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 스틸』 은 OCN 채널에서 방영하기 전에, 줄거리를 대강 찾아봤는데 로봇을 가지고 복싱을 하고, 서먹했던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회복되는 등 로봇이라는 요소가 들어간 것을 빼면 어딘가 뻔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킬링 타임으로는 괜찮을 것 같아서 시청을 했는데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울버린으로 유명한 휴 잭맨이 맡았다는 점이었어요.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배우의 평상시 이미지완 다른 좀 껄렁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게 실제 배우 이미지랑 갭이 있어서 좀 재미 아닌 재미도 느꼈다고 할까요?
일단 영화의 배경은 근 미래에 가깝고 인간이 복싱을 하는 것은 사라진 지 좀 되어서 복서 출신인 주인공은 시대에 맞게 로봇들을 가지고 시합을 하는데 어째 주인공인 찰리 켄튼이 하는 일이 계획성 없이 충동적이라는 점이 많이 보입니다. 주인공의 이런 특성은 주역 중 한 축인 아들 맥스 켄튼과 얽히면서 좀 더 심하게 드러나는데, 아들이 그동안 얼마나 컸는지 모르고 애정은 없어 보인다지만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무덤덤하다던가, 아들 양육권은 아예 고민도 없이 포기하여 그냥 아이의 이모에게 넘기고 그 대신 이모부에게 돈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을 보면 참으로 대책 없는 나쁜 아버지 상임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현실에 있다면 저런 아버지한테 책임을 요구하느니 좋은 양부모를 찾아주는 게 애한테 더 이롭다 느껴질 정도. 하지만 영화는 점차 이런 아버지가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암시해 주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내용 전개를 얼마나 탁월하게 만들어 나가는지 여부겠죠. 만약 감정의 골이 해소되지 않고 어정쩡하게 끝난다든가 화해의 과정과 감정 묘사가 생략된 채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들었다면 상당히 찜찜했을 법할 텐데 영화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잘 풀어갔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아버지인 찰리의 충동적인 기질과 영악하고 계획적인 아들의 성격을 대비시켜 갈등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부자에게 겹치는 구석을 보여주는데요.
보면 영화의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은 주인공인 찰리가 아니라 아들인 맥스 쪽이고 경기를 진행할 로봇 ‘아톰’을 구하고 그를 훈련시키며 발상을 전환하는 역할도 전부 맥스 쪽에 있습니다. 아들인 맥스가 나이 대에 맞지 않게 똑똑한 것은 영화적 설정이겠지만 오히려 어른인 찰리가 아예 등장인물 중 한 명의 대사로 믿음이 안 간다는 언급도 나올 정도로 지지부진하게 살아가는지라 외부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 오로지 맥스의 몫이며, 이런 점은 보통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의 변화를 가지고 오는 영화들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부적인 인물이 주인공에게 지루한 삶에 변화를 가지고 오는 것은 보통 치유 쪽 스토리에서 많이 보던 것 같았어요. 특히 영화의 테마 중 하나가 ‘부성애’였단 것을 보면 보통 아이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나중에 깨닫게 되는 이런 흐름으로 갈 법도 한데 오히려 아버지의 사랑을 적극 갈구한 것도 맥스이고 이 맥스의 영향을 받아 찰리도 점차 성장해 가는 흐름으로 전개되더군요. 결과적으로 아들을 잘 둔 아빠라고 해야 할까요. 죽은 엄마가 애를 잘 키운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의 전개를 보면 교훈 아닌 교훈이 따로 생성되기도 하는데, 맥스는 아톰의 섀도우 기능을 활성화시켜 아톰을 훈련시키게 하고 이 기능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크게 활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섀도우 기능을 이용해 복싱을 아톰에게 가르치며 동시에 찰리의 잃어버렸던 과거의 기질을 되찾게 하는데, 일반적으로 친구들이 봐도 가족이 봐도 영 미덥지 못한 남자였지만 자신의 적임을 찾아냈을 때 그것에 충실해지는 것으로도 충분히 주변 사람의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까요. 영화를 보면서 또 느낀 거지만 주인공 로봇의 이름이 ‘아톰’인 것은 일본 만화 『우주 소년 아톰』을 떠올리게 하는데 다른 등장 로봇 중 일본 로봇이 있거나 최후의 상대인 제우스를 만들어낸 인물이 일본인이라는 점을 보면 로봇들 자체가 일본 로봇 만화의 오마주 같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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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은근 마블 영화에 나온 배우(팔콘과 와스프)들이 등장해서 놀라기도 했어요. 물론 영화 『리얼 스틸』이 『어벤져스』 1편보다 먼저 개봉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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