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드디어 마지막 20권 리뷰입니다. 책을 읽었을 당시(2013년 8월 경) 도서관에서 찾았을 때 전권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권을 빌리리는 것도 엄청 애먹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다행히 20권은 어렵지 않게 대출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꺼내면서 놀랬던 것은 책의 두께가 꽤 되었기 때문인데 임진왜란을 다룬 '선조실록' 때보다 좀 더 두꺼워 보였달까요? 아무래도 이번 편에서 다루는 내용이 어떤지 짐작이 가는지라 좀 각오를 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번 19권의 내용이 갑신정변의 실패로 끝났고 이번 20권은 갑신정변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비추면서 시작합니다.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끼인 조선에서 세 열강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책에선 '잃어버린 십 년'이라는 호칭을 달아주는데 분명 위태로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의 개혁요구나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었고 개혁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거기까지.
이 사이의 기간에 작가님이 '잃어버린'이라는 수식을 붙인 것은 개혁을 외치고 변화를 요구한다고 해도 당시 조선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으며 개혁을 이끌어야 할 지배층의 무능이 심각한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내 이어져온 조선사회의 모순점-수탈로 인한 민중 삶의 피폐 중앙으로 들어오기보단 옆으로 빠지는 세금으로 인한 재정약화등-은 해결도 안 된 상황이었고요. 이런 시기에 나타난 것이 바로 '동학'이며 결국 갑오년에 반외세 반봉건의 기를 든 농민혁명이 일어납니다. 물론 교과서에서도 언급되고 이 책에서도 지적되지만 동학농민군의 사상은 반봉건의 기치를 들고일어났다 해서 완전히 봉건제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의 등장은 이전 시대의 반란군과는 달리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민중운동이라는 점에서 꽤 의의가 있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런 민중의 노력도 당시 지배층의 외면-동학농민군들의 사상이 봉건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지만 당시 지배층은 더욱 꽉막힌 사고로 일본보다 농민군이 더 악질이라고 몰아붙이는 케이스가 많았고-과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밀려 패퇴하고 맙니다. 전전대에서 공노비를 해방시키거나 사원을 철폐시키는 등 어느 정도 민심을 아우르는 행보가 있어왔는데 이 20권에서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 제가 전에 전권들을 리뷰하면서 기독교가 그렇게 조선민중들 사이에 많이 퍼진 것은 당시 민중들이 기댈만한 것이 그것뿐이었고, 그런 상황이 유발된 것은 당시 사회적 모순 때문이기 때문에 그것 먼저 해결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다고 쓴 적 있는데 당시 민중들의 상당수가 동학에 몰린 이유도 실상은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0권 초반에서 기독교의 포교가 드디어 허용되었다는 언급이 나온 반면 동학은 계속 금지된 데다가 의병들마저도 동학도를 차별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하는데요.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역시 당시 사상으로 반봉건적으로 비출 수밖에 없는 기독교는 허용하면서 동학은 탄압하는 것은 꽤나 모순적으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기독교는 외국인 선교사가 많아서 잘못했다가는 외교문제로 번질 수도 있지만 동학은 그런 것 없이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이 믿는 것이기에 그랬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혁이나 구국을 외친다 하더라도 민심을 끌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요. 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고종의 실패는 개혁을 말하면서도 결국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황실(중반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니까 이때부턴 황실)=나라'고 황실의 유지를 백성을 아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았고, 개혁정책들 또한 자신의 황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썼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민중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독립협회를 강제로 해산케 한 것도 고종이었고요. 게다가 항상 세트로 취급되는 명성황후 또한 민씨 일가의 전횡을 눈감아주고 고종의 이런 뜻에 부합하는 면모를 보여 그다지 긍정적인 면모는 없습니다. 당시 야사의 기록에서조차 명성황후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본 시선이 엿보이는데, 지금에서야 반일감정이나 불운한 죽음을 맞으면 너그럽게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성격 탓에 좋게 좋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책에서 그려지는 대로라면 이 망국의 시기에서 황실이 무언가를 제대로 했다고 말하긴 어렵더군요. 결국 일본의 계략대로 친일 세력이 수뇌부를 차지하고 을사늑약이 체결되며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합니다.
고종이 우유분단해도 당대 사람들이 그래도 총명하다고 평을 내린데 반해 이 순종은 외국인들의 평가가 하나같이 박했다고 하는데 진짜 책에서도 딱히 눈에 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외전처럼 붙은 책의 마지막 이야기에 단지 그 죽음으로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난 정도가 언급될 뿐... 망국 후의 왕실은 초라하게 삶을 이어갔고 현실조차도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와 친일파의 건재,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오히려 비참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답 없는 지금의 현실이 언급되지요. 일본의 강제적인 병합으로 조선의 역사는 드디어 끝났지만 그래도 책의 말미에는 1퍼센트도 안되어 보이는 승산으로 35년 동안 독립운동이 이어졌다는 것으로 이 긴 이야기의 종지부가 내려집니다. 1권의 시작이 역사를 연 왕의 탄생으로 시작했다면 20권의 마무리는 수많은 민초들이 마무리 지은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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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실질적인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인데요. 두페이지가 이어진 그림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중심이 된 왕들의 모습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아래에 박시백 화백의 자필로 감사의 말이 적혀있어요. 2013년 7월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드디어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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