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테이젼』은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로 TV에서 예고편을 보고 흥미가 생겨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제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되던 것이 치명적인 전염성 바이러스로 사람 수가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가는 영화지만 그것이 꼭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건 아니었어요. 소재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봤던 한국영화 『연가시』같은 경우나 흔한 좀비 영화처럼 일분일초가 급박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겪는 일상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영화의 예고편에선 맷 데이먼이 연기한 엠호프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나왔던 거 같은데 영화는 일인 주인공이라기보단 일종의 군상극에 가깝단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영화 속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경위가 홍콩으로 출장을 갔다 돌아온 그의 부인(기네스 펠트로 분)이 발병하여 사망하면서 시작됩니다. 의외로 유명한 배우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일찍 죽는 바람에 깜짝 놀랐는데 바이러스의 발병 원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회상처럼 많이 등장하기 하더군요.

이후 엠호프가 부인과 의붓아들을 잃고 딸만이 남으면서 딸을 구하기 위해 백신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사투가 벌어지나 했는데 오히려 그런 식상한 전개를 거치지 않아서 도리어 놀라웠달까요. 엠호프 일가는 면역력이 있지만 아직은 불안한 상태에서 일반인 신분으로 언젠가 백신이 나오길 기다리는 소시민 가정으로 묘사됩니다. 또 영화에 상당히 낯익은 얼굴의 배우들이 나왔는데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한 로렌스 피시번이 미국질병센터의 박사로 나오며 극상에서 조사를 위해 연구원을 파견 보내는데요.

이 연구원은 바로 『타이타닉』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연구원은 바이러스 발병원인을 조사해나가다 감염되어 중반에서 사망하고 말지요. 배우 주드 로는 파워블로거로 제약회사 쪽 사람과 짜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좀 얄미운 역할로 나오더군요. 『인셉션』과 『다크아니트 라이즈』로 알게 된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도 홍콩으로 파견 나간 연구원으로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을 구할 백신을 구하겠다는 홍콩 측 연구원에 의해 납치되어 백신과 교환됩니다. 근데 이 홍콩 측 연구원을 연기하신 분은 『다크나이트』에서 라우로 나온 배우 친한이 연기했습니다.

바이러스의 백신은 연구원 여성이 환자를 돌보던 아버지마저 감염되자 스스로 몸에 인체실험한 덕택에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요. 이 부분도 꽤나 감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영화가 차분한 톤이라 사람의 감정을 극한으로 밀어내거나 잡아당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모든 일이 있을 수 있는 상황처럼 묘사되더라고요. 다른 영화 같으면 백신이나 약(개나리 추출액)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의 습격이나 거물 납치, 시카고 폐쇄에 따른 시민들의 시위나 패닉에 좀 더 초점을 맞출 법도 한데 이 영화는 그것을 좀 더 거리감 있게 표현한 거 같아요. 좀 담담한 소설 같은 느낌이랄까요?

참고로 영화상에서 백신은 만들어져도 발병원인에 대해선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병든 박쥐와 병든 돼지가 어디서 만났냐는 언급이 있던데 영화 마지막에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면서 개봉 당시 호불호가 많이 갈렸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마 치사율 높은 바이러스 하면 꽤나 공포소재로도 적격이고 내용을 급박하게 굴릴 수도 있었음에도 그런 클리셰를 피해가니까요. 아마 그런 기대를 하고 봤다면 실망했겠지만 이런 방식의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지나간 지금 영화의 내용을 반추해 보면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좋은 평가를 주게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