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외국의 영화들을 더빙하여 한국에서 외화 특집으로 방영을 해준 것을 본 기억들이 여럿 있습니다. 실제로 그 영화들 중에는 외국에서 이미 유명한 영화들이 유명세에 따라 한국에 수입되어 TV로 방영된 것들이 있었을 테고 어떤 영화는 추억에 서려 나중에 커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다가 그때 받았던 감상과 다르게 본토에서 크게 성공을 하지 못했거나 평이 나빴다고 하는 등 의외의 글을 접하게 되어 놀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화의 더빙 자체가 드물어졌기 때문에 영화의 평과는 상관없이 상당히 기억에 남은 영화들이 있는데 바로 이 소설 『모로 박사의 섬』을 원작으로 한 영화 『닥터 모로의 DNA』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어린 시절 당시와 나중에 커서 영화를 희미하게 기억을 했을 시절에도 이 영화의 원작의 존재라거나 원작자가 H. G 웰스라는 사실은 몰랐고, 나중에 『투명인간』이나 『타임머신』과 같은 유명 소설을 찾아 읽게 되면서 덩달아 이 소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셈이에요.
기왕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에 흥미를 갖게 된 셈이니 제가 어린 시절 추억 보정도 있긴 하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의 원작이라는 『모로 박사의 섬』을 읽고 싶었지만 막상 찾으려 하니 도서관에는 책이 보이지 않아 내심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신청한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꽤 걸리므로 결국 체념하고 좀 잊혔을 무렵 최근에야 도서관에 신간으로 이 책이 들어온 것을 알고 발견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책을 빌려왔습니다. 저만이 갖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한국에 번역된 허버트 조지 웰스의 번역본들은 그 두께가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얇은 느낌이라 읽는 데도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좀 여유를 가지면서 읽으려고 했으나 소설 자체가 긴 편이 아니고 소설에 몰입이 빨리 된 관계로 하루 만에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읽어가면서 제가 어린 시절 본 영화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고요.
간단하게 보자면 영화의 주제였던 '신으로 군림하려는 인간과 그 인간 내면의 폭력성'은 소설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나 좀 더 한가지 주제에 몰두하였던 영화와는 달리 이 『모로 박사의 섬』은 작가의 다른 대표작들처럼 다방면으로 사회를 풍자, 비판하려는 시선이 보입니다. 소설을 가장 먼저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당대에 많이 행해졌을 법한 동물 실험에 대한 비판이 목적이 아닌가 했습니다. 소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작가의 고국이 행한 애국주의로 무장한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한 비판 역시 가미되었다고 하는데 동물을 강제로 인간화하려는 모로 박사의 행동에서 그런 것이 엿보이는 점도 느껴지나 인간화된 동물도 다시 본성으로 돌아가려는 동물들도 노골적으로 기괴하게 묘사하며 그들이 광신적이고 폭력적인 행동, 막판 주인공을 위협하는 모양새와 갈등 구조를 본다면 동물에게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은 소수 국가나 민족에 무작정 대입하는 것도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주 해석으로 소설 상에 인종과 성차별적인 묘사가 종종 있어 현대에 지적이 된다는 언급이 있던 것을 보면요.
동물 인간들의 행동을 만약 소수 민족에 빗대어 표현한 거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여겨지지지만 달리 해석하여 그들을 강제적인 방법으로 인간으로 만들고 원래의 본성을 억누르는 것은 보수적이고 전체적인 사회에서 소수에게 가하는 폭력을, 법을 신봉하는 광기 어린 동물 인간들의 태도에선 어느 사회에서 엿볼 수 있는 군중의 폭력성과 광기를 묘사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모로 박사의 정신 나간 연구나 무책임한 태도는 당시 과학자 혹은 지식인들이 가진 비뚤어진 행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심지어 주인공이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 새로운 지배자 행색을 하면서 그나마 처음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동물 인간들을 포섭하려는 행동(이는 작중 같은 편이라 할 수 있는 동물 인간들이 살해당하거나 완전 동물화하면서 결국 수포로 돌아갑니다)과 작중 내내 숨겨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인공의 혐오에 가까운 정서를 본다면 주인공 역시 어느 정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본 영화와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는데 간단하게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이야기하자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수인들에게 호의와 동정심을 보이고 마지막에 사건이 일단락된 후 그들의 배웅을 받고 인간 세계로 돌아가며 수인인 그들에 빗대어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동물이 아니냐며 인간 세계를 반추하던 반면, 소설은 좀 더 잔혹하고 냉정하게 수인과 인간들의 사이를 묘사하고 있는데 주인공도 초반엔 그들을 실험에 의해 동물화된 인간으로 여겼을 땐 호의적이었던 반면,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에 대한 혐오와 멸시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이 감정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동물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였단 점입니다. 주인공의 섬 탈출도 영화와는 달리 목숨의 위협을 받아 간당간당하게 섬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전체적인 구성도 다른 것이 소설은 주인공 에드워드 프렌딕이 유람선 침몰 후 모로 박사의 섬에 흘러들어간 뒤 겪은 경험담을 그의 조카가 기록하여 전달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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