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권 리뷰입니다. 전권이 두 왕의 분량을 한 권에 넣어서 그렸다면 7권은 연산군이 오로지 차지하는데 도서관에서 대충 순서를 살펴봐도 거의 두 왕의 분량이 한 권에 들어가는 케이스가 많은 거 같았습니다. 실록의 양의 차이라기보단 (그것이 좋은 이미지든 안 좋은 이미지든) 특정 이미지가 강한 왕, 야사가 많이 전해지는 왕, 업적이 큰 왕일 경우 한 권을 다 차지하는 것 같은데 연산군은 일단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타락한 폭군이라는 독특한 이미지와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일까요? 뒤편에 있는 작가분의 글에 의하면 바탕이 된 '연산군일기'는 오히려 기록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한 권에 연산군이 중심이 되지요.
연산군을 다룬 작품으로 당장 생각나는 작품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영화 『왕의 남자』가 있군요. 이 영화가 흥행하였을 때 나온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왕을 그린 작품 중 연산군이 제법 많다고 하더군요. 만화 속에서 그려지는 생김새나 그 성격면에서 본다면 아버지인 성종보다는 증조부인 세조와 비슷하게 그려지는데(재미나게도 얼굴에 종기가 생겼다는 묘사를 반창고 붙인 것으로 묘사) 흔히 알려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미쳐버린 왕이란 이미지완 거리가 멀게 나옵니다. 초기의 그는 폭군이라기보단 정치적감각을 잘 활용하여 신권을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초기의 모습만 보면 명군의 자질도 있어 보입니다.
힘이 커진 대간과의 밀고 당기기도 상당히 볼만했는데 어찌 보면 세조의 그것을 따라가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어머니의 복수 때문에 일으킨 사화라고 하지만 만화에서 그려지는 연산군의 모습은 오히려 어머니의 죽음까지 신권 제압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어쩌면 노련한 왕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단지 거기까지. 세조가 왕위로 즉위하기 위해 제법 피바람을 일으켰고 공신들을 지나치게 싸고 돌아서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치 자체가 흔들리지 않은 것은 적어도 세조가 왕권강화와 함께 민생에도 제법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조부완 다르게 연산군은 힘있는 신하들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했을 망정 민생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에게 누를 심하게 끼치는 등 자신을 깎아먹는 짓을 했기 때문에 그 몰락은 예정되어 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신하들을 족쳤다던 명나라의 주원장도 민생안정에는 확실하게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서 명군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에는 여전히 공감이 가지 않지만 그 왕이 어떤 식으로 새겨지느냐는 백성들의 삶에 얼마나 신경을 썼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맞는 거 같습니다. 왕비를 족치건 신하를 족치건 백성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 같은 듯. 재미나게도 반정이 일어났을 당시 연산군은 순순히 업보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묘사되는데요. 장녹수의 죽음은 뭐 역사 속 권력자의 요부들이 그렇듯 무덤덤한 느낌이지만 의외로 총명했다던 그의 아들이 반정세력에 의해 사사된 것이나 현모양처였다던 부인 신씨의 삶은 좀 안타까운 면이 많습니다. 그 연산군도 폐위된 지 두 달 만에 비참하게 죽는데, 그 묘는 부인의 옆에 있다고 하니 이건 또 어떤 의미로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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