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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채식주의자』 리뷰

by 0I사금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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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1.

『채식주의자』는 최근 노벨상을 수상하여 이슈가 된 소설가 한강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노벨상 이전에 이 소설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 요새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 예전만큼 책을 읽지 않고 결정적으로 수납할 공간도 없어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는데요. 그래도 노벨상 수상이 굉장한 일이다 보니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길래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책의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종이책을 주문하기엔 시간이 걸릴 성싶어 교보문고 이북을 통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종이책과 달리 이북은 읽을 때 약간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제대로 읽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게 되니,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이북으로는 책을 잘 못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내가 스스로 만든 일종의 편견이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2.

제목이나 얼핏 검색으로 본 줄거리 요약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고 간단한 줄거리 요약만 보면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직접 읽고 판단을 해야 맞다는 생각이 더 확연하게 들었고요.

이 소설 『채식주의자』는 악몽을 꾼 뒤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성 김영혜를 바라보는 세 사람 남편 - 형부 - 언니의 관점으로 이야기로 진행이 됩니다. 여기서 김영혜는 꿈속에서 도축당하고 사람들에게 먹히는 고기, 과거 아버지에게 도살된 개의 이야기를 통해 살해당하는 고기의 입장이 크건 작건 폭력에 시달리는 자신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끼며 고기 섭취를 거부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광합성과 물로 유지되는 식물, 폭력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을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떠나서) 택한 것으로 해석되었고요. 소설의 내용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처절한 마지막 수를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

김영혜를 둘러싼 인물 중 세 명의 남성들은 사회적인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단 김영혜의 남편은 그저 김영혜가 자신에게 다른 여자들과 달리 평범하게 편하다는 이유로 '고르고 골라' 결혼을 한 인물이며 아내인 김영혜가 자신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하자마자 쓸모없는 '가전제품'을 버리듯 이혼을 선택한 인물이에요.

또한 처제인 김영혜를 가스라이팅 하며 관계를 맺었다가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쫓겨난 형부는 자신의 성욕을 예술로 포장하려는 전형적인 예술충 성범죄자의 특성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거기다 생활력은 없어서 모든 생계를 아내에게 넘기는 한심한 모습까지.

여기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은 김영혜의 아버지로 가장(가부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자식들에게 폭력을 일삼은 작자로써, 자신의 딸이 고기를 거부하고 사위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김영혜의 뺨을 때리고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다 김영혜가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해를 시도하자 겁에 질려 그만두는 등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남성으로 여겨지더라고요.

4.

아무래도 개인적인 해석으로 김영혜가 감내해야 했던 폭력의 시발점은 그 아버지가 제공한 것으로 여겨지던데요. 김영혜의 아버지는 자식들, 특히 딸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며 자신의 뜻대로 통제를 하려 드는 인물입니다. 자신들의 폭력성을 교묘하게 사회적으로 위장한 다른 남성들과 달리 이 아버지는 그 폭력을 시대적 혹은 사회적인 용인으로 노골적으로 풀 수 있던 인물이에요.

딸들이 자기 기준 이상하다고 여겨지자 (둘째 딸인 김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첫째 딸인 김인혜는 남편이 친 사고로 이혼을 하면서) 그 딸들을 가차 없이 절연하는 등 가부장 특유의 권력은 내세우면서 책임감은 일절 보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이런 인물은 현실에도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소설 상에서 가장 비중이 적으면서도 그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생각에 매우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마 살면서 이 김영혜의 아버지와 비슷한 유형들은 크건 작건 마주치거나 마주친 전적이 있기 때문일지도요.

5.

작중의 남성들 중 김영혜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인물은 없으며 그나마 마지막 단원에서 등장하는 김영혜의 언니 김인혜만이 어떻게든 동생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데 좀 의외라고 생각한 건 언니인 김인혜의 행동으로 자기 남편이 저지른 짓을 알았을 때 자기 가정을 망쳤다고 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남편과 절연을 선택했다는 건데, 보통 현실에서 자기 남자를 실드 치겠다고 상대방 여성에게 적개심을 불태우는 흔한 여성들과 다른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눈에 띄더라고요.

다만 그 언니 역시 동생의 상태를 정신이상으로 여겨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상태를 악화시키는 우를 범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김인혜는 정신 병동에서 동생을 치료하기 위한 행동들이 또 다른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며, 과거를 반추하며 우직하게 아버지의 폭력을 감내한 동생과 달리 자신은 그것을 교묘하게 회피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러요.

6.

여전히 소설의 말미에선 김인혜가 이 모든 게 꿈이며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말을 통해 회피적인 특성을 버리지는 못했다고 느껴졌지만, 그래도 두 자매의 관계에서 약간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런 김인혜의 반성이 조금은 엿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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