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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딥 블루 씨』 리뷰

by 0I사금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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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딥 블루 씨』는 검색을 해보면 1999년도 개봉작이라고 뜨더군요. 그동안 OCN이라던가 수퍼액션 같은 영화 채널에서 많이 방영해 주었기 때문에 내용은 익히 아는 영화였는데 다만 TV에서 하는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앞부분 도입부라던가 중반내용은 놓쳐버리고 꼭 내용의 클라이맥스 부분부터 보게 되는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예전에 두어 번 봤을 때 본 부분이 여자 박사 수잔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상어를 감전시키는 장면이나, 요리사인 프리처가 상어의 눈을 십자가 목걸이로 아작 내는 씬이라던가 이런 부분부터 본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래서 앞부분 내용들은 거의 놓쳐버려서 몰랐는데 어쩌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자 한번 도입부부터 볼 생각으로 TV 앞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1999년도 영화이지만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긴박감 넘치는 상황과 장면이 연속인지라 TV화면으로 보아도 무섭다 싶은 장면이 많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내용 역시 참신한 부분이 많았었는데 기존 괴수 영화의 클리셰를 비틀어버리는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 일단 영화의 전체적인 틀 자체는 금기를 어긴 인간이 대가를 치루는 오랫동안 이어진 이야기를 답습한 결과이지만 이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나 전개는 기존 영화와는 많이 달랐던 생각. 게다가 낯익은 배우들이 있어서 반가웠는데 여기서 상어의 뇌를 이용해 연구를 하는 천재박사인 짐은 마블의 영화 『토르』에서 에릭 셀빅 역으로 나온 배우였고, 상어를 관리하는 수중 건물 아쿠아티카의 스폰서로 나오는 배우는 바로 역시 마블의 닉퓨리역을 비롯 여러모로 유명한 사무엘 잭슨이었습니다. 늘 영화의 클라이맥스부터 보게 된 지라 이런 배우들이 나온 줄도 몰랐다고 할까요?

영화의 내용은 청상아리 세마리의 뇌를 이용해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상어의 뇌를 조작했다가 오히려 영리해진 상어들에게 역공을 당해 하나둘씩 죽임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거지만 이런 영화 속에선 으레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답시고 도전을 하는 인간들은 좋은 꼴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경험과 연륜으로 현실을 벗어나는 일을 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경우가 많은데 수잔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상어의 뇌를 조작했다가 오히려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고, 과거 밀수 범죄 때문에 약점을 잡혔지만 수잔에게 위험을 경고했던 카터는 진주인공으로 살아남는 역할을 맡습니다. 


어찌 보면 영화는 현실의 위험을 무시하고 열정과 도전만을 중요시하는 인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도 주는 것 같았달까요? 물론 영화의 장르는 괴수에 위협받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인간들이 탈출을 하려는 내용으로 공포가 좀 더 주된 포인트이긴 합니다만. 캐릭터의 일면들도 독특한데 카터는 으레 상황을 해결하는 현명한 역할이지만, 다른 영화 같았으면 일찍 살해당했을 법한 프리처가 오래 살아남아 활약하는 것도 특이점. 뭐 이런 영화에서 애완동물들은 대개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살해당하는 떠벌이 캐릭터의 특징은 그가 키우는 앵무새가 가지고 간 것 같기도 하고요. 프리처 같은 경우 흑인은 활약하고 살해당한다는 클리셰를 벗어난지라 인상이 깊었는데 그런 부분을 비꼬기 위해서인지 흑인은 여러 곳에서 죽는다는 농담이 여러 번 언급되지요. 

그리고 수잔 박사는 원인제공에 나중엔 연구결과물을 가지러 가야 한다면서 상어에 공격받는 등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민폐형 캐릭터라고 욕이 나올만하다가 막판에 살아남은 상어가 아쿠아티카를 벗어나 바다로 도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미끼로 내던지는 희생을 보이는 등 성장을 보입니다. 끝까지 살아남았더라도 욕했겠지만 이렇게 캐릭터가 죽음을 맞게 되면서 성장을 보이는 것도 이런 영화에서 보기 드문 편이었어요. 비슷하게 건물을 담당한 스콕스도 좌절하여 탈출을 포기하는 등 겁많은 면모를 보이다가 결국 카터에 의해 다시 용기를 얻고 탈출을 포기하지 않는 등 변화와 성장을 보이는데 결국 상어에 의한 습격으로 죽으면서 그 죽음이 안타까워집니다.


영화에서 가장 놀란 장면은 사무엘 잭슨이 분한 프랭클린의 죽음이었는데 프랭클린은 과거 설산에서 죽을 뻔하다 구조된 과거가 있었고 그 중 길을 잃은 일곱 명 중 다섯 명만 살아남았지만 두 사람은 눈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같은 인간들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고백을 하며, 아쿠아티카 내부의 사람들이 서로 내분을 일으킬 때 '자연이 파괴적이라도 인간의 잔인함은 못 따라간다'며 그들을 다그치고 협력을 유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말을 한 바로 다음 상어에게 습격을 받아 그가 살해당하기 때문인데 생각지 못한 장면이기에 더 충격이 컸다고 할까요. 거기다 대사가 '자연의 파괴성은 인간의 잔인함을 못 넘는다'는 메시지임에도 결국 자연의 무자비함이 더 크게 느껴진 탓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장면은 나중에 수잔의 입으로 '암만 짐승이 똑똑하더라도 인간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로 다시 뒤집히는 것도 포인트. 자연은 무자비하지만 결국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이긴 결과라고 할까요.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딥 블루 씨(Deep Blue Sea)』는 원제를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단어가 어렵지 않은 거라 그 뜻을 금방 알아낼 수 있는데요. 보다보면 'Deep Blue Sea'라는 말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영화 속 카터의 대사로 드러나는데, 깊고 푸른 바다란 의미는 주인공 일행이 바닷속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상어들이 탈출하여 도달하길 바라던 장소라는 게 드러나요. 즉, 인간들과 달리 상어들에게 '딥 블루 씨'란 자유를 의미하는 셈이었죠. 


상어들이 인간을 습격하고 그들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폭발을 유도하거나 닫힌 문을 열 때마다 상어들 역시 그들을 따라 들어오는데 이것이 단순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서나 원한을 가져서가 아닌 자신들이 그 공간을 벗어나기 위한 계획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상어들의 이런 면모가 드러나면서 그들에게 일종의 캐릭터가 부여된 것은 아닌가 싶어요. 단순하게 인간을 습격하는 무지막지한 괴물이 아닌 실은 자유를 바란 어떤 의미에선 가련할지 모르는 존재였다는 점이요. 하지만 인간들 손에 만들어진 이상 그놈들이 바다로 나간다면 생태계 파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므로 인간 손에 수습-죽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결국 상어와 인간의 싸움은 인간의 승리로 끝납니다. 공포영화면서도 묘하게 인간승리가 가미된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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