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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리뷰

by 0I사금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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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였을 즈음에 제가 다니던 도서관에 이 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영화는 아직도 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매우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났는데요. 노블마인에서 나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책구성은 특이하게도 그래픽 노블화한 작품이 반정도 분량, 그리고 원작에 해당하는 소설 번역본이 반정도 분량, 나머지 분량은 영어 원본 그대로 실려있습니다. 애초에 영어 부분은 제가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앞의 두 작품만을 충실하게 읽어 내려갔는데 본래 단편소설인지라 내용이 길지 않고 여러모로 재미난 구석이 많은 작품이라 어렵지 않게 읽어갔어요. 만화가 시작하기 전 앞페이지에 원작자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이 덧붙여져 있는데 그는 마크 트웨인의 '우리네 최고의 순간이 맨 처음에 오고 최악의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란 말에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한 남자의 인생만을 놓고 행한 실험인지라 공정한 시도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덧붙이지요. 책의 시작은 버튼가의 아기 벤자민 버튼의 출생부터 시작합니다. 만화는 깔끔한 수채화풍으로 전체적으로 세피아톤입니다. 작품은 당시 시대상의 모습을 곳곳에 반영하는데 1860년대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은 꽤 선구적인 일이라는 듯한 묘사가 나옵니다. 버튼가의 아기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부터 키 173센티미터의 칠순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부모를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을 당혹게 하는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면서 결국 인정해 가는 그 부모의 모습이 재밌다고 할까요. 신기한 건 벤자민 버튼의 어머니가 어떻게 저런 거구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기도.


벤자민 버튼은 날때의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성격도 그 나잇대의 모습에 맞게 원숙했기 때문에 초반 그에게 아기 모습을 강요하는 부모의 행동이나 그를 보고 당황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뭔가 인생 다산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반응합니다. 그런 그의 성격 탓인지 그의 부모도 점차적으로 그에게 적응해 가는데 작품 속에선 이것을 습관의 힘이 무서운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아버지 가문의 전통대로 벤자민은 예일대에 입학하는데 그가 나이를 먹으면서 젊어져 가는 것은 사실이나 대학에 입학할 나잇대의 모습은 오육십 대의 노인으로 신입생의 아버지정도로 보일 모습이었고 결국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입학도 전에 쫓겨납니다. 재미난 것은 미치광이가 나타났다며 몰려온 예일대생들이 조롱하는 말들 중에 "하버드로나 꺼져버려!"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이것은 후반에 실린 번역본 소설에도 있는 말이고, 영어 원본에서도 하버드라는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뭔가 예일대와 하버드는 전통적으로 사이가 나빴던 걸까요?


벤자민 버튼의 사랑 이야기는 굉장히 허무하게 그 열정이 사그라드는데 그 부인인 힐데가드나 벤자민의 실제 나이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힐데가드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평소에 못 받았는지 원숙한 나잇대인 오십 대의 남자가 좋다며 애정을 표시하고 자신은 이삼십 대 남자들을 보살피며 사느니 오십 대에게 보호받고 싶다고 결혼 의사를 밝히지요. 이 결혼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자살시도까지 하면서 반대를 하고 당시 시대가 시대인지라 귀족들의 스캔들은 기사화되기 쉬운 소재라 조롱거리로 기사감이 되기 시작했는데 벤자민의 아버지는 아들의 출생신고서까지 보여주면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같은 이십대라고 해도 외면은 오십 대였고 - 당시엔 조로증이라는 병명에 대해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건지- 힐데가드 역시 그런 비방에는 초연하면서도 실제로 벤자민이 자신과 같은 나잇대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개그스런 면모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부턴 벤자민은 친부모는 물론 장인들과도 화해를 이루며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는데요. 이때쯤이면 벤자민의 심정이 부모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힐데가드의 사랑은 처음부터 한계를 보여주는데 단순 벤자민이 거꾸로 나이를 먹기 때문만은 아닐 듯해요. 일단 작품 속에서는 서른 다섯 즈음 미서전쟁에 참전했을 무렵에 벤자민의 실제나이와 신체나이가 일치했는데 그 시기를 넘어서면서 벤자민의 변화가 더 빨라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거든요. 벤자민은 계속 젊음을 느끼며 따라오는 열정과 열기를 여러 사회적 활동과 여인들과의 만남으로 풀어내는 반면, 힐데가드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조용한 활동에 치중하게 되고 그런 변화와 함께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면서 벤자민의 사랑 또한 식어버립니다. 


물론 힐데가드쪽에서도 벤자민을 달갑게 여긴 것은 아니었는데 벤자민이 젊어질수록 벤자민은 늙은 부인과 결혼한 가엾은 젊은 남성으로 비쳤기 때문에 그런 데서 오는 불쾌감도 있을 테고 남편이 젊음을 주체 못 해 다른 여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도 그렇고 벤자민의 변화와 더불어 자신의 변화를 남들보다 더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벤자민과 힐데가드의 사랑은 그렇게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후반 벤자민이 십 대 정도로 어려졌을 무렵엔 이탈리아로 떠나 별거를 선택하게 되지요. 만약 벤자민이 힐데가드가 원한 것처럼 진짜 원숙한 나잇대였어도 힐데가드의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만약 벤자민이 힐데가드보다 이삽십살 가량 나이가 많았다면 힐데가드보단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보호받고 싶다면 힐데가드를 보호해 줄 남성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신체나이가 이십 대 정도가 되었을 무렵 벤자민은 쫓겨났던 예일대에 입학을 하게 되고 초반에는 혈기왕성하게 대학생활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졸업 즈음에 가면 거의 중고등학생 나잇대로 몸이 어려지는데 덩달아 생각하는 것도 어려지는 바람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진다거나 하는 일도 생기고 어린아이 같아져 집에 돌아온 뒤로 근처 십 대 소년과 어울리거나 오히려 장년이 된 아들이 그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 경우가 되어버립니다. 미국이 연합국에 합류했을 무렵 미서전쟁에 참전한 바 있던 벤자민 앞으로 군대에서 통지서가 날아오자 참전을 하려고 군복까지 맞추고 군기지에 찾아갔다가 아들에게 들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여러모로 웃긴데 슬픈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마 사람들은 군인을 동경한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판단했을 거 같군요. 


재미나게도 처음엔 아버지의 유아퇴행을 비효율적인 일이라며 인정하지 않던 아들 로스코도 벤자민의 변화가 눈에 띄게 심해져 가자 그냥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버립니다. 로스코 입장에선 아버지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신기한데 단순 퇴행 같은 것은 실제로 많으니 스트레스를 유발하긴 해도 그것은 현실에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벤자민은 막판에 거의 아들 수준으로 나중에는 아예 자기 아들보다 어린 생김새까지로 변화하니까요. 뭐, 이때쯤이면 진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둬야 할 듯. 여기서 벤자민의 친부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묘사가 되지 않으나, 이때 벤자민의 실제 나이가 오십 대를 넘어선 것으로 보아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요. 그런데 벤자민의 외양과 정신연령이 같이 따라가게 되니 젊은 벤자민이 부모의 죽음에는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정신연령이 십 대 수준으로 어려지거나 그보다 더 어려졌을 때 부모가 돌아가셨다면 그것을 제대로 인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이건 어떤 의미로 부모입장에서 서글픈 일일 거 같지만. 벤자민의 퇴행은 더 심해져서 나중에 유치원을, 유치원 다닐 나잇대보다 더 어려져선 아예 보모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이때의 벤자민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마 이때쯤이면 아들 로스코는 그냥 아들이 하나 더 있을 뿐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고 벤자민의 실제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주위 사람들 중에선 벤자민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미 죽었거나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버튼가에 어린아이가 하나 더 있고, 그 아이가 누구냐는 것에 대해 단순 로스코의 아들 정도로만 여기고 그 정체에 대해 의문을 더 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벤자민이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인지하지 못할 아기의 형태로 돌아가선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데요. 벤자민의 노년에서 죽음까지의 모습을 보면 흔히 사람들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어느 순간 애처럼 변해버린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벤자민은 아기 시절에 옛 과거의 기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그 죽음이 평온해도 좀 더 슬펐던 것도 같고요. 애초에 원작자인 피츠제럴드가 마크 트웨인의 말에 일종의 반박으로 실험적인 소설을 쓴 셈이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의 변화는 그대로인 세계에서 벤자민만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으므로 서문에서 그가 덧붙인 그대로 불공정한 실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책의 해설 부분에 실린 평대로라면 86년이 지나서야 영화화되었으며 찾아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메시지는 원작과는 약간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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