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좀 빨리 읽을 수 있도록 대신에 재미난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 이미 한번 읽은 바 있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을 다시 빌려오게 되었는데요. 이번에 리뷰하게 된 단편집은 현재까지 읽은 포의 단편집 중 가장 맘에 든 『붉은 죽음의 가면』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번역본들 중 이 책이 가장 맘에 든 이유는 일단 포의 대표작들이 많이 실려있는 데다가 전체적인 책 디자인이나 삽화가 굉장히 맘에 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붉은 죽음의 가면』이라는 제목 또한 굉장히 인상적인 면이 있고요. 다른 데서는 「적사병의 가면」이라고도 번역되긴 합니다만... 특히 삽화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이 책의 삽화들은 단편소설들이 가지는 음울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순수문학으로 본토에서 더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일단 번역되어 나온 작품들의 태반은 '공포'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기 때문인 듯.
그 때문인지 여러번 읽었으면서 새 책이 나올 때마다 흥미를 가지고 빌려오게 되었는데요. 문체가 약간 달라지는 느낌 정도를 뺀다면 번역에는 대개 큰 차이는 없는 걸로 느껴지는데, 다만 다른 단편집들은 『붉은 죽음의 가면』과는 다르게 삽화가 풍부하지 못하거나 단편의 가짓수가 적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아쉬움이 남는 책들이지요. 그래서 기왕 포의 단편선을 소장한다고 한다면 삽화가 많고, 디자인이 좋은 데다 단편 가짓수가 많은 저 『붉은 죽음의 가면』이 가장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붉은 죽음의 가면』에 실려 있는 단편의 수는 총 14개로, 제목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M. 발드마 사건의 진실」, 「베레니체」, 「검은 고양이」, 「구덩이와 시계추」, 「윌리엄 윌슨」, 「붉은 죽음의 가면」, 「폴짝-개구리」, 「아몬티야도 술통」, 「리지아」, 「고자질쟁이 심장」, 「직사각형 상자」, 「엘레오노라」, 「어셔 저택의 붕괴」, 「타원형 액자의 초상화」. 이들 중에서 몇 개의 단편들은 다른 소설집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익숙한 반면, 처음 접하는 단편들도 종종 끼어 있는데요.
제목에 해당하는 「붉은 죽음의 가면」은 마치 중세의 흑사병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내용이며, 증오하는 사람을 술로 유혹한 뒤 생매장하는 「아몬티야도 술통」, 죽은 아내에 대한 광기 어린 사랑을 표현한 「리지아」나 「직사각형 상자」, 죽은 여인의 초상화라는 기괴한 소재를 다룬 「타원형 액자의 초상화」들이 그렇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단편집에는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추리 소설들은 실려 있지 않은 편이더군요. 보통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은 정말 인간 내면을 끝까지 파헤쳐서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요.
이런 점은 종교재판으로 처형을 선고받고 기괴한 방식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는 주인공의 사투를 다룬 「구덩이와 시계추」나 죽은 부인을 못잊으며 괴로워하던 남편이 재혼한 두 번째 부인을 잃게 되는데 그 부인의 시체에서 전 부인의 영혼이 부활하는 환영을 보는 「리지아」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보면 죽은 배우자에 대한 환상이란 소재도 포의 단편에서 많이 반복되는 테마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소설은 인과응보의 내용을 동화 형식으로 풀어낸 「폴짝-개구리」로 이 소설은 금성출판사 청소년 문고본에선 「어릿광대 개구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한 편의 잔혹동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원래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는 그 작품처럼 기괴한 일생을 살아간 것은 아니라고 하며 오히려 그의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 탓에 포의 성격이 더 과장되어 전해지는 측면이 있다고도 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개인적인 일생 자체는 불운한 면이 더 많은데, 그가 요절했다는 점이나 소설이 드러내는 인간 내면을 어두운 구석에서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내용들을 보면 당대의 독자들이 그를 오해할 만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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