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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인용 식탁』 리뷰

by 0I사금 2025.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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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인용 식탁』은 본 지 제법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리뷰를 써 보려 합니다. 제가 본 영화 리스트 중에서 꽤 기억 남는 것이므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마도 제 기억으로는 이 영화는 케이블 방송에서 틀어준 것을 우연히 보게 된 거 같은데, 개봉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유명해진 여배우 전지현의 이미지 변신 실패라던가, 공포영화로써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평을 본 기억도 있고 그 때문인지 흥행은 조금 부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공포영화라 생각하고 봤다가 내용이 단순 귀신이나 살인마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닌 인간의 어둠이나 트라우마를 다룬 심리극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그때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한 저에겐 신선했기 때문에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가 되었네요.

 

나중에 보니 국내에서는 평가가 조금 짠 편이지만 외국의 어느 영화제에서는 상을 받았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영화가 인간의 숨겨놓은 비밀이나 뒤틀린 기억 등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없지는 않았는데요. 이 영화 내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기면증 여인인 연(배우 전지현 분)이 등장하며, 그 연이 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인식 못하는 이것은 유령처럼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고 혹은 인간이 마음 깊은 데서 묻어두었던 어두운 기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어두운 기억이 있고, 또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이 불안하고 공포로 다가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인간승리나 성장을 다루는 영화는 결코 아닌지라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숨겨두고 싶었던 그 비밀이나 기억 때문에 뒤틀리거나 파멸하는 이야기로 흘러가지요. 

 

말하자면 해소되지 못한 트라우마가 어떤 식으로 인간의 삶을 좀먹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예를 들어 극상의 중심인물인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정원(배우 박신양 분)은 어린 시절 편부로부터 학대받고 그 학대에서 벗어나려고 집에 불을 질렀다가 자신의 어린 동생마저 죽게 만들자 큰 쇼크에 빠진 나머지 현재의 가정에 입양된 뒤로 그 기억을 봉인하다시피 살고 있었습니다. 연의 친한 언니 정숙(배우 김여진 분)은 아기였을 적 죽은 어머니 시체 옆에서 지내면서 그 젖을 먹고 살아났다는 기억을 정확하게는 인지 못하더라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고요.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이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들은 사람의 의식 속에 묻어두어도 문제를 일으키고, 혹은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살아난 기억이 자기혐오를 일으킨 것인지 아직 갓난아기인 자기 자식이 두렵고 애정이 가지 않아서 결국 아기를 살해하고 (영화를 보면 사고라고 볼 수도 있는) 자살을 하게 되는 정숙이나, 동생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과 자신이 현재 지내는 가정에서 친혈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그것을 부정하면서 결국 정신이 어딘가 붕괴된 상태로 극의 결말까지 가는 정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받아들여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내모는 인간들에게 나름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결말을 가지고 온 것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연 역시 정원이 보는 앞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맙니다. 결국 영화 내에서 구원받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는 건데 어쩌면 영화의 이런 우중충함이 사람들의 평가를 깎아내린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영화를 보면 인간들의 삶을 어딘가 뒤틀리게 만들고 끊임없이 불안을 가지고 오는 것은 자신들이 잊으려고 묻어둔 과거입니다. 하지만 그 과거를 밖으로 끌어온다고 해서 만화나 드라마 같은 여타의 창작물들처럼 그 과거를 극복하고 성숙해진다 이런 상투적인 결말을 내지 않는데요. 영화의 장르를 보면 당연한 일이며 실제로 정신분석학이니 심리학 서적을 눈대중으로 대충 훑어봐도 불안이나 트라우마와 같은 문제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서 환자와 의사가 협력하여 차근차근 고쳐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작품에선 흔히 인간승리를 포장하기 위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별 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많은데, 리얼리즘 계열이 아닌 이상 미화를 하거나 단순화시키는 건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작품을 많이 보는 사람들이 사람의 트라우마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거든요.

오히려 그런 작품이 차고 넘쳤던 시절이 많았기 때문인지 이런 영화가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르고요. 의외로 사소한 데서 그 사람의 기질과 환경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영화 『4인용 식탁』의 엔딩이 특히 기억에 남았는데 정원은 과거의 묻어둔 기억 때문에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연이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된 뒤 연의 혼령 내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여기서 극 중 인물들이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흘러가는 대사로 등장하는데요. 마지막 결말에서 주인공인 정원은 영화의 제목에서 일컫는 '4인용 식탁'에 앉아서 죽은 연의 혼령에게 음식이 너무 뜨거워서 아직 먹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이 대사는 정원이 여전히 자신의 어둠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음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결국 사람이 자기 어둠을 받아들이냐 마느냐는 한 순간의 의지로 결정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기도 했어요. 또 극상에서 정원의 집에 놓여있는 4인용 식탁에는 정원의 죄의식과 연관된 인물들이 잠깐씩 등장하는데요. 영화 초중반 부분에 정원은 지하철에 버려진 채 죽은 아이들을 우연히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나중에 뉴스 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그 아이들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원은 그게 자신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면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4인용 식탁에 앉은 아이들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빈자리지만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결국 남한테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는 자신만의 상처와 그림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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