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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종말 문학 걸작선』 2권 리뷰

by 0I사금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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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문학 걸작선』 2권은 1권보다는 두께도 얇았지만 그래도 조금 낫지 않으려나 싶은 생각으로 빌려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만족도는 2권보다 1권이 나았던 듯. 일단 리뷰를 시작하면 첫 번째 소설 「최후의 심판」은 우주로 나간 탐사대원들이 지구로 돌아오자 이미 휴거가 일어나 모든 인간이 멸망하고 살아남은 것은 돌아온 그들 몇 명뿐이라는 내용으로 제목답게 종교적인 풍자나 의미가 담긴 소설이 아닌가 했습니다. 두 번째 소설 「음소거」는 소설 본편으로 들어가기 전 짤막한 설명을 읽어봐도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아무래도 대홍수 전설에 등장하는 살아남은 오누이 이야기를 패러디한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해 봅니다. 

세번째 소설 「마비」는 2권에서 그나마 제일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분량도 여기 실린 단편 중에서 제일 많은데 내용은 몸에 큰 십자 흉이 남는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을 격리시킨 부락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노파가 주인공입니다. 인사이드라 불리는 그곳은 금세 붕괴하리란 예상과 달리 오래 존속하게 되었고 한 젊은 의사가 그녀를 찾아와 폭력과 폭동으로 얼룩진 아웃사이드-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이러스가 실은 일종의 분노 억제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 그 결과 부락이 붕괴하지 않고 존속되었던 것으로 보며 아웃사이드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를 도와달라 부탁합니다. 
 
바깥세상에 가고 싶은 노파의 손녀는 의사를 따라가려 하지만, 딸을 보내기 싫은 엄마-즉 노파의 딸은 의사를 모함하여 경계를 지키는 군인들 손에 죽게 하고 딸은 어머니에게 반발하여 가출합니다. 그리고 노파는 손녀의 앞길이 어두울 것을 알면서도 그를 따라가기로 결심합니다. 다음 네 번째 소설 「그리고 깊고 푸른 바다」는 방사능으로 얼룩진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보면 될 듯하네요. 
 
반면 다섯번째 소설 「말과 소리」는 특이한 바이러스 설정 때문에 두 번째로 재미있게 본 소설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언어 능력을 앗아가는데 여주인공은 말은 하지만 읽고 쓰는 능력을 잃었고 여주를 도와준 남자는 읽고 쓸 줄 알지만 말하는 능력을 잃은 지 오래. 서로 그들이 가진 능력 때문에 질투심을 느끼다가 두 사람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남자는 한 남녀의 살인사건에 휘말려 살해당합니다. 
 
여자는 충격을 받지만 곧 남자의 시체와 죽은 남녀의 시체를 옮겨 묻어주려고 하는데 살해당한 여자의 아이들이 어머니의 시체를 가져가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는 희망을 느끼면서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어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여섯번째 소설 「킬러」는 전쟁으로 인해 남자가 얼마 남지 않은 여자촌이 배경입니다. 십여 년 전 전쟁에 끌려간 오빠를 기다리는 여자의 집에 웬 남자가 숨어드는데, 여자는 그 남자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광인이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호감을 가지게 됩니다. 마지막 내용은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를 마을 사람들이 저장고에 매달고 분배한다는 이야기는 남자가 없으므로 여자들이 그를 공유한다는 이야긴지, 아니면 다른 여자에게 눈독 들인 그를 살해한 여자와 마을 사람들이 오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기로 분배한다는 건지 조금은 애매모호합니다.

일곱번째 소설 「지니 스위트힙스의 비행 서커스」는 이 소설에 들어서면서 다음 이야기들도 점점 난해하단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요. 마약과 동영상으로 가공의 섹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돈을 버는 일행의 이야기 정도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덟 번째 소설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의 종말」은 평범한 배달부 윈드햄이란 남자가 종말로 아내와 딸을 잃고 겪는 이야기를 작가 나름의 종말 문학 평론과 섞어서 전개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참신하면서도 밋밋한 소설인 느낌.

아홉번째 소설 「황혼의 노래」는 멸망한 도시의 늙은 천재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멸망한 도시에는 과거의 유산을 파괴하러 다니는 반달맨(반달리즘에서 따온 듯)들이 설치고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면서도 생존을 모색하는 주인공은 폐허가 된 콘서트 홀에서 낡은 피아노를 발견하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연주를 듣던 한 반달맨이 연주가 끝난 뒤 피아노를 파괴하려 하자 분노한 그는 그 반달맨을 목 졸라 살해하고 스스로 피아노의 현을 끊어버립니다. 예술이 인간을 삭막함과 절망에서 구원하는 낭만적인 내용이 없는 소설이라 좋았어요.

열번째 소설 「에피소드 7 : 보라꽃 왕국의 패거리를 향한 마지막 저항」은 가장 난해한 소설인데, 일반적인 소설 구성과도 좀 다른 데다가 말줄임표가 너무 남발되어 보기 산만하다고 할까요. 내용은 패거리라 불리는 괴물들과 임신한 여인이 전투를 벌이는 내용 같은데, 원래 소설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감이 떨어지기 마련인지라 이런 소설들은 중간에 위치하면 그나마 집중하고 읽을 수 있을 거 같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흥미가 생기지 않던 소설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종말 문학 걸작선』 2권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요.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잔뜩 기대하며 빌렸던 이 책은 제가 처음에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실려 있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만족도는 적었습니다. 물론 소재가 참신하고 재미있는 소설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소설이 많았던 느낌. 아무래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한 데 모아놓으면 호불호가 쉽게 갈리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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