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순전 인터넷 서핑 도중 우연히 제목을 발견한 것인데, 이 책의 저자가 일본 내에서 천대받는 부락민 계층이라는 것도 부연설명으로 딸려 있었고 저자의 출신 때문에 자기 나라만이 아닌 다른 나라의 하류층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에 끌려서 읽게 된 점이 있습니다. 책에서 설명해 주는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한때 먹었던 메기나 가재로 만든 요리, 브라질에서 천대받는 흑인 계층들이 먹다가 현재는 국민요리가 된 페이조아다라는 돼지요리, 불가리아의 로마-우리 식으로 부르면 집시-들이 먹는다는 고슴도치 요리, 네팔의 불가촉천민들만이 먹는다는 소고기 요리와 일본 부락민들만이 먹었다는 소내장 요리인 아부라카스는 단순 외국의 기이한 요리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차별받는 역사를 알려주는 매개체였습니다.
여기서 소울 푸드란 단어를 검색해 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이라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 『차별받은 식탁』에서 설명하기를 흔히 우리가 먹는 프라이드치킨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백인 농장주들이 먹을 부분이 별로 없어 버린 닭의 날개를 먹기 위해 기름에 절이듯 튀겨내어 먹게 된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책에서 쓰는 '소울 푸드'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고충 속에 만들어내고 유지해 온 그들만의 식문화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미국이나 남미 측의 인종차별은 흔히 매체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라 그렇다 쳐도 중동과 아시아를 거쳐서 등장하는 견고한 신분제의 모습들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엔 매우 낯설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아시아 쪽으로 올수록 차별은 인종이나 민족이 아닌, 한 나라와 한 민족 내에서 조상의 신분이 어땠느냐로 갈라지고 있으며, 대개 천대를 받는 사람들은 도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불교의 영향권 아래 있다 보니 살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천민 취급했을 수 있다는 책의 설명도 딸려 있는데,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조선시대엔 도축업을 하는 백정들이 매우 천대받았으며, 네팔의 불가촉민이 신성한 소를 잡는 일을 한다고 천대를 받듯 조선시대에 농사를 지을 때 쓰는 소가 귀했기에 백정들이 함부로 소를 잡으면 참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더러 전해지기도 합니다. 백정들이 죽인 소의 고기가 누구의 입에 들어가는가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 그 시절 신분제의 영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게 다행인 듯. 특이한 것은 저자의 입장인데 역시 부락민 출신으로 차별을 겪은 그는 다른 이들이 받는 차별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나온 것이고요. 흔히 차별을 받은 사람이 더 약자에게 차별을 행하는 케이스도 없지 않은데 이 저자는 그런 점을 뛰어넘었다고 할까요. 종종 부락민들의 이야기 중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도 언급되고, 심지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사실까지 언급되기까지 합니다. 대개 일본의 매체에선 양심적인 몇몇 일본인들의 작품을 제외한다면 제국주의 시절의 만행에 대해서는 덮어가는 측면이 큰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차별받은 식탁』을 읽다 보면 저자가 부락이라는 것을 수치스럽다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하나의 특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의도가 단순 사회적 약자들의 고충을 음식을 통해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에서는 네팔의 불가촉 민들이 차별 때문에 소를 먹는 자신들의 풍습을 버리는 것을 보면서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문화를 버려가면서 차별을 하는 이들과 똑같아지는 것만이 도리는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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