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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공포공장』 리뷰

by 0I사금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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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 『공포공장』의 작가인 아나 마리아 슈아는 속표지에 실린 설명에 의하면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라고 합니다. 예전에 한번 이 책을 보았을 때 책에 실린 많은 설화들 중에서 상당수 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인 것을 보고 흥미롭게 생각했었어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설화는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라서 그렇기 때문인데 그것도 일반 설화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포스럽게 여겼던 존재나 옛적의 괴담 같은 것을 실은 이야기니 제 취향상 흥미가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갔을 때 이 책이 다시 눈에 띄어 이번에 감상문을 써 볼 생각으로 빌려오게 되었는데요. 저자인 아나 마리아 슈아는 각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혹은 유명하다 싶은 이야기들을 모아 그것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독자들에게 들려주는데 제법 다양한 민족구성원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공포 이야기는 없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제1의 공포공장과 제2공포공장으로 나누는데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옛적의 유령이나 괴물 설화들을 실어놓은 것이라 현대적인 괴담보다는 옛날이야기 보는 느낌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랑은 다른 사람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달까요?


첫 번째 이야기는 일본괴담으로 한 사무라이가 유곽에서 아름다운 여자로 분장한 거미요괴에게 죽을 뻔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영생을 얻을 뻔하다 실패한 유럽의 설화인데 영생설화들은 대개 중요한 순간에서 트릭스터들의 장난질이나 인간의 실수로 실패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여기 실린 영생설화는 목동의 딸이 죽은 어머니의 혼령에게 모든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영생의 꽃을 피우는 방법을 듣고 그 방법을 실천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혼령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으려다 결국 실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생의 꽃을 피우려고 하면서도 과연 인간들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좋은 일일까 고민하는 여주인공의 번뇌가 엿보인다고 할까요. 세 번째 이야기는 시체들을 되살리고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부두계열 주술사의 쇼를 보러 간 가족의 이야기인데 부두교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현대적인 분위기를 보여 예전에 읽다 만 판타지 소설 『대런 섄』 시리즈를 연상케 하더군요. 네 번째 이야기는 아랍의 설화로 예쁜 금발의 여자노예를 부인으로 맞은 부호가 아내가 실은 시체 먹는 괴물인 것을 알고 도망쳤다가 저주를 받아 개로 변한 뒤 자기 일족의 주술사 여인에게 부탁하여 원래대로 돌아오고 괴물은 암말로 변하게 했다는 이야기인데 『천일야화』의 한 에피소드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온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다섯번째 이야기는 머리 없는 기사라는 미국의 유명한 전설로 연적을 골려주려고 머리 없는 기수 흉내를 낸 청년이 진짜 머리 없는 기수에게 끌려가 죽을 뻔한 뒤 철이 든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드문드문 떨어진 마을에 무법자들이 판치던 옛 미국의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전설이 아닐까 싶어요. 여섯 번째 이야기는 남자들로 분장한 늑대 일곱 마리가 일곱 자매의 집을 습격하고 현명한 여자아이들이 늑대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중국 정족의 설화입니다. 원래의 제목은 '일곱 늑대 형제'이지만 각색할 때 작가가 더 공포를 주기 위해 늑대의 정체를 늦게 판단하도록 '일곱 자매'란 제목을 썼다고 합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는 폴란드의 골렘 설화로 가난한 청년이 부잣집 아가씨의 환심을 사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 진흙으로 거대한 골렘을 만들지만 처치곤란이 되어 결국 자기 손으로 골렘을 없애고 아가씨한테도 차인 뒤 평소 알던 처녀와 결혼한다는 기괴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입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야시 야테레'라는 아이들에게 깃들어 목숨을 앗아간다는 보이지 않는 아르헨티나 전설 속의 유령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아홉번째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전설로 한 처녀가 난봉꾼 청년의 말에 넘어가 무덤가에 물건을 찾으러 갔다가 유령과 얽히게 되고 그 유령을 물리친 뒤 다른 성실한 청년의 목숨도 구하고 그 청년과 결혼하여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기선 처녀를 끌고 가려 했던 유령은 실은 처녀를 좋아하고 있었고 여전히 처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쓸쓸함을 남겨줍니다. 열 번째 이야기는 러시아의 전설로 무덤가의 시체를 먹는 여자악마에게 홀려 가족을 모두 잃은 청년이 훗날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이 위협을 받자 옛날의 충고대로 악마를 물리친다는 내용입니다. 예전 황금가지 출판사의 소설 중 러시아 소설가가 쓴 뱀파이어 이야기가 있는 것을 떠올렸는데 왠지 죽은 사람이 산사람인 척 사람을 홀리는 이야기는 러시아에서 흔한 괴담 같더군요. 열한 번째 이야기는 칠레의 마푸체인들의 전설로 계모의 계략으로 독을 뒤집어쓰고 얼굴이 해골이 된 처녀가 주술사가 가르쳐 준 대로 독에 쓴 전사의 해골을 모아 원래대로 돌아가고 전사도 살려낸 뒤 결혼한다는 이야기인데 칠레의 전래설화가 유럽의 영향을 받아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고 이 이야기도 군데군데 유럽의 영향을 받았음을 저자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두 번째 이야기는 에스키모의 전설로 마법을 배워 하늘을 날게 된 청년이 못된 마법사에게 걸려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들을 죽게 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는데 훗날 그곳을 찾아가 보니 사람들의 흔적은 없고 거기서 토끼들과 놀던 한 암여우가 자신을 도와준 처녀처럼 귀에 리본을 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입니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페루의 설화로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몰래 도망 나온 어린 두 남녀 중  남자가 불운하게 일찍 죽고 죽어서도 여자를 데리고 가려하다가 실패한다는 내용인데 생전의 맹세를 잘못하면 그것이 죽은 사람에게 저주로 작용한단 교훈 아닌 교훈을 주더군요. 열네 번째 이야기는 티베트의 이야기로 한 마법사가 귀족의 협박에 못 이겨 환술을 보여주는데 귀족은 지하세계의 왕과 사돈을 맺으나 그의 아들을 죽게 만들어 결국 그의 분노를 사고 귀족이 살기 위해 지하세계의 왕에게 싹싹 빌었더니 알고 보니 모든 게 환상이고 지하세계의 왕은 마법사더라 하는 여러모로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예요.


열다섯 번째 이야기는 미국 이러쿼이 인디언족 설화로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남자에게 시집간 여인이 친정을 찾아가던 중 남자의 고집에 사악한 마법사가 사는 길에 들어선뒤, 사람 잡아먹는 해골이 된 마법사가 남편을 죽이고 여인과 아들까지 잡아먹으려 하자 지혜를 써서 위험에서 탈출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긴박감 있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특이한  날아다니는 식인해골이라는 소재덕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내용이라고 할까요. 마지막 이야기도 굉장히 특이한데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여인이 일을 갔다 돌아오자 여인의 자식들과 동생들은 모두 사라져 있어 그것이 번입이라는 괴물의 소행이 아닐까 걱정하며 흔적을 좇다가 나란히 남은 뱀의 자국 두 개를 발견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뱀의 흔적이 아니라 지프차가 지나간 흔적으로 가족을 쫓아가다 쓰러진 여인을 지프차의 사람들이 태우고 백인들이 세운 원주민 정착지에서 가족과 다시 재회한다는 이야기로 설화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저자가 각색을 시도한 것이지만 결국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유한 전통과 원주민들의 삶이 후대에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씁쓸한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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