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시리즈의 2편인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는 고대하던 영화였고 개봉 당시 극장에 보러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감상을 하기 전에 본 영화 평이 좀 호불호가 갈리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거기다 영화 상영시간이 무려 2시간 40분은 된다는 정보를 접했기에 나름 각오는 했는데요. 일단 영화의 시작은 소린과 간달프가 브리의 주점에서 만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마 여기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첫 번째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편에서 주인공 일행이 들렸던 곳 같은데, 소린은 여기서 자신을 노리는 듯한 이상한 조짐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이야기의 시점은 『호빗 : 뜻밖의 여정』편의 전초전으로 바로 이 일 이후 호빗의 마을 샤이어의 빌보의 집에서 드워프들의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야기는 2시간 40분이라 충분하고도 남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곰인간 베오른과의 만남은 소설에서 간달프의 처세로 좀 더 유쾌하고 한템포 쉬어가는 듯 진행된 반면 여기선 베오른 일족이 오크들에 의해 사냥당하고 몰살당했다는 이야기가 밝혀지면서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근데 의외인 것이 이 베오른은 후반 다섯 군대의 전투에서 활약을 하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임에도 그 비중이 상당히 짧게 처리되었단 점입니다. 어쨌거나 베오른의 조력으로 어둠숲까지 주인공 일행은 도달하는데요. 여기서 간달프는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 돌굴드르로 떠나고 그 사이 어둠숲을 헤매던 일행들은 거미들에게 붙들리는 것은 소설의 전개와 같으면서 세세하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봄부르는 여기 숲에서 잠드는 물에 빠지는 바람에 그 육중한 몸을 일행들이 지고 가야 했던 반면 영화에선 오히려 봄부르가 드워프들 최강같은 묘사마저 나옵니다. 오크들을 상대로 드럼통을 쓰고 육중한 몸을 이용해 싸움을 펼치는 모습이라니. 그들을 뒤쫓는 오크들 중 수장인 아조그는 사우론의 부름에 맞추어 전쟁을 준비하러 떠나기 때문에 아들 볼그에게 자기 임무를 넘겨주는데 이번 2편에서 드워프들을 쫓는 오크들은 볼그의 무리입니다. 뭔가 어둠숲의 묘사는 감독이 예전에 공포영화를 감독했기 때문인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띄기도 하고, 특히 거미들의 모습은 크리처물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이 와중에 웃겼던 것이 거미의 사지, 아니 팔지를 붙들고 드워프들이 거열하는 장면을 보고 관객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는 것. 여기서부터 영화가 약간 독자적인 시점을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소설에선 오로지 빌보의 활약으로 거미들에게서 탈출했던 반면 여기서 드워프들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엘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레골라스 나올 때 탄성이 관객석에서 절로 터져 나왔는데 그만큼 반가웠던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겠지요. 제작진 측에서 노린 것도 같다는 느낌도 나지만 솔직히 저도 오래간만에 레골라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근데 『반지의 제왕』 시절과는 이미지가 좀 변한 것도 같았던 게 성격이 묘하게 더 날카롭다고 할까요?
그 와중에 자신들이 붙잡은 드워프들을 수색하면서 글로인의 물건 중 그의 아내와 아들(김리) 그림을 보면 흉한 괴물 운운하면서 폭소를 유발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엘프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 괜히 웃겼던 것은 스란두일의 첫 등장 씬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의 손에 커다란 반지나 화려한 나뭇잎 왕관 장식 때문에 왠지 사치스러운 이미지가 엿보여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소린에게 거래 제의를 하는 말 중 '북쪽의 무서운 용' 비슷한 대사가 있고 스란두일의 얼굴에 상처, 그것도 화상자국이 나타났는데 이것 혹시 『후린의 아이들』 떡밥이려나요? 엘프들 이야기에 유독 오리지널 묘사가 할애되었는데 아래의 타우리엘-레골라스의 관계나 킬리와의 연애요소라던가 하는 게 돋보이더군요.
엘프들 사이에서도 신분이 있기 때문에 타우리엘과 레골라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스란두일이 못 박았는데 여기서 막장드라마의 기운을 느낀 건 나뿐이었을까요? 거기다 타우리엘이 킬리의 위기 때마다 구해줌으로써 인연을 쌓지만 이 둘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보기엔 너무 급박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여서 오히려 레골라스와 타우리엘과의 감정선이 현실적으로 더 와닿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우리엘은 오리지널 캐릭터이고 헌재 레골라스가 드워프들에 대한 감정이 안 좋고 아버지의 생각에 어느 정도 따르고 있으나 반지 시리즈에선 유해진 점, 킬리는 자기 형인 필리와 함께 그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 등등을 볼 때 앞날도 정해져 있는 게 아닐는지?
영화 시리즈에서 사람들이 가장 불호로 꼽는 것이 바로 이 러브라인이었는데 시리즈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이게 굳이 필요한 내용이었는지 개연성이 있었는지도 의문이에요. 하여간 레골라스는 킬리를 걱정 겸 오크들을 없애기 위해 왕의 명을 어기고 일행을 쫓아간 타우리엘을 쫓아 호수마을까지 가는데 묘하게 볼그와의 맞싸움이 확실하게 끝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자이자 연모의 대상이었던 레골라스가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 타우리엘은 중독된 킬리를 구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장면 연출도 별로고 전체적으로 뭐 하나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뭐 결과적으로 레골라스도 킬리도 둘 다 무사하게 됐지만은. 그나저나 이 드워프 일행은 도무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더군요.
1편도 간달프의 보호와 빌보의 조력으로 여러 고난을 넘고, 이번 2편은 위기의 순간마다 조력자가 나와야 진행이 가능했는데 베오른 - 엘프 - 빌보 - 인간 바르드 - 다시 빌보 순으로 바뀝니다. 특히 바르드도 비중이 커진 데다가 그 캐릭터의 묘사도 원작과 다르게 좀 더 복잡하게 변화했습니다. 그는 너른골의 영주 기리온의 후손으로 기리온이 드워프들의 석궁으로 용 스마우그를 쏴 맞추지 못한 것에 마음의 빚을 진 듯한 묘사가 있었고, 탐욕스러운 영주의 견제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린 일행의 정체를 밝히고 보물을 약속했을 때도 휩쓸리지 않고 위험을 경고하는 등 현실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소설에는 없는 애들 딸린 홀아비 설정이에요.
반면 주축이 되어야 할 소린은 1편에 비하면 더 독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의 책사인 발린입니다. 소린이 스란두일의 제의를 거절했을 때에도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탄식하고 외로운 산 스마우그가 잠든 지하에 빌보가 혼자 찾아갔을 때도 예전의 왕자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깨우는 등 드워프 일행 중에서도 가장 현명한 모습을 보이지요. 드워프들 중 킬리가 타우리엘과의 인연과 수로에서 오크의 화살을 맞고 중독되어 죽어가는 사고로 비중이 커졌다면 의외로 비중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리인데 외로운 산으로 떠나면서 킬리의 부상으로 일행이 갈라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생을 두고 갈 수 없다는 필리와 약초에 대해 잘 안다면서 남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오인, 그리고 잠에서 늦게 깨느라 합류를 못한 보푸르는 호수마을에 남고 나머지 일행은 외로운 산으로 떠나는데요. 여기서 동생을 걱정하는 필리에게 소린이 너도 왕이 되면 누군가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두린왕가의 차기 후계자는 확실히 필리로 정해진 게 드러나지요. 하지만 필리의 미래도 킬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묵념. 맘에 드는 캐릭터인데 안타깝더라고요.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던 스마우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빌보는 절대반지를 이용해서 모습을 숨기기도 하면서 스마우그의 위협을 벗어나는데 같은 『셜록』 시리즈에 나온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스마우그와 강령술사(사우론)의 목소리를 맡아서 화제가 되었었다죠? 그런데 목소리는 변조된 버전이라 나즈굴에 더 가까운 느낌이지만요.
이 스마우그도 원작과는 이미지가 달라져서 원작의 무식해 보이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참나무방패 소린에 대한 가학적인 증오심을 폭발시키며 빌보 일행을 위협합니다. 도대체 소린을 노리는 녀석들이 몇명인 건지... 인기도 많은 소린. 여기서 원작과는 달리 소린이 용기를 내어 산 내부 드워프들이 만든 광산 도구들을 이용하여 스마우그를 공격하고 스마우그의 불길을 유도하여 용광로를 데운 다음 용광로의 녹인 황금을 뒤집어 씌우는데요. 아무래도 스마우그 자체가 불의 용인지라 열기로 공격하는 것은 큰 타격이 없었던 모양. 하지만 후반 바르드의 화살 한대로 순식간에 쓰러지는 장면은 납득이 어려워서인지 나름 극상에서 스마우그에게 리스크를 안겨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린 일행의 용광로 공격에서도 살아남은 스마우그가 빌보 일행이 호수마을과 관련 있다 여겨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기 위해 날아가고 빌보가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며 한탄하는 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아시다시피 3부작인지라 중요한 이야기를 앞에 두고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정작 중요한 내용에서 영화가 끝나는 지라 실제 영화관에서도 한 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다음 편 중요 떡밥이 많이 나오는 편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오크병사들의 모습은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꽉꽉 눌러 담아 빠르게 전개해 나가는데도 장면의 상당수가 잘려나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몇 장면(러브라인 관련)은 괜히 시간 끄는 게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