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영화 『서울의 봄』은 화제가 있었음에도 처음엔 딱히 보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관까지 가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표값 문제도 있고 가까운 시기에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가 개봉하기 때문에 『명량』과 『한산 : 용의 출현』을 둘 다 극장에서 본 입장으로 꼭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에 다름 아닌 부모님이 관심을 보이시면서 저도 덩달아 오늘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젊은 시절 있었던 사건이 영화화되었다는 데서 궁금증이 생기셨다는 거였죠. 영화를 보기 전에는 대략 '12.12 군사 반란'을 모티브로 했다는 정도만 알고 보게 된 거였고요. 보면 등장인물들은 실존 인물의 이름을 약간 변형한 상태로 등장합니다.
처음엔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으로 어떻게 두 시간을 채우나 했건만 정말 놀라울 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초반 전두광(배우 황정민 분)이 하나회와 함께 요직을 차지하고 권력욕을 드러내는 부분은 좀 지루하다 싶었지만, 본격으로 반란 계획이 드러나면서 전개가 흥미로워지더라고요. 일단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다양한 사단이 이 사태에 말려들었다는 점 때문에 헷갈리기도 했지만 반란군도 진압군도 방심할 수 없는 전개가 계속 이어지면서 몰입도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동안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셈인데, 초반엔 반란군이 유리한 것 같다가도 진압군이 이기겠다고 여길 찰나에 다시 반전처럼 반란군이 유리한 상황이 되면서 실제 상황을 겪는 듯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영화에서 박정희 암살 사건 이후 야욕을 드러내며 하나회를 주축으로 요직을 차지하는 전두광을 견제하기 위해 육군참모 총장 정상호(배우 이성민 분)는 이태신 소장(배우 정우성 분)을 수도경비 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전두광과 이태신 사이에 대립이 생기게 됩니다. 전두광은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육군참모 총장을 전 대통령 암살범인 김동규와 엮어 체포하기 위해 현 대통령인 최한규(배우 정동환 분)의 허가를 받아내려고 하지만 원리원칙을 중시하던 현 대통령은 거부 의사를 표하고, 반란군의 계획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좀 의외였던 건 작중 대통령의 실권이 매우 약했다는 점인데 대통령인 최한규는 반란 사태에 직접 말려들지는 않았으며 결국 하나회의 압박에 밀려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다 미리 본 다른 사람들의 리뷰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고, 특히 배우 황정민이 매우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 나온 점 때문에 관심 아닌 관심이 생기긴 했습니다. 탐욕스럽고 권력욕에 가득 찬 대머리라고 할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부모님은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한 나머지 때려죽이고 싶다는 평을 남기실 정도였는데 진짜 배우는 죄가 없는 걸 잘 아시고 연기가 훌륭했다는 칭찬의 의미를 담은 분노였다고 할까요? 하여간 배우들의 연기는 주역인 두 사람에서부터 작은 역할까지 훌륭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결국 승리의 축이 전두광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기울었어도 끝까지 자기 임무를 지키며 살해당하거나 체포되는 군인들의 모습이었어요.
막판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에게 분노를 드러내면서 다가가던 이태신 소장이 그러했고, 이태신의 편에 섰던 특전사령관인 공수혁 소장(배우 정만식 분)과 그의 곁을 지키다 사망하는 오진호 소령(배우 정해인 분), 내부의 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육군본부 내에서 유일하게 빠르게 대처하며 상황을 판단했던 김준엽 준장(배우 김성균 분), 끝까지 이태신 곁에 남은 강동찬 대령(배우 남윤호 분) 등 인상적인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잠깐 나오는 장면이긴 합니다만 반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조민범(배우 김범수 분)이라는 병장이 육군본부를 지키려다 총격을 막고 사망하는데 작중에서 큰 역할은 아니며 한번 나왔을 뿐이지만 자기 임무를 끝까지 지키려다 죽는다는 점에서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더라고요.
작중 빌런이자 반란군의 주축인 전두광이나 하나회의 인물들 역시 빡치는 것과 별개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전두광은 물론이요, 다른 하나회 멤버들도 악역으로써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리우는데 권력욕이나 탐욕에 찌들었다고 해도 좋을 하나회 멤버들과 달리 도청을 전문으로 하면서 정보를 빼돌리고 진압군을 교란하던 문일평 대령(배우 박훈 분)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라 역으로 인상적이더라고요. 솔직히 진압군이 고전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저런 식으로 반란군 쪽에서 도청을 하면서 정보를 빼냈기 때문이며 결국 이런 전투에선 정보를 먼저 선점하거나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반란 사건처럼 큰 사태를 마주할 때 외부의 적도 위험하지만 진심으로 위험한 건 내부의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육군 본부 쪽 주요 인물들은 김준엽 준장 정도를 제외하면 자꾸 발목을 잡지 않나, 막판에 자신들이 불리하게 되자 이태신 소장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려고 하지 않나 한탄이 나왔습니다. 보면 반란군을 제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몇 번 왔음에도 육군 본부 측에서 오판을 하는 바람에 그 기회를 날려먹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제일 문제였던 건 국방장관(배우 김의성 분)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국방장관이 빌런이나 다를 바 없다는 소리를 들어 대체 어떤 악역인가 싶었는데, 대놓고 나쁜 짓을 저지르기보다는 겁 많고 무능한 인물이 요직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이더라고요.
행보와 별개로 국방장관의 인물 자체는 심각한 와중에 코믹한 씬을 던져주는 개그 캐릭터라서 웃기긴 했습니다. 웃김과 분노가 공존하게 되는 신기한 캐릭터라고 할까요.
영화 『서울의 봄』을 보다 보면 영화의 내용이 외부의 적을 두고 있는 상태에서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내부의 반란이 일어난 셈이라 현재 보고 있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과 유사성을 느끼기도 했었는데요. 차이가 있다면 『서울의 봄』은 반란군이 요직을 다 차지하고, 대통령 자리까지 해 먹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북한)의 침략은 언급만 될 뿐 큰 고려 대상도 아니었던 반면, 『고려거란전쟁』에서는 반란 덕에 성군으로 평가되는 군주가 나타났고, 이 반란 사건을 명분으로 외부의 적(거란)이 침략했다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지도가 적었던 고려사의 인물들을 조명한 것처럼, 이 『서울의 봄』도 현대사의 인물들을 조명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참고 : 영화 보고 나서 보면 더 좋을 『서울의 봄』 관련 정보 https://theqoo.net/square/3032142659
이 게시물에 따르면 12. 12 사태 자체가 워낙 극적인지라 그대로 살려도 충분했던 소재이긴 한데, 마지막 이태신 소장이 바리케이드를 넘어서는 장면이 추가된 이유는 이태신 소장 혹은 그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넘어서야 할 현실의 벽, 그 이후 역사적인 흐름이 얼마나 막막하게 흘러갔는지 영화를 통해 은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시디어스』 리뷰 (0) | 2024.11.21 |
---|---|
『잠』 리뷰 (0) | 2024.11.20 |
『노량 : 죽음의 바다』 리뷰 (0) | 2024.11.17 |
『한산 : 용의 출현』 리뷰 (0) | 2024.11.17 |
『명량』 리뷰 (0) | 2024.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