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는 넷플릭스에서 한창 드라마를 찾아보던 와중에 생각나서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처음엔 감독 특유의 풍자도 강하고, 코미디 요소도 강한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빵빵 터지는 요소는 많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소소하게 터지는 요소가 많은 느낌의 영화였다고 할까요. 초반부 옥자와 미자가 강원도 산골에서 지내는 장면은 거의 힐링 영화 수준의 풍경과 평온함을 보여주던 장면이었고요. 여기서 미지가 절벽 아래로 추락할 때 옥자가 머리를 쓰는 장면이 좀 놀라웠달까. 겁은 많으면서도 위기 순간에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짐승이라는 점에서 묘했습니다. 미자가 옥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알아듣고 소리를 치거나, 마지막 다른 슈퍼 돼지들이 돌아가는 옥자와 미자를 향해 자기 새끼를 넘겨주는 장면들을 보면 말이죠.
다른 영화였다면 개 혹은 고양이처럼 귀여운 모습을 한 짐승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텐데 이 영화에선 돼지 취급받는 옥자가 그런다는 것도 독특한 충격. 어쩌면 미자가 죽어라 옥자를 구하러 뛰어다니는 모습을 사람들이 냉정하게 본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가장 박력 있던 장면은 서울 미란도 지사로 끌려가는 옥자를 구출하기 미자가 발로 뛰는 장면이었는데요. 지하상가 장면은 작 중 시민들 입장에선 날벼락이었건만 보는 관객 입장에선 그저 폭소할 뿐이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식품회사인 미란도 기업이 개발한 슈퍼 돼지 옥자 - 각국 축산업자에게 맡긴 26마리 중 하나 -를 구출하기 위해 주인공 소녀 미자가 모험을 감행한다는 내용인데, 산골에 살았다고 해서 미자가 마냥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좀 클리셰를 깨는 느낌이라 신선했고, 미자의 체력이나 위기 대처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충격이었어요.
거의 미자가 히어로급으로 상황을 다 해결하는 수준. 마지막에도 할아버지가 준 금돼지로 옥자를 사면서 옥자를 구해내니까요. 근데 이 금돼지 가격이 얼마이길래 회장인 낸시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나 싶었는데 이것이 상당한 액수라는 분석글이 많았고 손녀를 위해 저걸 마련했을 할아버지가 안 됐다 싶기도 했습니다. 옥자를 가축처럼 여기긴 했어도 미자를 대하는 걸 보면 진짜 손녀 아끼는 할아버지다 싶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마지막에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아기 돼지 장면이 정겨웠어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은 동물보호단체 ALF의 케이가 미자와 리더 제이의 대화를 통역하는 씬에서 제이의 대사가 길어지니까 그냥 축약하고 압축하여 미자에게 들려주거나, 미란도 뉴욕 지사에서 미자가 루시 미란도의 계략으로 홍보 대사가 되었을 때 그곳 통역사가 미자에게 통역해 주던 씬이었는데 "너 말 안 들으면 옥자 스테이크 된다" 이 부분이 특히 웃겼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면 조금 섬뜩하다 싶은 장면도 적지 않게 나왔고, 후반부 도축장 장면은 거의 공포영화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서 옥자가 도축되기 전에 끼어든 미자가 어린 옥자와 같이 찍은 사진을 꺼내자 도살을 멈추는 직원은 왠지 인상적이었는데요. 미란도 직원들은 하나같이 옥자를 가축 취급하며 미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인물들이었음에도 도축장에서 일하는 직원 한 명만이 미자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해도 좋았으니까요. 감독 특유의 풍자가 이런 데서 발휘된다 싶었을 정도. 영화에서 미자에게서 옥자를 빼앗아가는 빌런은 미란도 기업이고, 미자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동물보호단체인 ALF지만, 여기 등장하는 어른들은 양쪽 다 미자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은 안 들어요. ALF는 미란도 기업의 만행을 들추겠다고 옥자를 실험실로 보내면서 트라우마를 남기게 했고, 막판 낸시 미란도와의 담판에서 큰 영향을 주지도 못했거든요.
막판에 루시 미란도와 쌍둥이인 낸시 미란도가 철저하게 사업가라는 걸 파악하고 금돼지로 거래한다는 발상도 누가 가르쳐 준게 아니라 미자가 스스로 생각해낸 거였거든요. 그래도 에필로그에서 ALF의 후일담과 미란도 기업 운전수로 일하면서 소소한 개그씬을 보여준 김군이 합류하는 장면은 재미있게 보았네요.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란도 기업의 회장직은 루시 미란도보다 언니인 낸시 미란도 쪽이 더 적임이었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둘 다 똑같이 사업가인 거야 변하지 않지만, 낸시 쪽이 좀 더 이득을 따지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가장 빌런에 가까웠음에도 역으로 마지막 장면이 제대로 성립이 된 것 같다는 추측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란도 기업의 프랭크라는 이사는 루시보다는 낸시가 더 회장직에 맞다고 생각하여 언제라도 기회를 보고 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