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은 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책 제목을 알게 되고 흥미가 생겨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계속 책을 찾던 중에 신간으로 들어왔던 이 책을 발견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고요. 책의 원제는 『Bright - Sided』로 표지는 위 이미지처럼 붉은 스마일이 피로 찍은 것처럼 섬뜩하게 나와있는데 현실을 무시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악(惡)으로 몬 긍정의 신화가 얼마나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는지를 생각하면 이 표지마저도 의미심장할 정도입니다.
책의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유방암에 시달렸던 자신의 경험을 계기로 현재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긍정적 사고가 얼마나 사람을 현실에게서 떼어놓았는지, 이 긍정적 사고가 교회/기업/과학과 결합하여 얼마나 사람을 착취하고 기만하는 도구가 되었는지를 자세히 고찰하지요.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오로지 惡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에 불과한 긍정성이 일종의 신화 내지 신앙이 되면서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압박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처럼 긍정적인 마음만으로 병이 낫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근데 보면 책의 제목 탓에 괜히 이 책에 편견을 가질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 거 같더군요. 예전에 『감정 커뮤니케이션』이란 책을 리뷰하면서 인간이 가진 다채로운 감정 중 공포나 불안, 분노와 슬픔과도 같은 부정에 가까운 감정들도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발달시키고 진화시켜 온 부분들이며 정도가 심하지 않는다면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라고 밝힌 적 있습니다.
문제는 『긍정의 배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긍정적 사고를 전파하는 설교사나 기업가, 종교, 내지 사이비 과학들은 오로지 긍정을 최고/최선으로 놓고 나머지 부정적인 감정들을 배제하라고 사람들에게 강요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현실에서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부당함, 억울함, 고통을 인생에 필요 없는 악한 요소로 몰아 그런 감정을 없애라고 주장한다거나 사람이 당면한 위험한 사건이나 불행에 대해서도 '평소에 당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책임을 돌리는 격인데요.
『감정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사람들이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감정 또한 인간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리기 위한 일종의 피드백 현상으로, 『긍정의 배신』에서 지적하는 이런 종류의 주장은 흔히 '일이 잘되면 신을 잘 믿은 탓, 일이 안되면 네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의 그것과도 똑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이비 종교와 똑같은 긍정적 사고 신앙이 사회적 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자기 계발서'의 모습으로 둔갑한다는 겁니다.
과거 읽었던 자기계발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데 성공하려면 불평하는 인간들을 멀리하고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을 사랑하고 부자를 사랑하라는 내용이었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네가 돈이 없는 것은 네가 돈을 미워하기 때문이고, 네가 가난한 것은 전적으로 네 마음가짐 탓이다라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일단 시선을 약간이라도 돌려보면 계층문제가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기본으로 알 수 있을 것이며, 흔히 행복은 물질과 상관없다고 말들 하면서 결국 행복은 돈으로 귀결된다는 모순적인 결론을 내린다는 데서 어이가 없더군요.
물론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해선 돈은 필수적이고 일단 풍족하면 좋은 것이고, 그 돈 자체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안되면 아무것도 안 되는 현실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그런 현실을 개인의 마음가짐 탓으로 돌리는 책의 수준이라니... 이건 『긍정의 배신』에서 언급하는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행복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과학 공식을 도출해 내려는 사이비들보다 질이 더 떨어집니다. 적어도 그 사이비과학들은 어떻게든 말은 안 되는 것 같지만 나름 합리적인 설명을 해내려는 것은 보이거든요.
책에서도 이런 류의 유명한 자기계발서들이 언급이 되며 책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지적하고 있더군요. 이 책은 마치 '상실'이나 '손해'에 대해 설령 부당하더라도 반발하지 말고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라는 게 책의 요지인데 이 논리는 해고된 노동자나 직원들이 아닌 기업에게 아주 유용한 논리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요. 그리고 다른 대표적인 자기 계발서들은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인터넷상에서 이 책의 부작용과 허상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많더라고요.
간단히 말하지면 현실에서 노력하지 않고 꿈꾸는 마음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는 것. 왜냐면 현실은 꿈이 아니므로. 그리고 현실의 문제에는 정말 불가항력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되는데 모든 사건과 사고를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일어났다고 믿는 것 또한 현실을 꿈처럼 바라보는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맺음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방어적 비관주의'입니다. 안정적인 생활을 지향하려면 우리 삶에 위협이 아예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거죠.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고가 현실을 왜곡하여 끊임없이 불안한 망상을 보여주듯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고 또한 현실에 있을 수 있는 문제를 외면하면서 현실을 더 틀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긍정의 배신』에 따르면 현 미국의 이런 사조는 오히려 반성과 죄악을 강조했던 전통적인 '칼뱅주의'신앙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책의 인용에 등장하는 많은 사례 중 긍정적인 감정이 장수나 질병의 개선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 또한 증명되고 있다고 합니다. 면역체계와 긍정성과의 연관성은 실제로 밝혀진 바 없으며 대개 언론의 설레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리어 비관주의자들이 위험을 미리 감지하거나 충격적인 일에 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역으로 더 안전할 수도 있다고도 하네요. 근데 이건 소위 자신을 '씩씩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있겠냐'라고 믿는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질병이나 장수는 마음가짐과 별개로 유전적인 요소와 평소의 생활습관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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