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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조선의 뒷골목 풍경』 리뷰

by 0I사금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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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리뷰한 책 『대기근 - 조선을 뒤덮다』는 마지막에 17세기 후반 경신대기근으로 조선 사회 전반의 체제가 변하면서 검계라고 하는 대규모 범죄조직이 생겨났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 말고도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같은 책에서도 검계가 언급되던데요. 막연하게나마 검계란 것은 현재의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존재들이면서, 무관을 지향하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 출세길이 막히거나 쓸모가 없게 되자 자연스레 범죄의 길로 빠져들어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알고 싶어 혹시 이런 것을 다룬 책은 없나 하면서 찾아보다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 중에 검계가 속해있다는 것을 보고 혹여 알만한 게 있지 않을까 빌려왔습니다.

물론 이 책은 제목대로 검계라는 조선 사회의 일부 단면만이 아니라 실록에는 그다지 많이 전하지 않는 일이나 양반들이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던 바깥의 기록, 민중들의 삶의 한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야사를 다룬 책들이야 예전부터 많이 나왔다고는 생각하지만 야사란 것도 거의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하고 민중의 이야기는 대부분 배제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은 지배자의 관점을 탈피하여 실록이 아닌 외부의 기록, 사람들의 구전이나 전승된 가요 등의 자료를 통해 당대 조선시대 민중의 삶과 양반사회의 허위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요. 
 
저자의 주관이 유독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지만 읽다보면 바깥으로 몰린 민중의 삶과 그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고귀한 신분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더 가깝게 여겨지는 탓도 있어서겠지요. 그리고 웬만한 양반들 이야기보다 민중사가 더 재밌는 것도 어쩔 수 없고요. 책의 내용은 크게 10개의 단원으로 나누어 민중을 구제하는 여력을 쏟았던 중인 출신 명의들의 활약과 병마와 싸워야 했던 고된 조선 민중들의 삶을 첫번째로 다루고, 두 번째는 가난과 사회적 불이익에서 탈피하기 위해 도적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과 은밀하게 계승된 도적집단의 양상, 그리고 사람들의 도적을 어째서 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양반상민 할 것 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도박과 유흥문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네 번째는 백성을 구제한다는 금주령이 도리어 어떤 식으로 백성을 옭아맸는지를, 다섯 번째는 출세를 위해 과거로 몰린 선비들의 형편없는 타락상과 모순된 사회상을, 여섯 번째는 어우동과 유감동이란 조선시대의 탕녀들을 재조명하여 남성중심의 양반사회의 위선을, 일곱 번째는 성균관에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도축업을 하던 반촌을 살피며 그 구역의 독특한 문화상을, 여덟 번째는 앞서 제가 언급한 검계의 실질적인 모습과 왈자로 칭해지는 오늘날의 건달 혹은 양아치 유사한 인물군상들을, 아홉 번째는 왕을 호위하는 별감들이 이끈 조선시대 유흥문화의 모습을, 마지막은 그 조선시대의 유흥문화에 모든 것을 탕진한 탕자들의 유형을 살펴보고 있지요.

조선시대가 어느나라보다 관료제도가 잘 정비되고 여러 학문이 발달한 사회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모순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아실 테지만, 왜인지 책을 읽으면서 당대 조선의 모습이 현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설령 기술이 진보하고 삶의 질이 나아진다고 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은 달라지지 않는 거 같습니다. 책의 각 단원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른데, 예를 들자면 돈과 명예를 뿌리치고 환자들을 살리려 한 민주의들의 모습에선 뭉클함과 그런 실력에도 중인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선 울컥함이, 양반남성들의 논리에 의해 변명도 하지 못하고 더러운 여자라는 오명을 써서 처형당한 어을우동과 유감동의 일화는 답답함을, 삶이 힘들기 때문에 유랑을 택한 사람들이 끝내는 도적집단으로 변모하고 사람들과 그 도적집단을 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는 당대 사람들의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반면 기녀와 도박장 등 유흥문화를 이끌고 지배했던 왈자와 탕자 그리고 그들이 범죄 쪽으로 변모한 검계 조직이야기는 엄숙한 조선의 껍질을 벗기는 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검계는 단순 직업을 잃은 무관들이 변모한 것이 아니라, 장례를 담당했던 향도계라는 조직에서 출발했던 군상들이 점점 범죄에 가담하고 조직화되어 살인, 약탈, 강간 등의 짓을 주업으로 삼게 되고, 기방과 도박판을 점령한 왈짜들 중에서 검계에 가담한 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사회의 어두운 면과 관련해서 현재나 과거가 크게 다를 바 없는 거 같은데, 예전에 리뷰한 『조폭연대기』의 조직폭력은 매춘과 함께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얘기를 떠올리면 납득이 가지요. 
 
하지만 이런 검계의 발생에는 중간계층이 더 이상 상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던 견고한 조선사회의 모순이 있다는 점을 보면, 인간사란 결코 그냥 만들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렇듯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는데 왕조의 실록에는 전하지 않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이 책을 읽으면 역사를 형성하는 것은 오로지 지배층만은 아니며, 대다수를 이루는 민중들도 흔히 그려지는 수동적이고 지배층에게 수탈만 당하는 불쌍한 백성들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사회의 큰 축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배제할 수 없는 법이지만 신분제로 표면화된 계급의 문제, 권력독점의 폐해는 어느 시대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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