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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르 : 천둥의 신』 리뷰

by 0I사금 2025.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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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는 여러모로 가공할 만한 좋은 소재이다 보니 마블 측에서 이미 재빠르게 히어로 만화로 재창작을 했다는 사실을 예전에 마블코믹스 『시빌 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시빌 워』에서는 북유럽 영웅신만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신들도 토르의 동료로 등장하는데요. 단순 신화의 내용만으로 따지자면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북유럽 신화를 더 즐겁게 읽은 감이 있고, 특히 토르는 고대 북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알만할 정도로 정감 가는 신이라 이것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탄생시킬지 궁금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토르의 신화 속 모습은 가공할만한 완력과 (분명 머리는 나쁘지 않지만)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면서 욱하는 성격인데 이런 성격은 캐릭터로서 제법 호불호가 갈리거든요. 그런데 영화 『토르 : 천둥의 신』은 왠지 호평을 더 많이 본 것도 있고, 특히 『어벤져스』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서 처음에는 시류를 따라가고픈 맘도 약간이나마 있어서 TV 방영 당시 끝까지 몰입하면서 봤습니다. 

처음에 영화 줄거리를 막연하게 접했을 때 신들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토르가 신의 힘을 억누르지 못해 좌충우돌하면서 인간계에 적응해가는 내용인가 싶더니, 영화는 제 예상을 깨고 내용이 전개됩니다.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는 판타지적이면서 동시에 SF적인 모습을 많이 띄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대-중세 유럽의 분위기완 다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보이는 데다, 토르라는 인물이 원래 신인 탓인지 아니면 성격이 워낙 적응력이 빨라서인지 인간계에서도 크게 이목을 끄는 짓을 안 하는데, 이것은 신의 힘이 봉인된 탓도 있었지만 토르의 성격 자체가 어딘가 차분한 면모도 보여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 왕자라고 난리 치거나 패스트푸드점의 컵을 깨거나 애완동물샵에서 말을 요구하는 등의 일을 벌이지만 이건 독특한 진상손님의 행동으로 여겨질 정도의 사고로 봐도 될 정도고, 묠니르를 되찾으면서 생기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으니 제외하고요.

그리고 히로인들의 매력도 나름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드는데, 토르를 조력하는 입장에 서는 인간인 제인은 분명 인간이라 힘이 없음에도 결코 토르의 발목을 잡지 않고 어쩌면 미친 인간 취급받을 수 있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역할을 하더라고요요. 분명 평범한 사람 기준 특이하게 보일 토르를 무시하거나 이상한 취급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법 호감이 갔습니다. 또 제인과 함께 다녔던 다른 연구원 여성이 매력이 있었다는 생각. 그런데 미묘한 게 원래 신화 속에서 토르의 부인은 시프고, 신화 속에서 큰 비중은 없어 이미지를 잘 떠올리기 어려운 신이 영화에선 강한 여전사 타입으로 나오는 데다 토르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이미지로 나와 이쪽의 이미지도 굉장히 맘에 들어서 이 삼각관계는 좀 많이 안타깝게 여겼던 기억이. 하지만 후속 시리즈에선 러브라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으로 전개되는지라 이런 걱정도 기우였던 듯싶네요.

그런데 초반 시프와 함께 나오는 동료 신들은 누구인지 잘 몰랐는데 판드랄과 볼스타그, 호건 같은 경우 후반에도 이름이 잘 언급되지 않다 보니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흐린 느낌이 있었습니다. 보통 헤임달 외에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그냥 시프와 세 전사라고 지칭되는데 판드랄과 볼스타그, 호건이 개성을 어필하게 되는 것은 다음 시리즈인 『토르 : 다크 월드』고 세 번째 시리즈인 『토르 : 라그나로크』에선 허망하게 퇴장하는 바람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어요. 반면 헤임달은 적은 비중임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보이는데 실제 신화에서 헤임달이 로키와 대립하여 죽으므로 영화에서 재창조되면서 나름 그렇게 강렬한 캐릭터가 된 듯합니다. 그리고 악역인 로키의 경우는 북유럽 신화의 원래 설정과 틀어져서 서리거인의 아들이고, 오딘의 양자이자 토르의 의붓동생으로 등장하는데요.  

『토르 : 천둥의 신』에서는 북유럽 신화 속 트릭스터적인 특성은 줄었지만 단순 그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으로 묘사되어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악당이 된 거 같습니다. 특히 후속작인 『어벤저스』에선 트릭스터적인 면모가 많이 살아나서 이 부분에 대해선 아쉬운 부분이 없어지니까요. 또 영화에서 나름 북유럽 신화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장면이 있는데 묠니르가 토르에게 저절로 돌아오는 것은 원래 신화의 그것을 따온 듯. 처음 토르가 묠니르를 되찾기 위해 정부 요원들을 다 제치고 들어갔으면서도 뽑아내지도 못해서 처음엔 굉장히 김이 빠졌었어요. 그런데 묠니르가 처음엔 주인이 나타나도 가만있다가 왜 토르가 사경을 헤매자 돌아오는지는 좀 불명인데, 만약 이것이 자아가 있는 무기라 신의 위엄을 잃어버린 주인의 정신과 공명되지 않거나 위기 시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고집스러운 무기라는 설정일까 싶어 찾아보니 토르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었네요. 

영화 『토르 : 천둥의 신』 의 마지막은 로키가 우주로 떨어지고, 토르는 인간세계를 잇는 다리가 끊어져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결말인데요. 그래도 마지막엔 주인공들이니 신들의 힘으로 어떻게 재회하겠지라는 기대를 보기 좋게 후려치는 바람에 도리어 굉장히 인상적인 결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화 『어벤져스』의 떡밥을 위해서일 듯. 또 중간에 로키가 인간의 코트 정장 차림으로 토르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아스가르드의 존재들이 아예 지구의 인간 세계와 단절되어 사는 것은 아닌 설정이었던 모양. 영화 자체는 액션만으로 본다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고 특별히 박진감이 넘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토르』라는 히어로 영화 시리즈의 시작이자 이후 큰 이벤트를 보여준  『어벤져스』 첫 번째 시리즈의 발판을 이루기 위한 프롤로그에 그친 느낌이지만, 신화의 그것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성공적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후하게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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