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녹두꽃』 방영분은 전개가 좀 더 빨라진 느낌입니다. 비극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도 사건 전개가 뜸 들이지 않고 빨라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고구마 답답한 사건이 많아서 전개가 빠르지 않으면 더 답답해지는 구석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주 방영분에서 갑오왜란 일어난다는 것은 스포일러를 미리 본 것도 있고, 저번 주 마지막에 일본군이 움직이는 모습을 비춰줘서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설마 청일전쟁까지 오늘 나올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이번 29화-30화에서 연출이 좋았다고 느껴진 부분이 두 군데 있었는데요. 궁궐을 침범하는 일본군을 보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쫓아가는 별동대 대원들의 모습과 함께 고부에서 김가가 멋대로 저지른 늑혼을 저지하기 위해 쫓아가는 백이현 일행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 장면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 일본군의 압박에 의해 궁궐로 모여온 병사와 의병들에게 해산하라고 명하는 고종의 모습을 보고 분노한 별동대원들이 등을 지고 떠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와중에 궁에 전범기가 걸리는 장면은 화가 나더라는 것.
보통 역사책에서 다뤄지는 동학농민운동은 신분제 폐지 등 개혁안을 들고 나오긴 했지만 전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한계로 지적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드라마에서는 동학군의 거병에 조선 왕실이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묘사가 되는 듯. 흥선대원군과 동학군의 관계가 꽤 깊이 다뤄지던데, 이는 동학군이 당시 역도로 몰리긴 해도 실제로 역도가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밑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투 자체는 비극적으로 끝나긴 하는데 별동대들이 일본군 쓰러뜨리는 장면은 활극 보는 마냥 속 시원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백이강과 해승, 버들이 갑오왜란 직후 왕을 등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 것은 별동대를 비롯한 동학군은 당시 무능했던 조선 왕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왕실조차 지키려 했던 당시 조선 사람들을 위해 싸우게 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묘하게도 한양에서 한양 나름대로, 고부에선 고부 나름대로 비극적인 사건이 전개되었지만 한양에 있는 백이강이 점점 더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반면 백이현은 더욱더 수렁에 빠질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큰 역사적 사건과 별개로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꼬인 이야기는 어떻게 풀려날지 궁금해지던데, 이강자인은 이강자인대로 오해가 또 생겼고 이현명심은 이현명심대로 파국인데 특히 이현 주위에 있는 인간들은 제대로 된 인간보다 어딘가 엇나간 인간들 뿐이라 백이강과는 너무 대비된다는 사실. 유월이나 박원명 사또 같은 양반들은 개념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지만 반대로 힘 자체는 적은 편이라... 어찌 보면 백이현의 행보 자체가 형인 백이강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길로 걸어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일단 백이현은 형처럼 아버지인 백가를 손절할 입장도 아니거니와 김가 놈은 도채비 시절 악연이 발목을 잡았고, 홍가 놈은 자기 복수 때문에 백이현한테 덤터기를 씌운 판. 박원명 사또가 홍가가 한 짓을 알고 멍석말이하는 장면은 솔직히 좀 사이다였어요. 생각해 보니 박원명 사또는 백이현을 아끼던 인물이라 충분히 화가 날 만도. 그리고 황진사는 이번에 죽으면 좀 가엾게 여겨주려고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니 그냥 맘 놓고 싫어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똑같이 조선 사회의 더럽고 모순된 면을 본 것은 백이강이나 백이현이나 마찬가지지만 백이강과 달리 백이현이 흑화한 것은 백이강은 동학군에 들어가면서 어머니 유월이에게 전한 편지에서 밝혔듯 새로운 사상을 접하더라도 그 갈 길이 어려울 것이라고 스스로 짐작했던 반면 백이현은 문명으로 조선을 개화할 수 있다고 초반부터 이상적인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절망이 더 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성장환경의 차이도 좀 있기는 있으려나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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