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는 개봉 당일에는 바로 보러 가지 못하고, 부모님과 보러 갈 수 있게 적절한 날짜를 잡다 보니 감상이 약간 늦어진 케이스였습니다. 하지만 직접 극장에서 보는 게 좀 미뤄졌을 뿐이지 전작 『명량』과 『한산 : 용의 출현』을 극장에서 본 입장에선 마지막 시리즈인 『노량 : 죽음의 바다』도 늦더라도 극장에서 보기로 결심한 영화였습니다. 중간에서 끊는 것은 딱 질색인 구석도 있었고요.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 다른 이들의 리뷰를 찾아보면서 『노량 : 죽음의 바다』도 『한산 : 용의 출현』 때와 비하게 본격적인 전투씬에 들어가기 전 정치적인 면모 - 전편에서는 세작을 이용한 첩보전이라면 이번에는 일본군이 철수하기 위한 방법으로 명나라 군대를 이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짐 -가 지루하다는 평을 들었기에 약간 그 부분은 감수하면서 극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초반 정치적인 부분, 조선 수군/ 명군 / 일본군 세력 사이에서 공작이 오고 가는 내용이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이 있었지만, 명나라 도독인 진린(배우 정재영 분)이 후반부 어떻게 협력하고 활약하게 되는지 개연성을 부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산 : 용의 출현』 도입부와 비교하면 서사적으로 더 나아졌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한테 감화되는 진린의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뭐, 남의 나라 전쟁이라 적극적이지 않은 것까진 이해가 되는데 그 이유가 고니시 측 사신으로부터 뇌물을 받아처먹은 것이고 거기에 왜군 수급이라고 위장할 조선인 포로 수급을 받아먹었다는 데서 좀 욱한 부분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영화 후반부 해상 전투를 보면 결국 명군의 협조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 건 확실했으니...
그런데 겉으로 봐도 성향이 반대라서 끌리는가 싶은 것이, 저렇게 협조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순신 장군을 '노야(어르신)'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인간적인 호감을 표하는 건 의외였습니다. 이 영화 시리즈의 단점이면서 장점이라고 할까 전편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배우 변요한 분) 같은 적국 캐릭터가 조선 쪽 장수들보다 더 눈에 띈 것처럼 이번 『노량 : 죽음의 바다』는 명나라 장수인 진린의 캐릭터가 굉장히 입체적으로 등장하더라고요. (뇌물 받아먹고 비협조적이면서 동시에 이순신 장군을 이해해 보려고도 하는 등...) 심지어 부도독인 등자룡(배우 허준호 분)마저도 적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자랑하는 편으로 이번 시리즈에서도 조선 쪽 장수들의 캐릭터는 좀 희미한 편이라는 아쉬움이 존재해요. 심지어 적장인 시마즈 역시 호전성과 리더십을 동시에 갖추었지만 지독하게 패배를 겪는 인물로 상징성이 또렷한 편이었습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시작하며 조선군에 침투한 일본군들에게 철군령이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작중에서 여러 인물들의 입으로 이미 전쟁은 끝났다는 언급이 나올 정도로 막바지를 달려가는 상황. 여기서 원군으로 등장하는 명나라 군사 도독인 진린은 선조를 파렴치한 왕이라고까지 부르며 저런 왕에게 왜 충성을 다하는지 이순신 장군은 공적은 이미 쌓을 때로 쌓은 것 아니냐며 전쟁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는 정도. 이런 상황에서 어째서 이순신 장군이 이 노량 전투를 놓지 않았는지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설득력을 부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또한 이번 시리즈는 삼부작의 마지막이며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다루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어느 정도 상세히 묘사되는 편입니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 냉철한 면모가 부각되느라 그 심리 묘사가 적었던 것과는 반대이며 어째서 노량해전에 사활을 걸었는지 여러 해석이 가게끔 묘사가 되고 있어요. 이미 선조마저 전쟁을 끝내라고 압박을 하는 상황에 친우인 류성룡의 편지에는 광해군의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요청이 있는 등 만약 여기서 이순신 장군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인 격쟁에 휘말렸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그래서 진린은 끝까지 전쟁을 사수하려는 이순신 장군에게 죽을 자리를 찾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 의도를 짐작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복합적인 여러 이유가 작용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진린의 말대로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는다는 해석 또한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순 자살과도 같은 심정 하나만으로 전투에 뛰어들었다는 해석은 너무 얕은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셋째 아들 이면이 살해당하는 악몽에 시달리는데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달려가지만 아래에서 뛰쳐나오는 일본군 망령들(거의 좀비물 수준 묘사)에게 붙들리는 장면을 본다면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불안감과 죽은 동료와 백성들을 위한 복수심이 존재하긴 하지만 적군이긴 해도 일본군을 수장시킨 것에 대한 인간적인 죄책감이 섞여 있는 것으로도 보였으며 쌓이고 쌓인 원한을 끝내는 역할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상당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또한 전쟁을 제대로 끝내기 위해선 확실한 승리가 불가피하다는 의도 역시 느껴졌는데 비슷한 시기에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게 된 건 우연이지만, 드라마에서 고려가 2차 전쟁을 간신히 이기고도 거란족은 기어이 3차 침략을 일으킨 것처럼 전쟁의 불씨가 지속될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암시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순신 장군의 최후 묘사 또한 상당히 세련된 느낌을 받았는데, 직접적인 대사로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 죽음을 알리지 말고 전투를 지속하라는 대사는 아예 상황이 끝나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삽입된 정도 - 사기를 돋우기 위한 북소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기고 이것이 다시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그 죽음이 신화에 가깝게 재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북소리가 일본군에게 트라우마로 남는 재치 있는 묘사는 덤. 영화의 스케일은 삼부작 중에서 가장 압도적이며, 자막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것처럼 처절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실제로 이걸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앞뒤로 접근하는 일본군을 상대하기 위해 시마즈의 해군을 관음포구로 유인하여 몰아붙이는 조선 수군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 시마즈 군의 싸움은 목숨과 목숨을 건 것이지만 쾌감이 느껴질 정도로 짜릿했습니다.
거의 관객석에 앉아있던 내가 배의 시점이 되어 날아오는 포탄을 맞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그동안 시리즈의 노하우를 여기 노량해전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며, 이후 극장이 아닌 TV 화면이나 스마트폰으로 본다면 그 압도감과 웅장함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이 되더라고요. 그야말로 눈과 귀에 퍼붓는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며 체감 상 전작들보다 더 길고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솔직히 이 해상 전투씬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 표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북소리가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점이 여운이 깊게 남았어요. 그리고 전작들과 다르게 조선군과 일본군 여기에 명군(중국)까지 등장한 덕에 각국의 분위기나 차이점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갑옷으로 조선군과 일본군의 차이점은 눈에 확 들어왔지만 명군과 조선군의 갑옷은 비슷한 듯 차이가 있어서 그걸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항왜인 준사의 죽음이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보니 명량해전 이후 자세한 기록은 없는 것 같아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영화에서 꾸준히 비중을 차지했고 이번 영화에서는 『명량』과 『한산 : 용의 출현』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도 있었으며 마지막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하는 등 여러모로 인상적인 인물이었어요. 그리고 이순신 장군 셋째 아들은 배우 여진구였습니다. 환영씬에서 배우 얼굴이 자세히 나오자 부모님이 놀라신 건 덤. 『명량』에 나온 아들은 이회(배우 권율 분)로, 이번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서 이회는 배우 안보현이 연기했더라고요. 정작 같이 보신 엄마는 왜 허준호 같은 배우가 부대장 정도의 역할이냐고 의아하셨습니다. 정작 아빠는 명량이 더 재밌으셨다고 하셨네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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