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래결정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니까 이곳저곳의 사정까지 알게 된 셈이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라서 그런가 깊게 기억이 되었는데, 이걸 보니까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게 바로 제목의 리처드 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였는데 왜 그 현미경을 이용한 모래 결정 사진을 보고 이 책을 다시 떠올렸느냐면 이 책의 내용과 결말을 자세히 이야기해야 할 듯싶습니다. 솔직히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두 편의 소설 『줄어드는 남자』와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원작 소설에 해당되는 소설을 읽은 정도인데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만큼 재밌었다고 여긴 작품은 실은 얼마 없었습니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표지에 스티븐 킹의 추천사가 박혀있었다고 해도요. 두 소설 다 제목에 해당되는 중편-혹은 단권으로 나올만한 장편-소설과 짧은 단편집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쩌면 이런 짧은 공포소설들이 저의 취향에 맞을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기억나는 소설들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줄어드는 남자』의 경우에는 지루하게 읽은 기억이 있음에도 그 결말 때문에 그 지루함을 날려버리는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할까요? 앞에 언급한 모래 결정 사진이 왜 『줄어드는 남자』를 떠올리게 했냐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눈으로 확인시켜 준 것만큼이나 그 결말 또한 참신했기 때문일 겁니다.『줄어드는 남자』의 줄거리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연히 사고로 방사능 혹은 어떤 물질에 노출된 주인공의 몸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건 바로 날이 지날수록 신체가 줄어드는 것이었는데, 처음엔 주인공이 이상하다 생각해도 심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몸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어린아이의 크기가 되어버리자 정말 눈물 나는 주인공의 고난이 시작되는데 동네 양아치들한테 붙들려 고생하기도 하고, 직장은 다닐 수 없어 생계도 막히며 가족들에게도 외면받는 등 안타까운 일들이 펼쳐지지요. 그래도 전화위복이랄지 주인공은 선천적인 왜소증을 지닌 여성을 만난 뒤 감명을 받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책으로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생계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몸의 변화는 멈추지 않았고 기어이 인형 수준으로 작아져서 어린 딸의 장난감 취급까지 받는 등 눈물 나는 일은 계속되지요. 그리고 막판에는 거미와 같은 벌레들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몸이 작아져서 사람들의 시야에서도 멀어지고 이후 가족들에겐 행방불명 처리된 것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어쨌든 이대로 계속 줄어든다면 주인공은 조만간 자신의 존재도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이 사람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진 날이 도래하는데요. 주인공은 자신이 소멸할 것이라 생각하며 잠에서 깨어난 순간 새로운 세상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것을 깨닫습니다. 주인공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지만 그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책의 표현에 따르면 '무(無)보다 작아진 셈'이었죠. 이 세상에 완전한 소멸이란 없으므로. 즉 주인공은 말하자면 인간의 눈으로 확인불가능한 아주 최초의 근본적인 물질보다 더 작아진 셈이며, 말하자면 분자나 원자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었죠.
그리고 주인공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도 인간은 결코 상상하지 못한 최초의 근본적인 세계였고요.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을 느끼며 그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됩니다. 과거 사진 속의 모래결정을 보는 순간 『줄어드는 남자』의 주인공이 보았던 것이 저런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은 분자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그 사진은 단순 모래결정이기 때문에 분명 주인공이 본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게 틀림없지만요. 그래도 소설의 결말은 그동안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도 신선했는데, 읽는 사람들이 불운한 주인공에게 예정되리라고 믿었던 불행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며 새로운 전개를 선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라는 결말은 많고도 많지만 '무(無) 보다 작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어디 흔하겠나요? 거기다 주인공의 그동안의 불행과 겹쳐서 이 결말은 어느 소설보다 개운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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