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OCN 채널에서 방영하여 감상하게 된 영화 『뱀파이어 빌리지』의 원작은 바로 스티븐 킹의 소설 『세일럼스 롯』입니다. 『세일럼스 롯』은 소설이 출간되지 얼마 되지 않은 1979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제가 본 작품은 바로 리메이크작. 영화를 보고 한참 지난 후에야 도서관에서 소설 신간이 들어온 덕에 고대하던 원작을 읽게 된 기억도 나고요. 원래 영화의 원제는 원작과 동일한 '세일럼스 롯(살렘스 롯)'이지만 '뱀파이어 빌리지'라는 제목도 충분히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제목이 흡혈귀의 후반 등장을 너무 일찍 암시해 주는 감은 있지만요.
영화는 주인공 벤 미어스가 자선활동을 하고 있는 한 신부를 공격하여 두 사람이 난투를 벌이다 창밖으로 떨어진 뒤, 병원으로 실려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벤 미어스가 치료를 받는 와중에 간호사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영화의 본편이 공개되지요. 벤 미어스가 어릴 적 살던 마을에는 '마스턴 저택'이라는 불길한 건물이 존재했습니다. 벤 미어스는 어릴 적에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 저택에 들어갔다가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뒤 고향을 떠났다가 몇 년 만에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요.
고향 마을인 세일럼스 롯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지만 그 평범함이 선량함과 같은 의미냐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서로를 얕잡아보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며 누군가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자면 스쿨버스 기사인 찰리 로즈는 괴팍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함부로 대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찰리 로즈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부동산업자인 래리는 자신의 딸에게 이상한 집착을 보이고 또 그 딸인 루스는 마을의 청소부인 더드의 맘을 갖고 놀지요.
카페를 운영하는 수잔의 어머니는 수잔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이며 주인공인 벤 미어스를 필요 이상으로 경계합니다. 수잔의 구 남자 친구 플로이드는 수잔이 벤과 친해지자 일방적으로 그에게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모습을 보이고요. 마이크는 자기 일을 지키기 위해 친구를 외면하고 캘러헨 신부는 알코올중독자로 신부의 사명을 버린 지 오래. 열아홉 살 유부녀 샌디는 자기 아이를 진찰하는 의사 짐을 유혹하고 그 남편인 로이스는 갓난 아들을 학대하며 의사 짐을 협박한 뒤 돈을 뜯어내려 하지요.
이런 마을에 수수께끼의 골동품상 리처드 스트라이커 - 흡혈귀 발로우의 하수인이 등장하면서 어둠이 드리워집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 중에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과거 벤의 스승이었던 맷, 유부녀의 유혹에 넘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벤이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인물인 의사인 짐, 마을 경찰서 서장인 파킨스, 그리고 벤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수잔, 벤이 거처하는 하숙집 주인인 에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벤처럼 숨겨진 비밀이나 묵혀두고 싶었던 과거가 있었고 혹은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만 마을에 초대받게 된 흡혈귀 발로우에 의해 각각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에바는 몇십 년 동안 자신을 짝사랑한 에드의 마음을 저울질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스스로 에드와 함께 뱀파이어가 되는 길을 택하고, 맷은 발로우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캘러헨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습니다. 짐은 유부녀와 관계를 맺고 초래하게 된 곤경을 무사히 넘기지만 발로우가 만들어놓은 덫에 의해 역시 끔찍하게 죽게 되지요. 수잔은 발로우에게 붙들려 뱀파이어가 되어 버리고요. 사건의 진상에 가까스로 접근한 파킨스 서장은 싸움을 피해 딸에게로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솔직히 도피를 택한 파킨스의 행동은 좀 치사하긴 한데,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이긴 했어요.
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던 주제는 악은 특별한 다른 곳에 있는 곳이 아니라 바로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은 안 좋은 일들의 원인을 마스턴 저택의 책임으로 돌려버리지만 마을의 붕괴는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면 마스턴 저택은 단지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도구였을지도 모르고요. 영화를 보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사소한 악'을 외면하면서 결국 더 큰 악이 들어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들 중 주인공이 벤 미어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끔찍한 죽음들을 목격했으면서도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증오와 그곳에서 죽어갔던 아이를 구하지 못했던 죄책감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되고요. 물론 그는 당시 어린아이였고 이미 아이는 죽어있는 상태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맞지만 적어도 그는 진실을 외면한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마을로 돌아온 것이었죠.
그렇다면 다른 생존자 '마크'는 어떤 의미냐 하면 굉장히 의견이 갈릴 것 같은데요. 단순 할리우드 영화의 법칙 때문이라고 하기엔 마크는 순수나 동심과는 거리가 아주 먼 초딩 캐릭터며, 괴팍한 스쿨버스 운전기사를 미워해서 그를 고의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 꼬마예요. 거기에다가 뱀파이어로 돌아온 자기 친구를 십자가 피규어로 쫓아낼 정도로 담이 센 놈이기도 하고요. 하여간 어린아이치곤 지나치게 영악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 영악함 때문에 발로우를 저지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부터 발로우의 사탕발림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기 때문에.
마크를 보면 악한 놈을 이기기 위해선 어쩌면 어느 정도의 사악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마크와 벤은 그 성장환경이나 성격은 달랐지만, 결국 영화 속에서 마크가 후반에 벤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어릴 적에 공포로 무력했던 벤은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다가 죽음 직전에 그것에 맞섬으로써 겨우 평온을 맞이하게 되었고, 마크는 벤처럼 어린 나이에 공포와 맞닥뜨리지만 결국 그것을 이겨내면서 벤이 겪지 못한 이후의 삶을 살게 될 테니까요.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웬만한 공포 영화에 놀라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꽤 많았습니다. 처음 뱀파이어에 의해 살해당한 형제의 어머니가 죽은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뱀파이어는 상대방에게 초대받아야지만 그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요. 하지만 어떤 어머니가 죽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식을 들여보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결국 그 어머니는 자식들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 장면에 많이 놀란 것은 아니었지만 좀 비극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리고 가장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띄던 것은 벤 미어스의 과거 회상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붉은 톤이기 때문에 더 불길한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땐 벤의 어린 시절 회상 장면이 가장 공포스러웠던 느낌. 이건 어린아이가 겪는 낯선 공포에 감정 이입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또 발로우가 마크의 집을 공격해서 마크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장면도 충격적이었는데, 천장을 기어 다니면서 순식간에 어머니의 목을 비틀어버리는 장면은 갑작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흡혈귀의 등장이 상당히 카리스마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영화 속에선 뱀파이어가 되는 사람들 말고도 인간인 채로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상황에선 차라리 인간인 채로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마크의 집으로 쳐들어온 발로우는 자신에게 맞서려 한 신부 캘러헨의 정신을 세 치 혀로 무너뜨리고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리지요. 이 장면이 초반 벤이 캘러헨 신부를 공격한 이유가 되더군요. 아무래도 원작자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다 보면 종교에 비판적인 시선을 많이 느끼게 되는데 다른 소설 『캐리』도 그렇고 『미스트』도 그렇고 『잇(IT)』이나 『셀』같은 소설에서도 그렇게 비판받아야 할 인간들이 가끔 등장하거든요. 그러면서도 왠지 스티븐 킹이 엄청나게 독실한 신자일 거 같다는 생각이.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마을이 뱀파이어 소굴이 되면서 평소 어린아이들에게 원한을 산 찰리 로즈가 자신이 몰고 다니던 스쿨버스 안에서 어린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아저씨가 얼마나 애들한테 원한을 샀으면 저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정도. 반면 래리가 자신의 딸과 그 친구들이 변한 뱀파이어에게 잡아먹히는 부분은 좀 통쾌한 기분이 들었는데 실제로 모든 사건의 원흉은 이 남자나 다를 바 없어서요. 래리는 순전히 자기 이득 때문에 마을에 악마를 다시 불러들인 격이거든요.
보면 래리처럼 자기 딸을 질 나쁜 방법으로 억압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미국 소설에서 많이 등장하는 거 같은데 국적 막론하고 (한국에서도) 이런 아버지들은 많을 수도 있어서 래리란 인물은 현실의 반영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의사 짐이 발로우가 숨어있는 지하실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발로우가 만든 함정에 빠져 나무를 자르는 톱에 의해 죽는 장면은 끔찍한 것도 끔찍한 거지만 매우 놀랐었는데 그 톱은 영화 초반에 벤을 못마땅해한 마을의 목수가 하숙집을 수리하면서 가지고 온 톱이었고, 설마 그게 복선이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영화의 좀 재미있는 부분은 초반에 실종된 아이를 수색하는 씬에서 등장한 개의 이름이 '쿠조'라는 것.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쿠조라는 개는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에 등장하는 녀석인데 내용을 찾아보니 광견병 때문에 미쳐서 사람을 공격하는 이야기라는 듯.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벤과 마크에 의해 저택이 불타고, 병원에서 마크가 벤이 완수하지 못한 임무를 마무리 지으면서 내용이 끝납니다. 제가 소장한 단편집에 실린 세일럼스 롯과 관련된 소설에 의하면 마을이 화재로 아무도 살지 않고 흡혈귀가 출현하는 곳이 되었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이때의 화재가 원인인 듯싶어요. 스티븐 킹의 소설은 보다 보면 이렇게 내용을 잇는 재미가 있더군요.
중간중간에 좀 산만해지지 않았나 싶지만 그건 중간광고의 심한 난입 문제도 있었을 테고, 뱀파이어로 변한 사람들이 공포스럽게 와닿기보단 개그 같은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전체적으로 인상적인 장면도 더 많았고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비중 있게 다뤄준 것도 좋았고요. 그리고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영화의 마지막은 분명 비극이지만 주인공이 평생의 응어리를 풀어내어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는 점에서 찜찜함이 남지 않는 상당히 괜찮은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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