맨 처음 광고 촬영장에서 OJ는 스태프들에게 자신의 말과 눈이 마주치면 위험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를 했고, 이후 괴물 '진 재킷(극 중 주인공들이 붙여둔 이름)'이 나타났을 때 동물조련사답게 눈을 마주치면 공격한다는 괴물의 동물적인 습성을 빨리 파악하기도 하지요. OJ와 관련된 인물들이 생존할 수 있던 이유도 이런 관찰력과 판단력 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OJ의 경고를 무시한 인물들이 작중 어떤 일을 당했는지 생각한다면 굉장히 대비되는 수준.


또한 '진심을 알려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라'라는 기존 메시지를 엎고 살아남기 위해 시선을 회피할 필요도 있음을 영화가 역설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적어도 진심을 알기 위해 상대방의 시선을 맞추는 게 가능한 상황은 서로가 대등하다고 여겨질 때 한정이며 그 외에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상황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도 않으니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폭력을 담을 수 있는 메시지는 초반 OJ가 광고 촬영장에서 말과 함께 있을 때 확인할 수 있는데 내향적인 성격의 OJ는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자신한테 쏠리자 당황하여 버벅댑니다.

 

시선이 담긴 폭력이 폭력이 아니게 될 때는 시선에 담긴 당사자가 영웅적인 행위 내지 희생적인 행위를 할 경우, 그것을 잊지 않고 알리는 용도로써 활용될 때예요.

오빠인 OJ를 구원해 주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드는 바로 외향적인 성격인 에메랄드이며 이 둘은 평소에는 남매답게 티격태격하는 타입이긴 하나 여기선 여동생이 오빠의 구세주로 나서게 되는데요. 동시에 그에 이어지는 영화사 속에서 잊힌 '흑인 기수'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합니다. 시선이 주는 폭력은 그 의미가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어도 사회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인데 내향적인 OJ 같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곤란함 같은 소소한 일화부터 집단 따돌림 현장에서 피해자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 사람들 앞에 노출시키는 것, 사회적 약자들을 이용하기 위해 그들의 이미지를 동의 없이 멋대로 도용하는 일에서부터 몰카나 엔번방 같은 성범죄까지 매우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어요.


또한 시선은 계급과 권력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선 신분이 낮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을 함부로 마주할 수 없었고 시선이 마주칠 수 있다는 건 계급적으로 대등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는데요. 만약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을 바로 쳐다본다면 그것을 신분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응징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앞에서 약자의 이미지를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혹은 조롱하기 위해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경우도 비슷한데 『놉(NOPE)』은 그 상황 자체를 역으로 이용하여 공포를 가지고 온다는 게 특이점입니다.

이걸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주프의 쇼라고 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주프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면서 어릴 적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살아온 인물입니다. OJ처럼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며, 굉장히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과거 유명 시트콤에 출연했던 영광을 지우지 못한 인물로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로 해석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에 항상 노출되었던 인물이 다른 존재(진 재킷)를 시선에 노출시켜 인생 역전을 노리던 인물로 변모한 셈이니...

 

https://youtu.be/EchHwdXVT3I

주프의 쇼는 괴물인 진 재킷을 볼거리로 이용하려다 처참하게 몰락(정황 상 몰락 수준이 아니라 학살이지만)하며 우리 쪽이 권력이 있고, 상대적으로 더 나은 신분이기 때문에 상대편을 마음대로 바라보고 즐거워해도 된다는 관념을 철저하게 뒤집어버립니다. 여기서 괴물의 실체도 알 수 없고 그의 습성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은 주프의 오만과 주프의 쇼에 아무런 생각 없이 휩쓸려 진 재킷을 볼거리 취급한 관객들 혹은 시청자들의 의식 없음까지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반면 OJ와 에메랄드 남매, 그와 협력한 엔젤 같은 경우는 괴물의 습성을 알아채고 괴물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으며, OJ 남매가 괴물과 시선을 마주하는 상황은 바로 남매가 위험한 상황에 빠져 진 재킷과 맞설 때 한정입니다. 이때 한정으로 괴물과 주인공 남매는 일시적으로 대등한 - 물론 현실적으로 진짜 한쪽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긴 했지만 심리적으로는 - 관계를 획득했고 그 결과 OJ 남매들이 위기를 극복하여 승리하는 주인공 타이틀을 거머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728x90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레어 위치』 리뷰  (0) 2024.12.29
『자백』 리뷰  (0) 2024.12.28
『놉(NOPE)』 리뷰  (0) 2024.12.24
『어스』 리뷰  (0) 2024.12.23
『겟 아웃』 리뷰  (0) 202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