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로니클』은 한때 OCN 채널에서 여러 번 방영을 해준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용도 어느 정도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평범했던 남자애들이 초능력을 얻어 일어나는 일들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한 것이라는 설명을 다른 데서 보기도 했는데요. 왠지 소재 같은 것으로 얼핏 보면 제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인데도 그전까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마침 시간이 맞아떨어졌을 때 감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분량도 짧은 편이라(83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이렇게 짧아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인 거 같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찾아보면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 속한 것이라고 설명이 나오는데, 이와 비슷한 장르로 예전에 리뷰한 『블레어 위치』와 『포스카인드』가 있었습니다. 『블레어 위치』는 파운드 푸티지의 유행을 선도한 대표적인 공포영화고, 『포스카인드』 같은 경우는 외계인 음모론을 담은 공포영화인데 이 『크로니클』은 초능력에 관련된 내용으로 아무래도 보게 되는 영화 종류들이 이런 것들이라 파운드 푸티지 하면 훈훈한 분위기를 담는 것은 목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들이 갖는 초능력을 일반인 그것도 아직은 미성숙한 고등학생들이 가질 때 있을 법한 상황을 열거하는데, 캠코더로 촬영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법이 좀 더 현실적으로 와닿기도 합니다.
영화는 초능력을 얻게 되는 중심인물 중 하나인 앤드류의 캠코더, 후반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그의 사촌인 맷의 여자 친구 케이시의 카메라와 여러 CCTV 내지 주위 엑스트라의 핸드폰 촬영과 같은 것으로 내용을 전개합니다. 영화 상에서 종종 카메라가 주인공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그들을 촬영하는 듯한 모습이 자주 비치는데 아무래도 주인공들인 앤드류, 맷, 스티브가 염력이라는 초능력을 우연히 얻었으니 그것을 이용해 캠코더를 자신들의 힘으로 공중에 띄웠음을 대강 추측하게 만들지요. 극상의 내용 절반은 앤드류의 캠코더에 인물들이 비추는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종종 의도치 않게 앤드류의 상황이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도 연출되고요. 영화의 내용은 굉장히 암울하기 그지없는데 보면서 제가 예전에 감명 깊게 읽은 소설 『캐리』를 떠올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검색해 보면 이 두 작품을 비교한 것이 제법 있더군요. 둘 다 가정에서 학대받는 주인공(성별은 다르지만)이 등장하며 일단 주위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을 뻔했으나 불운한 상황이 겹쳐지면서 파국을 맞아 자신의 초능력으로 복수와도 같은 폭주를 한다는 기본 뼈대가 많이 유사합니다.
다만 능력이 주어지는 상황은 다른데 캐리가 선천적인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면 『크로니클』의 주인공들은 바깥에서 놀다가 발견한 기묘한 땅굴에서 접촉한 광물로 인해 능력을 얻습니다. 거기다 캐리는 자신의 능력을 깨닫긴 했어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려 한 경향은 없는 데 반해, 『크로니클』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마치 새롭고 신기한 장난감을 얻은 것처럼 가지고 놉니다. 남자아이들 특유의 장난기가 드러난 거 같은데 분명 민폐스럽긴 하지만 그만한 힘으로 칠 수 있는 장난이 물건을 움직여 사람을 놀라게 하고 곤란케 하는 등 정도라면 어느 정도 귀엽게 봐줄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앤드류의 실수로 자동차가 물에 빠져 정말 사람이 죽을뻔한 사고가 생긴 뒤 맷은 규정을 만들어 생물에겐 초능력을 쓰지 않기로 합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성격인 스티브는 규정을 깨지 않지만 끊임없이 아들을 학대하며 자존감을 깎는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 주위 급우들에게 조롱받는 앤드류는 결국 몇 가지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실수로 자신을 말리려던 스티브를 죽게 만들고 맙니다. 그 일 이후로 점차 자제력이 바닥난 앤드류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들 - 아버지와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처단하고 말지요.
그리고 어머니의 약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강도짓을 벌이다 큰 화상을 입어 중태에 빠지는데 그런 와중에도 앤드류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것도 전부 아들 탓이라며 원망하며 병원에서 난리를 칩니다. 결국 아버지로 인해 폭발한 앤드류는 아버지를 살해하려 합니다. 영화상에서 세 주인공 앤드류, 맷, 스티브의 능력은 단순 염력이 아니라 텔레파시 능력도 포함한 것임이 드러나는데 앤드류의 감정이 불안해질 때마다 스티브와 맷이 눈치를 채는 경우가 나와요. 이런 능력도 어딘가 캐리의 초능력과 유사한 구석이 있어 아마 제작진이 나름 참고를 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폭주하는 앤드류를 막기 위해 찾아온 맷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그를 살해하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잠적한 맷은 앤드류의 캠코더를 가지고 그가 가고 싶어하던 티베트로 날아와 그에게 사죄를 하는 말을 남기며 자신들에게 초능력을 안기게 한 땅굴에 대해 더 조사를 해 갈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영화는 막이 내리지요. 아무래도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 장르였다면 히어로의 역할을 하는 것은 스티브와 같은 캐릭터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초능력이 갑자기 생긴다고 해서 책임감이나 도덕관념도 아직은 확고하지 않고 불안하기만 한 아이들이 슈퍼히어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가 히어로로 나갈 수 있던 것도 개인멘탈이 두드러진 탓도 있지만 영화적 허구가 적절히 살린 덕분이란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생각해 보면 유리한 힘이 생겼을 때 그것을 꼭 남들 좋은데 쓰기보단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는 데 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정의의 편인 것은 사람들의 대리만족인 셈.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나쁘다기보단 안쓰러웠기에 후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것은 속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캐리』를 읽었을 때에도 동일했어요. 하지만 이런 무지막지한 분풀이의 결과는 둘 다 동일하게 주인공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니 떠오른 이야기는 현실에 있었던 사건을 담은 기사였는데 로또에 당첨된 어느 청년이 결국 막판엔 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였어요. 사람들은 로또가 문제가 아니라 개인 인성이 문제라는 말들을 했지만 그래도 그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은 결국 행운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마지막까지 보면서 느낀 점은 살아남은 맷은 이제 두 번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거 같았습니다. 맷과 앤드류가 일으킨 사건은 일종의 도시전설이나 해프닝으로 덮여서 은폐가 되거나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히는 것과 별개로 스티브와 앤드류의 죽음이 그에게 끼친 영향도 그러려니와 일단 초능력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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