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츠 이치의 소설은 도서관에서 많이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연히 처음 단편집 『Zoo』를 접하고 왠지 취향이다 싶어서 다른 단편집도 빌려보게 되었는데 모든 소설이 제 구미에 맞는 것은 아니고 은근 호불호 갈리는 것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잊고 있다가 최근 도서관에서 오츠 이치의 소설을 재발견했는데 실은 이 책을 찾아읽게 된 것도 다른 신간이 없나 하고 찾아보다가 주변에 놓여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셈입니다. 이상하게도 이번에 발견한 오츠 이치의 단편집은 책이 다른 책에 비하면 굉장히 낡은 티가 났는데 들어온 지가 오래되었거나 아니면 인기가 많아서 사람들 손을 많이 탔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책이 너무 낡아서 제대로 읽을 수나 있으려나 싶었는데 페이지의 일부가 소실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 부분도 책을 읽어가니 대충 전개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라 다행이긴 했어요. 그리고 책에 실려있는 삽화들이 순정만화 이미지처럼 섬세하고 예뻐서 끌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오츠 이치의 소설은 단편집으로 대개 접했고 제가 장편보다 단편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어서 좀 다양한 내용을 접하고 싶었는데 책 자체가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닌지라 실려있는 소설도 세 가지 정도였다는 것. 다만 오츠 이치 특유의 환상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대부분의 내용들이 그 일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비극적인 부분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고요. 최근에 접한 오츠 이치의 다른 소설 『엠브리오 기담』 같은 경우도 상당히 기묘한 소재를 채택하면서 오싹한 내용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말이죠.
책에 실린 첫 번째 소설 'Calling You'는 왕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친구가 없는 한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아마도 소설이 나왔을 시기가 휴대폰이 학생들에게 막 유행했을 무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주인공은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속으로나마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 상상이 점점 더 현실에 가깝게 변합니다. 그리고 상상 속의 휴대폰에서 갑작스럽게 전화가 오게 되고 소녀는 그 상황에 놀라면서 상상 속의 휴대폰으로 상대방과 통화를 하며 상대방과 우정을 키우게 되는 이야기인데 오츠 이치 전작들의 특징을 본다면 역시 이 소설도 행복하게 끝나지는 않으려니 싶었고, 역시 예상대로 비극적인 결과가 주인공에게 다가옵니다. 다만 재미있는 설정은 상대방이 전화를 건 시간과 주인공이 전화를 받는 시간이 현실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점인데 이런 설정은 후반에 또 다른 반전을 안겨주게 되지요.
두 번째 소설 '상처'는 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과거 때문에 거친 행동을 일삼았다가 특수반으로 옮겨진 소년이 주인공으로, 거기서 자신과 비슷하게 부모에게 상처를 입은 한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자신에게 흡수하여 상대방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능력 때문에 가장 비극으로 끝날 것 같다는 예상을 깨뜨리고 의외로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며 조금은 희망적인 결말로 끝나서 놀랐던 소설이라고 할까요?
가장 특이했던 작품은 마지막 소설 '꽃의 노래'인데 내용 자체는 사고로 연인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이 산책 가던 와중에 신기한 꽃을 발견하여 그것을 화분에 옮겨 병실로 돌아오고 그 노래하는 소녀를 닮은 꽃으로 인해 주인공은 물론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도 나름 상처를 달래게 되며, 그 꽃에 대한 진실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는 소설로 내용 자체는 오츠 이치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이 작품은 작품 자체가 일종의 트릭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소설 막바지에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제가 잘못 이해했나 싶다가 소설 자체에 그런 반전을 준비해 놓은 것을 알았는지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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