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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조폭연대기』 리뷰

by 0I사금 202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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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 제법 두꺼운 서적이라 빌릴까 망설였습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영국 저널리스트로 이 책의 표지 뒷부분에 저자 설명을 살펴보면 이 책을 집필할 때 범죄조직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이 책이 '마피아'라고 통칭할 수 있는 세계의 각 범죄조직에 대해 해박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탓인데 흥미위주로 집어든 책이지만 여러모로 세상사의 어두운 일면을 보게 해주는 책이랄까요. 책은 큰 단위로 13단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첫 부분에서 중반을 넘어선 상당량이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유명한 마피아들의 기원과 그 행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언급된 상당수의 범죄조직들이 벌이는 일이 결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도요. 이 책에 따르면 이들의 범죄행위가 세계화의 진행에 따라 더 확대되면 확대됐지 줄어들 일은 없겠더군요. 마피아들이 수익을 얻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매춘, 고리대금업, 도박, 인력매매, 마약과 무기 매매, 절도(자동차 절도) 등으로 비슷비슷합니다. 여기에 정치권의 부패인사들과의 결탁도 포함되고요. 그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것은 바로 어린아이를 성노예로 매매하는 것인데, 여성인권이 낮은 나라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이 만연한 나라에서는 특히 정도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마피아의 효시 격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마피아에서 미국의 코사 노스트라, 일본의 야쿠자, 중국 삼합회, 러시아의 오르가지자치야, 미국의 갱단, 그 외 유렵의 범죄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이 범죄조직들이 근대에 이르러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 형태가 중세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겁니다. 많은 마피아들이 그 조직을 이루는 형태도 중세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더군요. 그건 그만큼 조직범죄의 역사가 깊다는 말이 되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검계'라고 불리는 범죄집단이 존재했었다고 하니까요.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는 거의 마피아와 함께 역사를 진행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듯. 독특한 것은 마피아라는 것이 처음부터 범죄집단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부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항집단이 빈민들을 수용하다가 나중에 이득을 노려 범죄집단으로 변질된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인데 중국의 삼합회나 아일랜드의 lRA, 체첸 마피아와 남미국가들의 카르텔들은 그 탄생배경에 복잡한 국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였습니다. 의외로 콜롬비아 마피아들은 범죄집단임에도 빈민구제와 같은 활동을 벌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결코 잘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돈을 버는 행위는 철저하게 서민을 유린하고 그 피를 착취하는 행동이며 마약, 매춘, 노예 매매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경우는 힘없는 빈민, 서민들이고 범죄조직간의 싸움으로 피를 보는 것도 이런 사람들이므로. 거기에다 범죄와 척을 둔 정치인들, 부패하지 않은 정치인의 암살 등도 악질적이긴 마찬가집니다. 특히 일본 야쿠자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데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힘을 실어준 것이 바로 일본 야쿠자들로, 참으로 뻔뻔스럽게도 이차대전 직후 A급 전범으로 분류된 야쿠자의 수장들이 미국의 비호 아래 권력을 되찾는 부분에서 보는 사람이 화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일본의 여러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어 나온다는 것도 참으로 기가 찬 일인데, 일본문화를 접할 때 더 신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이를 거부하고 야쿠자의 실상을 밝힌 일본의 어느 양심적인 영화감독은 결국 협박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기도 했다고요. 그러고보니 제가 본 일본 소설에서도 일본 야쿠자를 미화한 소설이 엄청 많았었는데 미화할 게 따로 있지, 우리나라에서 조폭 신드롬이 한낮 유행으로 끝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나라에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다시 말하면 국제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범죄 조직은 없는 거 같습니다. 물론 일본 야쿠자 내에서 부락민 출신 재일 한국인 야쿠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엄밀히 일본의 범죄조직으로 분류되지 한국인 집단이라고 분류되진 않더군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자생의 범죄조직을 가지지 않은 나라들인 경우는 외국에서 들어온 마피아들로 골머리를 썩기도 하고요. 또 의외로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나라들 말하자면 뉴질랜드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도 조직범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 언급되는데요.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유럽의 복지국가를 이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 걸 보면 이런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선진국가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여기서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조직범죄는 (이것을 만약 직업으로 볼 수 있다면) 매춘 다음으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하더군요. 이것은 매춘과 범죄조직이 일종의 (강제적인) 공생관계를 이룬 탓이기도 하고요.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직범죄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대개 마피아와 같이 커다란 범죄조직에 대항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루어진 단체나 경찰들이 대다수인데, 멕시코의 언론인이었던 '라울 깁 게레로'는 혼자의 몸으로 부패한 멕시코 사회에서 범죄조직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 싸우다가 의문의 살해를 당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기소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씁쓸한 결말이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이것은 결코 '침묵시킬 수 없는 인간의 영혼의 힘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라고 정말로 느껴져서 책을 읽는 동안 이 한 부분이 사람을 감동적으로 만들더군요. 그리고 책에서 자주 설명해 주는 범죄조직의 탄생배경에는 부패한 정부와 심각한 빈부격차가 항상 따라붙습니다. 빈부격차가 넓어질 대로 넓어져서 빈민들이 그 차를 뛰어넘지 못할 경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범죄에 몸을 담는 행동뿐인데 이것이 과연 저쪽 세계만의 일일 뿐인지 우리나라도 책에 열거된 나라들과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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