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비소설 기타

『언더 그라운드 : 약속된 장소에서』 리뷰

by 0I사금 2025. 4. 11.
반응형

​『언더 그라운드』는 1998년에 우리나라에 출판되었고 근래인 2010년도에 같은 책이 재출간되면서 후속편이 딸려나온 것을 알았는데, 이번에 리뷰하는 책이 바로 그 『언더 그라운드』의 후속편입니다. 부제는 바로 '약속된 장소에서' . 저자가 첫페이지 부근에 인용한 시에서 따온 제목인데, 아마 부제가 의미하는 것은 옴진리교를 믿은 신자들이 갈구했던 허상에 가까운 그런 장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편 1998년도 번역본이 옴진리교의 가스 테러 사건으로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담아 그 실상에 접근했다면, 이번 후편은 옴진리교에 몸을 담았던 혹은 지금은 탈퇴한 신자들을 인터뷰한 글을 모아둔 것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옴진리교 신자들이 사린가스 테러에 전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 중에선 옴진리교의 가스 테러 사건 이전에 탈퇴한 이들도 있고요. 하지만 읽다 보면 이들의 기묘한 논리 탓에 읽는 게 금방 몰입되다가도 금방 질리게 마련인지라 책 두께가 얇음에도 불구하고 전권처럼 완독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적했듯이, 옴진리교의 가스 테러 만행이 세상에 드러난 직후에도 여기 신자들은 옴진리교 자체에는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거나, 혹은 옴진리교 내부의 문제-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신격화-에는 비난하면서 거기에 몸담았던 시절을 좋게 회상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거기다 대다수의 이들이 현실과 맞지 않고 자신만의 정신세계가 뚜렷한 인물들이 많은데, 나름의 철학이나 논리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에 잘못 읽다가는 저 논리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가지 않겠는가 싶었는데, 중간에 자기 전생은 남자였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인터뷰를 보고 확 깨는 것이 있더군요. 다만 마지막 인터뷰만큼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는데, 옴진리교의 사건은 인간의 어둠이 드러난 사건이고 자신의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이 사건들을 계속 마주하겠다는 강경항 입장을 밝힌 이더군요.


책에 실린 대다수의  이들은 현실과 괴리된, 혹은 복잡한 현실에서 도피하여 마련한 도피처가 옴진리교인 어떤 이들이라는 생각이 와 박혔는데, 후반 심리치료사와 저자의 대담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대담에서의 말마따나 이들은 자신이 옴진리교에 들어간 뒤 깨달음을 얻었다 주장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서 번뇌를 끌어안고 사는 게 아닌 이들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은 빨리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지만 번뇌란 것을 잘 알지 못하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대담의 이야기대로 많이 번뇌하고 부딪히고 힘들어한 뒤 얻은 깨달음이 주위에 도움을 주는 반면 간단하게 일찍 깨닫는 일은 결국 주위의 힘듦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도움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나친 이상주의자들이 얼마나 현실과 맞지 않는 답답함을 안기는지를 생각해본다면 답이 나올 듯.


마지막 저자의 후기에 실린 '본디 현실은 혼란과 모순을 가지고 있고 그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린 현실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라는 말처럼요. 어쩜 보면 말도 안 되는 2차원의 낭만성이 저 옴진리교에 있어서 현실도피한 인간들을 끌어들였나 싶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어느 정도 옴진리교에 거리를 둔 인간이라도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특별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 중엔 재판 당시 아사하라 쇼코가 보인 추태에 실망하여 등을 돌린 이들도 많았다고 하지만요. 카리스마가 있던 건 사실일지도 모르나 일단 저 신자들이 현실과 맞지 않고 붕 뜨다 시피 살았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면, 이 아사하라 쇼코란 인물은 자기 이미지를 제대로 마케팅할 줄 아는 대단한 사기꾼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근데 전에 『화이트칼라의 범죄자들』이란 책을 읽으니 사기꾼도 아무나 하는 짓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지만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