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닭강정』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직접 보기 전에는 예고편에서 공개된 것처럼 캐비닛처럼 생긴 어떤 기계의 농간으로 다른 것도 아닌 주인공의 딸이 닭강정이 된다는 황당무계한 설정 때문에 이게 과연 무슨 내용인가 싶어 원작의 내용과 결말을 약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닭강정이 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건 다름 아닌 'XX인(스포일러 방지)'들이 잃어버린 기계 때문이라는 설정이며 드라마에서도 (원작이 웹툰이니 만화 맞지만) 그야말로 만화에 나올 법한 전개가 등장하더라고요.
물론 한국 드라마라고 해서 'XX인'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위의 두 작품은 아직 감상은 못했는데 찾아보면 은근히 SF 적인 소재를 활용한 드라마가 더 있기는 할 듯해요. 그런데 공개 전 이 드라마의 예고편 영상을 보았을 때 원작 웹툰 내용이 실사화가 가능하냔 댓글을 본 기억도 있고 먼저 올라온 시사회 리뷰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라는 글을 보아서 너무 만화적인 설정을 그대로 구현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보면 만화 원작인 실사화 작품들일 경우, 원작의 판타지적인 설정을 그대로 옮겨와서 현실과 맞지 않게 이질적이거나 심하면 저예산 코스프레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요. 하지만 『닭강정』 같은 경우는 병맛 코미디라는 장르가 영향을 준 것인지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하는 내용임에도 어색함을 많이 못 느낀 데다, 몰입도가 있었던 건지 10화까지 한 번에 정주행 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한 회차의 분량이 30여 분 안팎이라 10부작임에도 빨리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병맛 베이스인 코미디물 역시 사람의 호불호를 엄청 타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원작의 희귀한 설정을 실사화로 옮겼을 때 이걸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와 주인공들이 망가지는 개그씬이 취향에 맞느냐도 조금 갈릴 듯한 느낌. 감독의 전작인 영화 『극한 직업』이 연상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다른 리뷰에선 『멜로가 체질』이 연상된다는 후기도 많았습니다. 『멜로가 체질』 같은 경우는 같은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개그씬으로 『닭강정』에서 활용되는 경우도 많았고요.
또 병맛 코미디 장르답게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좀 우스꽝스러운 면모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아버지 이름은 최선만, 최민아를 짝사랑하는 다른 주인공 이름은 고백중, 사별한 부인 이름은 조아혜, 작중 중요한 열쇠를 지고 있는 박사 이름은 유인원 이렇게 등장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딸 이름만 최민아로 멀쩡한 편이고요.
등장인물 이름이 특이한 건 장르는 상반되지만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인 『살인자ㅇ난감』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살인자ㅇ난감』 같은 경우 작중에서도 특이한 이름이라고 언급되지만 『닭강정』에선 특이한 이름들이 별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는 주인공인 최선만(배우 류승룡 분)과 최선만의 회사에서 일하는 고백중(배우 안재홍 분)이 닭강정으로 변한 최민아(배우 김유정 분)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여러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요.
그 스케일이 큰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들의 개성이 또렷하며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지라 소소하게 터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보다 보면 약간 공감성 수치가 드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배우들이 워낙 망가지는 걸 서슴지 않고 연기를 잘한 덕택에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장면은, 딸 최민아가 닭강정으로 변하기 전 닭강정을 사 온 곳이 이웃 맛집인 백정닭강정이라는 걸 알고 가게를 찾아갔다가 닭강정을 떨어뜨리고 절규하던 부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닭강정을 떨어뜨려서 울고 있는 황당한 모습임에도 주인공들은 매우 처절하기 그지없었거든요. 그리고 캐릭터들 중 가성비가 넘친다 싶은 부분이 많은 게 짧은 비중이며 사건에 직접 뛰어들지 않아도 개성과 매력을 자랑하며 재미를 더하는 인물들이 많다는 점이었는데요.
최선만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배우 김남희 분)은 이름은 안 나오지만, 최선만 사장과 고백중이 하는 짓을 보며 신기하게 생각해도 엮이고 싶지 않다는 현명함(?)을 보여주는 캐릭터고 중반 주인공들을 도와주는 고백중의 전 여자친구 맛 칼럼니스트 홍차(배우 정호연 분) 역시 짧은 비중에서 강렬함을 자랑하더라고요. 외에도 최선만이 자전거를 타고 단서를 찾아가는 부분에선 그와 경쟁이 붙은 엑스트라 사이클 동호회의 여성이라던가 잠깐 지나가는 인물들도 웃기더라고요. 왠지 이 드라마에선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 느낌.
또 이 드라마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사람을 다른 종류로 변하게 하는 수수께끼의 기계를 노리는 인물들이 많아 이것을 두고 싸움이 벌어짐에도 특정하게 빌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캐릭터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기계의 비밀을 알아낸 천재 연구자 유인원과 그 조카인 유태만이 주인공들을 막아서는 역할로 등장하며, 기계의 원래 주인인 XX인들 또한 이 사태에 말려들어 싸움이 벌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인원 박사 같은 경우는 너무 연구에 몰두한지라 조금 맛이 갔을 뿐이지 악의가 가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고 타고난 노안에 잘생겨서 잘나가는 자기 형에 대한 열등감에 망가진 조카 유태만도 이기적인 짓을 저지르긴 하지만 둘 다 주인공들 못지않은 개그 포지션에 알아서 자멸하고 정신을 차리는 인물들이라 그다지 악당의 포스를 느끼지 못한 덕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진정한 빌런은 조선 말기 XX인들의 기계를 훔쳐내어 사리사욕에 이용하려고 한 정효봉이며 가장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악인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효봉이 등장하는 부분만 장르가 다르다 싶은 수준이었어요.
반면 기계의 원래 주인인 XX인들은 사정이 딱하기도 하거니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게 원칙이며 오히려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인간들보다 선진적이고 평화로운 경향을 보여줘 막판에는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어요. 이후 결말에선 XX인들이 닭강정으로 변한 최민아를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는 등 신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니까요. 비록 XX인들의 사정으로 결말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는 다른 방법으로 주인공들에게 제안을 하게 되었고요.
이 XX인들이 인간들은 모든 걸 전쟁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공격적이라고 평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그들이 고백중에게 전하는 대사, 최민아의 깨달음을 본다면 병맛 코미디인 이 장르에서 상당히 심오한 메시지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원작을 보지 못했지만, 이런 전개는 원작과 동일한지 궁금해지는 부분. 그런데 주인공들이 과거로 돌아왔을 때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막으려면 기억도 같이 가지고 가야 할 텐데 딱 돌아온 시점에서 드라마가 끝나서 결말이 열려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단 전 긍정적인 결말로 해석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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