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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리뷰

by 0I사금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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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 소설이나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크기가 부담 없어서 빌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가 그러합니다. 일단 책 제목도 어려워 보이진 않는 것도 있었고요. 드라마 하니까 오래전에 인터넷상에서 '막장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들이 재미난 유머코드가 되어 떠돌기도 하는 경향도 떠올랐는데 물론 이 책은 대중예술적인 관점에서 드라마를 고찰하므로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이 열거됩니다. 오래전 전공수업을 들으면서도 배운 바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조금 박한 감이 있다고들 하는데, 책의 들어가는 작가의 말에서도 대중예술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나름의 필요성으로 어떤 시기에 어떤 경향의 드라마가 '왜' 인기 있었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사상이나 경향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합니다.

내용의 첫장은 1990년 대 이후 등장한 '순정과 죽음' 테마의 드라마부터 시작하여, 한때 대세를 이루었던 선한 여주인공과 악녀의 대결을 그린 책에서 지칭하길 '야망의 콩쥐팥쥐형'의 드라마를 통해 불황 속에서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어떤 카타르시스를 겪는지를 살펴보고, 2000년대부터 등장한 김종학류 퓨전사극의 열풍의 이유를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드라마 속 대표 여배우들의 변천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이 갈구하는 여성상이 드라마 내에서 시대가 바뀜에 따라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살펴보기도 하며, 드라마의 고정시청층인 중년 여성들의 대리만족을 다루는 '아줌마'들이 주인공이 드라마를 통해 어떻게 그런 드라마가 지지를 받는지를 살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수현 작가의 문제적 드라마가 왜 인기 있는지, 실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왜 그런 구도가 되어있는지를 살펴보기도 하고 '정조'와 '소현세자'등의 소재를 다룬 사극들(대개 퓨전사극)을 통해 민중들이 갈망하는 코드를 짚어보기도 하고요.

책을 읽으면서 재밌는 것은 우리나라의 드라마는 '막장드라마'라고 비난받는 장르에는 나름 참신한 변형을 주기도 하고, 작가주의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경우도 제법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이렇게 오해받는 이유는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형 드라마나 출생의 비밀을 걸고 막장스러운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나온 적이 있어서 으레 그렇듯 다른 작품들이 묻혀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 오히려 후반에 기억에 남는 드라마들은 물론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하여 기억되는 막장드라마도 많지만 나름 완성도를 갖추고 그 와중에 재미와 대리만족, 카타르시스 혹은 메시지를 갖추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혹은 시청률이 좋지 않았어도 나름 의미 있는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비운의 명작 취급받는 드라마도 없지 않았고요. 책 후반에 설명하는 『대왕세종』도 시청률은 좋지 않았지만 정치를 테마로 한 사극 중 새로운 작품이라고 호의적으로 평가하더군요.

책에서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드라마는 대중예술인 만큼 대중적인 취향과 생활에서 떨어질 수 없는데, 불황시절에는 『가을동화』처럼  절대적 사랑을 다루거나 과거로 회귀하여 가족애를 다루는 신파코드가 먹혔던 반면 최근에 들어선 사람들의 인식이 더 냉철해진 탓으로 신파코드보단 범죄수사극이나 정치극, 전문직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 이면에는 미국드라마의 유행도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나 드라마 『추적자』와 같은 작품은 흔한 캔디렐라 유형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이야기였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악이 징벌받는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현실성(부조리한 사회의 모습)과 분노 욕망 말하자면, 현실에서의 울분이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이 주인공들과 같이 분노하고 싶어 하는 현상을 이르는데 이런 일종의 감정이입을 잘 형상화했기 때문에 인기를 끈 게 아니었나 싶었어요.

책에서 이야기하길, 일단 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려면 대중의 대리만족 욕망을 형상화해야 하는데, 재미있게도 이 대리만족 역시 현실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욕망 부분이 너무 앞서나가 현실성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으므로, 여기서 실패한 드라마는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고 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실성을 강조하여 욕망 부분이 거세되면 드라마 내에서조차 괴로운 현실을 직면하기 싫은 사람들로부터 드라마가 외면받게 되는데, 시청자들이 원하는 현실성과 욕망의 균형은 매우 잡기 어려운 것이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소화한 드라마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드라마는 대다수라고 합니다. 으레 우리가 욕하는 드라마들이 이 균형을 잃어버린 드라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후반 책에서 언급되는 퓨전사극 중 정조와 소현세자 코드가 등장하는 드라마들 퓨적 사극 『최강칠우』나 『쾌도 홍길동』, 『일지매』와 같은 퓨전사극들이 같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역시 사람들이 개혁 정치에 대한 열망 코드와 그것이 꺾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이 함께 드러난 작품들인데, 이런 드라마들의 전체적인 틀을 이루는 열망과 절망은 바로 사람들이 드라마에서 바라는 욕망의 코드와 현실성의 코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역사 왜곡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결말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 사극의 특성상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드라마들은 그 비극이 단순 절망은 아니라 언젠가 새로운 날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요. 드라마의 본질은 결국 대중들이 바라는 모습을 그리는 데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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