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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종말 문학 걸작선』 1권 리뷰

by 0I사금 2025.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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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2권인『종말 문학 걸작선』도 딱 그시기에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네이버 블로그에 리뷰를 남겼던 책으로 기억하는데요. 처음엔 느긋하게 읽으려다가 기왕 제목도 이런 겸 날짜에 맞춰 리뷰를 쓰자고 좀 급박하게 읽어내려간 점이 있어서 몇몇 소설은 내용 이해가 어렵기도 했는데 단지 빨리 읽어서일뿐만은 아니라 소설 자체가 기대보다 별로였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1권에 실려있는 소설들을 하나하나 리뷰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소설 스티븐 킹의 「폭력의 종말」로 이 소설은 세상의 폭력을 없애고 에덴동산으로 회귀하려던 천재 형제의 비극 이야기라고 할까요? 스티븐 킹의 인지도 때문에 가장 먼저 실린 소설인데 가장 참신하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지구멸망의 원인이 핵폭발이나 운석충돌 이런 것이 아닌 한 천재가 인간을 좀 더 진화시키기 위해 자기 고향의 물에서 추출한 폭력을 없애는 물질을 화산폭발에 맞추어 세상에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형제들 중 형이 남긴 기록으로 설명되는데 동생이 개발한 그것을 형이 도왔고 형이 마지막까지 그 물질의 효과를 기록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폭력을 없애고 인간을 바꿀 것이라는 그 물질은 오히려 인간을 퇴행시키고 형마저 점점 퇴행하면서 후반의 기록은 맞춤법도 알아볼 수 없게끔 망가져버립니다. 후반 기록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 이 정도면 번역자가 굉장히 골머리를 앓았을 거 같은데, 어쨌거나 인간을 바보로 만들면서 문명이 멸망한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뒤의 이야기들은 거의 비슷한 멸망 구도를 가기 때문에 식상했거든요.

두번째 소설 「고물 수집」은 어떤 긴박감이나 공포심, 충격보다는 종말 뒤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조금 심심한 소설입니다. 대홍수로 가라앉은 옛도시를 그리워하는 어떤 종교의 신자(몰몬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으로 봐서 몰몬교 신자들로 추정)들과 고물을 수집하며 돌아다니는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씁쓸함이 많이 감도는 소설이었어요.

세번째 소설 「모래와 슬래그의 사람들」은 앞서 소설과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소설은 먼 미래를 배경으로 더 이상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는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폐허가 된 도시를 찾아온 인간들이 개를 발견하고 그것을 신기하게 여기지만 끝내는 그것을 잡아먹는데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옛날 사람들이 개를 잡아먹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껴서 그랬다는 것.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변하긴 변했는데 소설에서 간간히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이 소설의 인간은 지금의 인간과는 생김새도 생체기관도 사고관도 완전히 다르다고 이해해야 될 거 같습니다.

네번째 소설 「빵과 폭탄」은 전쟁의 끝 시점인지 아니면 전쟁이 끝난 직후인지 애매모호한 소설인데 전쟁 이전 평화를 기억하는 사람과 전쟁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깁니다. 어른들은 옛날의 평화로운 시절을 그리워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못하는 것. 제목은 폭탄꾸러미를 빵이 든 꾸러미처럼 여겨 아이들이 건들면 폭발하게 하는 걸 말하는데 전쟁의 참상 정도를 비유한다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다섯번째 소설 「마을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방법」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인데 근미래에 피폐한 인간들과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정도로만 설명해야 할듯.

여섯번째 소설 「어둡고 어두운 터널들」은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미드 『왕좌의 게임』 원작)』의 작가가 쓴 소설입니다. 여기 실린 단편들 중에서 스티븐 킹의 단편과 함께 이 작가의 단편이 제일 재밌더군요. 전쟁 직후 방사능 때문에 인간들은 달로 이주하는데 달의 인구가 서서히 감소하자 달쪽 탐사대원 두명이 지구의 생존자를 만나러 지하로 내려오고, 지하인간 피플족은 그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방사능괴물들을 처치할 수 있길 바라며 그들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지하에서의 오랜생활과 방사능의 영향으로 지하의 인간들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생김새를 유지하고 있었고 결국 그들의 만남은 파국으로 끝납니다.

일곱번째 소설 「제퍼를 기다리며」는 문명이 멸망한 후 전기가 끊긴 사람들은 풍력발전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배경의 소설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제퍼'를 기다리며 가족들의 만류에도 그들을 쫓아갑니다. 아마 제퍼란 배 이름이었던 듯. 여덟번째 소설 「절망은 없다」는 역시 멸망 후 두 명의 여행자가 전설의 도시 '하벤(헤븐(천국)과 비슷한 발음이라고 소설에서 설명)'을 찾아 떠나다가 들린 폐허에서 한 남자의 유령을 만납니다. 그 남자의 이름과 과거로 보아 그 유령의 정체는 확실히 '윈스턴 처칠'. 소설 속 지구 멸망 시기는 아무래도 2차대전 직후였을라나요?

아홉번째 소설 「시스템 관리자들의 지구를 다스릴 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소설인데 아무래도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들이 주인공인데 작가도 그 출신인지라 관련 전문 용어가 엄청나게 튀어나오는데다 주석이 엄청 딸려있어서 읽을 때마다 몰입이 떨어졌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갑작스런 전쟁으로 인간들이 엄청 죽어나가서 시스템 관리자들만이 살아남아 인터넷에서 가상 왕국을 만들고 주인공이 수상으로 선출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지구 멸망 와중에서 관리자 노릇을 계속한다는 내용.

열번째 소설 「O-형의 최후」는 돌연변이들만이 태어나게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게 된 세상에서 돌연변이 이동 동물원 쇼를 업으로 하는 주인공의 이야깁니다. 더 이상 아기 모습으로 자라지 않게 된 여인 역시 그와 함께 지내고요. 더 이상 돌연변이 동물들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지 않고 돈벌이가 막힐 무렵, 그의 동물원이 돌연변이의 습격을 받고 그를 도우려던 여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에게 모습을 들킵니다. 하지만 돌연변이들 때문에 정상적인 아이를 보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은 간만에 보게 된 어린 아기라고 좋아하며 주인공에게 아기를 한번만 안게 해달라며 돈을 지불하게 되고, 주인공은 여인에게 아기 흉내를 내라고 은연중에 압박하는 것으로 내용이 끝납니다. 세번째로 재미있게 본 소설이었어요.

열한번째 소설 「종말이 있는 정물화」는 제일 짧은 내용의 소설인데 세상이 멸망해가는 모습을 천천히 설명해가는 내용 정도가 되겠습니다. 열두번째 소설 「아티의 천사들」은 방사능을 피해 보호구역으로 들어온  여주인공이 무법지역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아티라는 이름의 소년에게 구원받고 그의 친구가 되는 내용으로 아티는 커가면서 사람들을 이끌고 자전거 부대를 이끄는데 더 좋은 구역의 여인과 만나 안전한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서도 여주인공과 친구들을 버리기 싫어 고향에 남게 되는 내용입니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아서왕의 누이와 같다는 것과 남주인공의 이름을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아서왕 전설의 오마쥬나 패러디 정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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