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것을 볼 때 현실을 지나치게 반영한 작품들은 왠지 피하게 된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던 사건들을 영화화했을 경우 어느 정도 순화했을지라도 그 영화의 기반이 되는 사건들이 제대로 해결 안 되고 여전히 문제점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더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자꾸 은연중에 떠올리는 바람에 보기 괴로워진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영화를 보러 갈 기회가 생기면 그런 건 별로 거부하는 편이 아닌지라 이 영화 『변호인』은 개봉 당시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러 갔던 날이 주말이어서 그런 건지 극장 내부엔 사람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막상 상영관에서도 사람이 많은 편이었어요. 그리고 영화에 배우 송강호가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같은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같은 해 세편이나 보게 된 셈이네요.
『설국열차』와 『관상』, 그리고 이번 『변호인』까지요. 그리고 영화가 다루는 줄거리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영화의 시작은 오히려 주인공의 속물적인 성격이 부각되어 개그코드가 가득해서 놀랐는데요. 『관상』 리뷰에서 쓴 바 있지만 우리나라 사극 영화가 초반엔 작정하고 관객들을 웃기다가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고 쓴 적 있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단순 사극에 한정되어서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어쩌면 한국영화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싶은데, 어쩌면 영화의 이런 초반 개그코드는 나중에 나올 이야기의 충격 때문에라도 필요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영화의 본격적인 사건에 들어서게 되면 상당히 공포스러운 상황들이 닥치게 됩니다. 어쩌면 작정하고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려는 공포영화보다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을 더 두렵게 만들 수 있단 생각도 드는데 어느 정도 각오는 한 장면들이었는지 몰라도 화면으로 봤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는데 영화의 흐름이 분명 사리에 맞고 그렇게 되어야 함을 직설하는 주인공과 그 일행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으면서 답답함을 안겨주어 여전히 보는 사람을 공포스럽게 만들지요. 이 이야기의 끝이 혹여나 비극으로 치닫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영화의 결말은 어떤 식으로 안타까우면서도 그래도 보는 이들의 맥을 빼놓지 않아서 저로선 굉장히 만족스런 결과였습니다. 이 결말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본 바 있는데 만약 이런 결말이라도 없었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떠올린 것은 엉뚱하게도 제가 책에서 읽은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현대의 시기가 아니라 몇백 년 전이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아닌 중국 청나라 건륭제 시기에 일어났던 청나라를 한바탕 뒤집어놓았던 '영혼 도둑' 사건인데요.
이 사건은 다름아닌 필립 쿤이라는 하버드 대학 교수가 집필한 저서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에선 당시 영혼 도둑이 유행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당시 지배층이 이것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책에서 유달리 눈에 띄어 기억이 나던 구절은 '영혼 도둑'의 소문이 퍼졌던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 누군가가 영혼 도둑이라는 것을 굳이 알아낼 필요도 없이 외지인이나 당시 사회적 약자 계층 중 눈에 띄거나 의심스러운 자를 골라 영혼 도둑으로 몰아 폭력을 행사하거나 누명을 씌워 고소를 하는 등의 일을 남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살기 어려운 이유를 다른 데로 돌리고 그 불안을 해소하면서 지배층이던 피지배층이던 권력을 맛보고 싶어 했던 당시 사회의 부도덕함이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시 지배층은 '영혼 도둑' 사건을 이용해 백성들의 시선을 돌리고 자신들의 권력에 방해되거나 필요없다고 여기는 부류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일반 백성들은 자신 역시 타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영혼 도둑'이라 의심받는 부류들을 탄압한 셈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 진짜 '영혼 도둑'이란 게 잡힌 적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다음 세대에는 결국 완전히 잊혀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혼 도둑' 사건은 여러모로 시사해 주는 바가 많았다고 할까요. 단순 18세기 사람들이 어리석어서만은 일어난 사건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고 얼마든지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 책의 내용이 오버랩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