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밤에』는 그림체가 어딘가 서정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내용도 동물들이 의인화된 애니메이션이라서 정말 오랜만에 이런 동화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띈 애니를 보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미국 애니메이션은 『쿵푸팬더』 시리즈처럼 의인화된 동물들이 활약하는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오는 거 같지만 왠지 일본 애니메이에서 이런 류의 작품은 많이 보지 못하게 된 거 같았는데요. 근데 검색을 해보니 이 애니메이션도 2005년도 작이라 나온 지 꽤 된 작품이더군요. 거기다 더빙까지 되어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할까요.
내용은 어벙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늑대 가브와 그런 가브와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염소 메이의 이야기인데, 동생은 이것을 보고 '포식자와 비포식자가 친구를 먹으니 막장'이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보통 이런 상상력이 애니의 강점 아닐까 싶었습니다. 물론 가끔 동물 다큐같은 데서도 동물들의 특이한 일들, 예를 들어 사자나 표범 같은 상위 포식자가 자기들이 잡아먹는 동물들을 감싸거나 보호해 주는 기이한 일들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이런 일들이 특수한 사건임은 분명합니다. 이 작품 내에서도 가브와 메이가 서로에게 갖는 애정을 보고 주위의 동족들이 당황해하며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설득 혹은 협박을 가하니까요.
왠지 보노라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양상이 되기도 해서 괜히 보면서 킥킥거리기도 했는데, 작품이 저연령대 애니라서 그런지 그렇게 막 나가는 것은 아니라 둘이 몰래 도망쳐서 나름 새로운 세상을 찾아보려 했다는 데서 참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보통 종이나 배경을 뛰어넘은 우정이나 애정을 그릴 때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는데요. 보통 종초월 신분초월 상태의 애정을 그릴 때 한 종족의 특성을 지워버리거나 상대방의 다른 그것을 악(惡)한 성질로 여기며 종을 아예 바꾸어버리는 '폭력'을 가하는 경우들이 다른 창작물들에서 제법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에선 메이와 가브의 종족적 특성이 가브와 메이가 서로를 받아들인 뒤에도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도 후반에는 서로 그 점을 인정하면서 일종의 성장을 이뤘다고 할까요. 몰래 짐승을 잡아먹은 가브를 못마땅해 여기던 메이가 자신이 굶어 죽을 지경이 되면서 가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가브에게 자신을 먹고 살아남으라는 유언을 남기는 장면은 나름 명장면이었다는 생각. 그리고 이 장면은 다음에 이어지는 메이를 위해 눈몰아치는 바깥으로 떠난 가브가 자신을 처형하기 위해 쫓아온 늑대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면을 돋보이게 만들지요.
그런데 이 가브와 늑대 무리가 싸우는 장면은 계속 이어진 작품의 분위기와 아주 다른 퀄리티를 보여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아주 보면서 감탄스러울 지경. 재미있게도 클라이막스의 이 비장감 때문에 제가 본의 아니게 착각을 하기도 했는데, 메이가 깨어나서 도착한 전설의 숲은 죽음 이후 도착한 환상의 숲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왠지 메이가 깨어나서 숲에 도달하는 모습도 환상처럼 처리되었기도 했고... 그런데 가브가 기억상실증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환상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더군요. 어째 죽어서 기억상실증을 일으킬 리는 없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엔딩에서 둘이 달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애니의 막이 내리는게 해피엔딩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더빙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남자성우인 메이의 목소리는 극 중에서 완전 나긋나긋한 데다 도피극, 거기다 저 늑대 무리의 가브를 향한 집착 때문에 묘한 상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듯. 또 어쩔 수 없는 맹수 동경이라고 해야 할지 좀 더 잔인하게 묘사되는 것은 염소 무리보다 늑대 무리이고, 늑대들의 대장 같은 경우는 도망친 가브를 죽이겠단 일념으로 설산까지 쫓아오는데 성우분의 연기력과 캐릭터가 합쳐져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어요.
가장 친한 친구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브가 바보같아도 보호해 주었다고 하는데 그런 애가 자길 배반하고 도망갔으니 화날 만은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나니 이 작품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마지막이 두 주인공이 보는 환상이었어도 그러려니 받아들였을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작품 내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충분히 그런 비극도 감쌀 수 있었을 거 같았거든요. 하지 그럴 경우 작품의 주제의식이 흐려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네요. 어째서인지 전 이 작품을 제대로 보기 전에 멋대로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라는 착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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