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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리뷰

by 0I사금 202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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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책이 깨끗한 것도 눈이 가지만 일단 제목이 특이해서 더 눈에 띄었던 책입니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 쓰레기가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일인데, 보면 예전에 다른 방향의 책에서 인간이 모여 살게 되면 필수적으로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파괴가 잇따랐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 인간이 좀 어쩔 수 없게 지저분한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보시면 뭔가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같고, '문명의 그림자'라는 제목에서 쓰레기가 인간의 소비 성향을 비추는 그림자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주는 것도 같으며, 쓰레기에게 저런 이름을 부여하면서 우리가 이미 버린 것,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 지저분한 것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같은 제목이라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처음 빌려왔을 때는 책이 일반 소설책들보다 약간 두꺼운 편이라 읽는데도 시간이 걸리거나 역사 내지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책이라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어 중간에 읽다가 관두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쓰레기'는 사람 입장에서 그다지 반가울 만한 존재는 아니라서요. 하지만 왠걸 책의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쓰레기'는 사람 입장에서 그다지 반가울 만한 존재는 아닌지라 책의 내용이 호불호가 있을 듯 했고, 내용도 대개 유럽(프랑스)과 미국 등지에 한정되어 있지만 쓰레기 처리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고심을 흥미롭게 전개해갑니다. 특히 책의 1장에서 프랑스 혁명 이전 쓰레기 처리 문제에 대한 법이 없었을 무렵,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그것이 온갖 질병과 악취의 온상을 만들어냈다는 설명 부분에서 제가 예전에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 『향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 소설의 배경이 프랑스 혁명 전후인데다 주인공의 특징이 타인을 뛰어넘는 가공할 만한 후각의 소유자라는 것이 부각되어 프랑스의 '악취'가 소설 전반에 매우 두드러지는데, 소설이 고증을 잘한 것이 이 책에서 설명하는 프랑스의 과거사를 본다면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버티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비위생적인 사례가 등장합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현재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쓰레기를 질병의 온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후에 파스퇴르의 발견 덕이라는 설명이 있던 것처럼 의외로 쓰레기에 대해선 적대적(?)이라 할 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인간들의 모습이 흥미롭다면 흥미로울 수도 있었고요. 그나마 이 쓰레기 문제를 고민했던 왕들이 제도나 사업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도시의 청결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현대에도 시민들의 비협조나 무지로 수포로 돌아가는 제도가 많은 것을 생각한다면 왕정제 시절에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과거 유럽인들이 쓰레기를 지금의 님비처럼 마냥 적대적으로 여긴 것은 아니라고 느낀 것은 쓰레기 옆에서 일상을 유지하던 옛사람들의 모습 때문만은 아닙니다. 음식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유럽 도시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돼지들을 자유롭게 풀어넣고 길렀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지금에야 도시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은 없지만 책에 따르면 종종 인간들에게 멸시나 천한 비유대상이 되는 돼지의 탐식은 쓰레기 문제에 있어서 인간들의 역사에서 꽤나 고마운 동물이라는 사실이 언급됩니다. 지금도 음식쓰레기들을 동물의 사료로 재활용하기도 한다던데 과거 유럽에서 음식쓰레기를 짐승의 사료로, 농작물의 거름으로 썼다는 이야기를 보면 동양하곤 이런 부분에선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돼지를 키우면서 그들에게 음식 남은 것을 주거나 하는 것은 옛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많이 있었던 일이니까요. 또 책의 중반에 걸쳐 설명하는 넝마주이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유럽엔 당시 넝마주이들이 한 사회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책에 따르자면 넝마주이는 일종의 사회의 아웃사이더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넝마주이가 등장한 이유도 그 사회의 요구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존재를 사회는 필요로 하고, 동시에 쓰레기에서 자원을 얻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까요.

 

책에선 이 넝마주이의 문화와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고 어떤 제도로 그들을 관리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줍니다. 그들이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도시는 청결을 유지하고 그들은 이 쓰레기를 팔아 다시 물건을 만들면서 생활을 유지했다는 사실에선 일종의 공생이 느껴지나 이들이 또한 사회에서 굉장히 천대받았다는 사실도 숨길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넝마주이들이 흔적을 감춘 것과는 달리 현재의 개발도상국에선 여전히 넝마주이가 하나의 직업군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요.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 현대의 쓰레기 처리 문제가 부각됩니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쓰레기는 썩지 않는 물건들이 많이 생산되어 버려지면서 더 이상 일상의 쓰레기는 짐승의 먹이나 농작물의 거름으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플라스틱과 같은 도저히 썩기 어려운 물질들로 현대인의 문화는 이런 종류의 물건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요. 

 

어쩌면 현대는 쓰레기 과잉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런 쓰레기 과잉을 부추기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의 소비문화도 책임이 있다고 책에서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쉽게 싼 값으로 필요한 것을 사고, 또한 망가진 것을 다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그 대체제를 다시 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이들 중에선 이런 소비지향적인 태도를 버리고, 사회적으로도 재활용을 선호하는 등의 변화가 있긴 있다고요. 책에선 환경보호 정책과 더불어 사회나 단체의 노력들도 비추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특이하게 고찰한 사례로는 바로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영감의 소재로 사람들이 쓰다 버린 것, 낡은 것들을 취했었다는 이야기를 예시로 들고 있는데요. 쓰레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 예술가들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더 이상 쓰레기를 단순 버리는 물건이 아닌 '놀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쓰레기 과잉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로 저자는 책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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