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재미있는 시리즈를 찾아보는 일이 드물어졌는데, 『기생수 : 더 그레이』 이후 본 거라면 최근 공개된 영화 몇 편을 제외하고 드라마 종류는 극히 줄어든 것 같네요. 근래 마지막까지 정주행 한 작품이 스토킹 실화 사건을 다룬 『베이비 레인디어』와 이번에 보게 된 『보드킨, 그들이 사라진 마을』 정도인데 일단 『보드킨, 사라진 마을』 같은 경우는 정말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보게 된 시리즈였습니다. 당장 넷플릭스의 소개 글에 의하면 "아일랜드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팟캐스터들이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조사하게 되면서 어둡고 끔찍한 비밀이 드러난다"라고 나와 있는데요. 왠지 이 글귀를 보고 내 취향에 맞지나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1화의 재생을 누르게 된 셈입니다. 전체적으로 딥해서 보기 힘든 『베이비 레인디어』에 비하면 『보드킨, 그들이 사라진 마을』이 더 밝은 톤에 가까웠단 생각.
그래서 소개 글에서 설명하는 어둡고 끔찍한 비밀이라는 문구는 조금 낚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상대적으로 고립된 마을에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절된 축제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고, 과거 그 축제에 실종된 사람들이 셋이나 있다는 점에서 혹시 마을 전체와 관련된 폐쇄적이고 음침한 사건이 메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흔히 작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범죄처럼, 주인공들이 파헤치는 사건도 마을 전체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건 일부이며 마을과 축제 자체는 배경 정도로 존재한다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일단 1화에서 미스터리한 분위기만 갖출 뿐 종잡을 수 없던 내용은 2화에서 오소리라는 별칭을 가진 아일랜드의 악명 높은 밀수 범죄자가 '셰이머스'란 인물로 위장하여 숨어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금씩 흥미를 더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보게 된다면 수배된 밀수꾼 셰이머스와 관련된 중요한 인물들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마을의 서윈 축제에서 실종된 사람은 밀수꾼 셰이머스의 형제 말라키와 그의 연인이었던 피오나 그리고 신원이 불분명한 여성으로 초반의 단서만을 조합한다면 축제라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노린 연쇄살인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는 셰이머스의 과거 범죄와 관련되어 은폐된 진실이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후 반전으로 실종자들의 죽음이 살인이 아닌 사고였다는 진실이 주인공들의 조사로 밝혀지고, 셰이머스와 관련된 인물 중 하나가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야기의 아귀가 맞춰지는데요.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의 중심이 밀수꾼인 셰이머스 하나에 맞춰지면서 마을과 축제는 배경으로 한정되고 마는 아쉬움이 존재하더라고요.
반전 추리물로써 킬링타임은 되지만 만약 고립된 마을의 폐쇄성을 풍자한다거나 은밀한 곳에서 집단적으로 진행되는 범죄를 파헤치는 내용을 기대한다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좀 특이한 건 사건을 파헤치는 역할을 맡은 주인공들, 기자인 도브와 조사관 에미, 인기 팟캐스터인 길버트의 설정과 관계성인데요. 드라마가 블랙 코미디의 특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이 셋은 사건을 파고드는 탐정의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셋 다 히어로의 기질과는 거리가 멀며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속여 넘기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큰 실수를 저질러 발목을 잡히거나 일이 안 풀리면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등 인간적이라고 하면 인간적일 수 있고 치졸하다면 치졸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래도 후반부에는 셋 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라마가 일종의 성장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화에서 팟캐스터인 길버트는 자신이 목숨 걸고 알아낸 이야기들을 결국 자기 채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던데 극적인 이야기가 저 세계관에서 묻히는 건 보던 내가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이건 길버트가 자신의 팟캐스트가 자기 생각만큼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내린 성숙한 결정이라는 의미이긴 했습니다만... 곁가지로 다루는 주제가 '이야기의 힘'을 말하는 게 아니었나 싶던데, 외적으로 길버트의 내레이션으로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알려주는 설정이긴 합니다만 결국 저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들과 관련자 외엔 아무도 이야기를 알지 못하게 된 셈이니까요. 그리고 보다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득을 본 건 셰이머스를 잡기 위해 잠입한 인터폴들 아니었나 싶었는데요. 인터폴들 후일담은 나오지 않지만 그렇게 잡으려고 벼르던 셰이머스에다 다른 아일랜드 갱단까지 잡았으니 실적은 말할 것도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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