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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몽실 언니』 리뷰

by 0I사금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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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렴풋이 알기로는 『몽실 언니』는 어린이용 추천 소설로도 유명한 거 같은데, 담고 있는 메시지를 살펴본다면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 어린이용 소설이라고 하기엔 주인공 몽실이 처해 있는 현실이 구제받을 길 없는 가시밭길의 연속인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소설의 배경은 광복 바로 직후에서 6.25 전쟁이 종결 났을 때까지니까요. 그 시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전쟁의 참상이 몽실을 할퀴어가고, 몽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불행이 그를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감동적인 이유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불운한 현실 속에서 몽실이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는 점이겠지요. 그러고보니 좀 오래전에 대학 리포트를 쓸 때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몽실 언니』를 주제로 택하여 '바리데기' 신화와 유사성을 찾아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리데기 신화는 바리데기가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에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서천서역국에 도달해 부모를 구할 약수를 구하는 업적을 달성하고도 모든 명예와 영광을 뿌리친 채 죽은 자를 구원하는 신이 된다는 영웅서사시적 행보를 걷고 있지만, 그 실상은 약자였던 존재가 다시 약자들을 구제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현실의 인간들이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구원자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을 담고 있는 셈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고아에 절름발이 여자아이인 몽실이 부모에게 버림받고도-양모를 제외한다면 친부모든 양부모든 몽실을 학대하는 원흉- 동생들을 보살피고 풍파에 굴하지 않는 모습은 신화 속 바리데기의 그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에요.『몽실 언니』를 본다면 의외로 핍박받는 사람들이 더 약자를 핍박하기도 하는 구조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몽실은 가해자와의 동일시를 피하며 약자의 입장을 헤아리기도 합니다. 버림받은 흑인 혼혈 아기를 때려죽이려는 사람들을 말리는 모습에서 그런 면이 단적으로 드러나지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전쟁의 참상인데, 전쟁이 얼마나 사람과 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지도 잘 보여줍니다.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몽실의 유년기 전반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게 되는지는 몽실과 의용군 순철이와 만나는 에피에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의 글에서도 보이지만 『몽실 언니』는 굉장히 반전주의 성향이 강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몽실 언니』의 내용이 그러하듯 그 결말도 해피엔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꼽추인 남편과 결혼하여 자식을 두고 나름 안정적인 삶을 얻었지만, 당시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몸이 불편한 몽실 부부가 마냥 평탄케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요. 거기에다 동생 난남이 어머니-몽실의 양모-에게서 물려받은 병으로 버림받았단 사실도 언급되면서 오히려 전 시대-전쟁의 잔상이 한 개인에게 길게 이어졌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몽실 자체는 꿋꿋하기 때문에 그 마지막의 울림이 더 강하게 와닿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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